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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4Today!
몇 개월 전 어느 누구에게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자신이 잘못 사용한 헬라어 단어를 부목사가 지적했다고 설교 시간에 언급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하기에 그런가 하고 있다가 그 목사의 설교를 한편 듣게 되었는데,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두 단어를 언급한 설교였다. 짧게 설명하자면,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이름으로, '티테디오스'는 "염려 없는"을 뜻하는 단어이고 '아메림노스'는 사람의 이름이라면서, "염려 없는" '아메림노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티테디오스 존', "염려 없는 존", '티테디오스 ㅇㅇㅇ', "염려 없는 ㅇㅇㅇ" 이 되자는 설교를 했다. 이러한 설교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이러한 설교는 성경에 대한 학적..
홍신해만이라는 신학생의 글을 뉴스조이에서 읽었다 (이곳). 그는 마태복음 8:5-13에 나오는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퀴어 비평으로 재해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파이스’를 근거로 백부장은 동성애자였으며, 그의 동성애 파트너를 예수님이 치료하심으로서 동성애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이라는 해석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글의 내용은 게이/퀴어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글에 담긴 수정주의적 (revisionist) 해석은 이미 역사 비평학적으로 성경을 접근하는 복음주의적 성서학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그리고 동성애자 학자들에 의해 완전히 discredit 된 해석이다. 다만, 성서를 역사 비평학적으로 접근하지않고 포스트-모던 해석을 하는, 곧 경..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최근 인터넷으로 설교를 자주 보곤 하는데, 우연히 한국 교회의 어느 목사의 요한복음 21:15-17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 설교는 본문이 중심이 되어 본문을 주해하고 그 주해를 근거로 한 설교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자신의 목표와 결론에 짜 맞춘 설교로 들려졌다. 어쨌건, 이곳에서는 원어 사용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설교가가 본문에 사용된 원어를 설명한 것에 있는데, 사랑을 뜻하는 '필리오'와 '아가페'가 교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며, "양"을 뜻하는 단어는 "갓 태어난 양"을 뜻하는 '아르니아', "청년기에 있는 양"을 뜻하는 '프로바티온'과 이미 "성장한 [양]"을 뜻하는 '프로바톤'등 세 가지의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어와 성서 사본 ..
이재철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설교에 헬라어 문법에 대한 문제를 거론했었는데 (https://jesus4today.tistory.com/90), 그 글에 헬라어 문법을 제대로 모르면서 생각없이 이재철 목사 옹호하기 위해 내글을 공격하는 댓글들이 있었다. 그 댓글에서 전치사 ‘에이스’(εἰς) 에 관하여 더욱 그러했는데, 댓글의 저자는 달라스 신학원 교수 댄 월래스의 헬라어 기초 문법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εἰς는 “목적격에 쓰일때 목적이나 의도를” 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면서, εἰς 가 목적을 의미할 수 도 있기에 이재철 목사가 틀린것이 아니며 오히려 εἰς가 목적격이 아니다 라고 “단언”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많은 목회자들이 모든 문법적 기능들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옵션으로..
아래 링크는 호서 대학의 신학 교수라는 사람의 원어를 근거로 한 성서해석이 담긴 글인데, 너무나 황당한 원어 풀이를 계속해서 하기에 그의 링크를 걸고 그 문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사람을 어떻게 낚는단 말인가ㅡMIMOONCHURCH.COM 윗글의 원어 풀이를 정리하자면 이와 같다. 이 교수는 헬라어 ‘알리에이스 안트로폰'에서 사람을 뜻하는 ‘안트로폰’이 속격이기에 “사람의” 라고 번역해야 되기에 “어부”를 뜻하는 “알리이스”는 대격이므로 “사람들의 어부들”이라고 번역해야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왜 문제인지 살펴 보기로 한다. 1. 이교수는 헬라어 ἁλιεῖς 를 ‘알리이스’ 라고 적었는데, 첫 글자인 알레프 위에 있는 악센트 (accent) 부호를 볼 수..
지난주 집에서 노는 날에 등산을 준비하면서 어느 신학자의 원어 사용에 대한 비판의 글이나 적어본다. 우선 헬라어 문법부터 설명을 하고 시작을 하기로 한다. 헬라어에서 일반 명사가 술어 명사로 사용되려면 세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 1) 명사는 주격 형태 (nominative case) 이어야 하고, 2) 관사가 붙지 않으며, 3) 연결 동사를 따라야 한다. 예외가 몇가지가 있는데, 혹 무관사 명사가 연결 동사 앞에 있을 경우에는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subject 와 object 가 가치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연결 동사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는 술어 명사가 무관사 명사로서 관사가 붙은 주 명사 앞에 있던지 혹은 관사가 붙은 주 명사 뒤에 관사가 없이 따른다. 물론 주 명사가 관사..
1. 유월절 몇달전 내가 헬라어 ‘아르토스’는 보편적인 “빵”을 뜻하며, 문맥상 구약과 신약에서 “만나”, “무교병”, “유교병”을 뜻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최후에 만찬에서 사용된 “빵” (아르토스) 는 무교병을 뜻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글을 이해 못하고 이상하고 황당한 초딩같은 댓글을 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답은 후에 따로 올릴것이고, 이곳에서는 요한복음서에서의 유월절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 분의 댓글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한다. (시간이 없어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올리느라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더라도 이해하시라.) 1.1 우선 스트롱 원어 코드 사전에 대한 오해들이 있는것 같은데, 특정 단어에 대한 모든 정의가 다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스..
나는 이재철 목사님이(이후 존칭 생략) 한 일들 곧 시기와 질투에 가득찬 그리고 잘못된 기독사상을 가진 이상한 목사들에게 욕 얻어먹는 행위들을 동영상을 통해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그동안 변호해 왔었다. 그것은 그가 한 일들이 무조건 옳거나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단”이니 뭐니하면서 물어뜯을 정도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개혁 정신”이라는 것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나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면 그 다지 개혁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또한 이름없이 과감한 개혁을 이루어내는 한국의 수많은 용기있는 목회자들에 대해 들어왔기에 그의 개혁을 대단한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식적인 목사님이기에 좋게 ..
얼마전 어떤 특정 이단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다가 정말 황당한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황당하다는 것은 그 블로그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의 제목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블로그의 저자 자신이 스스로를 한국교회를 살리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것 바로 그것이다. 도데체 자신이 누구라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살리며 어떠한 방법으로 살린다는 것인지…착각이 너무 심한것 같다. 그런데 이런 착각을 가진 사역자들과 평신도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사역자는 자신이 선교에 대한 큰 비젼이 있는데, 자신이 없이는 하나님도 현 시대에서의 선교 역사에 힘드실 것이라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말이었다. 이 정도의 정신병은 아니더라도 멍멍이 꿈을 하나님의 비젼으로 착각하는 사역자들이 한둘이 아닌것 같다...
1. 나는 레브 쇼메아에 대한 글에 올린 (목회자?) 댓글을 보고 그가 신학교에서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 참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 사람만이 아니다. 지난 10년동안 소셜 미디아 (한국에서는 SNS라고 부른다는데…) 를 통해 한국인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으로는 그들 중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사람들이 너무나 적다는데 의아했었다. 물론 글을 읽고 이해못하는 대학졸업자인 미국인들도 많이 접했었지만, 그중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었다. 특히 젊은층으로 가면 그러한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해도 못하고…논리도 없고… 교육체제에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사라면 기본적으로 목회학이나 종교학 석사과정을 다 마친 사람들일텐데, 이들 중에서도 기능적 문..
어느 블로그에서 원어의 어원을 근거로 본문을 해석하는 글을 읽었는데, 새롭게 본문을 보고자 하는 의욕이 지나쳐서인지, 본문의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해석을 하는것을 읽어보았다. 그 글은 바로 빌립보서 3:3에 나오는 ‘신뢰하다’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쏘)와 4절에 나오는 ‘신뢰’, ‘확신’, ‘자신감’을 뜻하는 명사 ‘πεποίθησις’ (페포이테시스/페포이쎄시스) 에 대한 것이었다. (블로그에 올려진 해석은 20+년 전에도 접했었는데, 글에서 읽은것인지 누구에게 들은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로그의 저자는 “믿음”을 뜻하는 명사 ‘πίστις’ (피스티스) 와 “신뢰”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페이쏘) 의 어근이 같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을 뜻하는 ‘피스티..
시내 사본 – 마가복음 16장 면의 지운 흔적 최근에 정동수 목사가 “시내 사본 사기 조작”이라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곳). 아래는 정동수 목사가 시내사본 사기 조작의 증거로 제시한 시내 사본 사진이다. 빨간색의 상자가 정동수 목사가 주장하는 마가복음 16:9-20이 지워진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이전에 올린 글에서 (이곳) 시내 사본 사기 조작이라는 주장은 무지에 근거한 음모론에 불과하며, 그 지워졌다는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다만 피지 뒷면에 쓰여진 누가복음 1:37-44의 잉크가 스며든것임을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 글을 이해못하는 분들을 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사진들을 사용해 다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아래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코텍스 사이네이티쿠..
어느 신학자의 블로그를 우연히 읽게되었다. 여러 글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낀것은 그의 신선하게 성경을 보는 눈이 자주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요한복음 13:30 에 기록된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에 대해 원어로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 (παρέδωκεν τὸ πνεῦμα) 인데, 대다수의 역본들이 이것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포기한것 즈음으로 표현했다면서 그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영어번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ASV, KJV, NRSV, NIV, NLT 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를 “gave up his spirit” 이라고 번역을 했다면서, 그것은 “영혼을 포기 했다”로 이해를 하고서는 ‘파라토켄’은 “포기” 가 아니라 “넘겨주다”에 가깝다고..
한 2년전인가, 처음으로 “열정”에 대한 황당한 단어풀이를 설교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본문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약에서 “열심”을 뜻하는 단어로 시작한것으로 봐서 문맥상 로마서 10:2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 설교자는 “열심”은 영어로 ‘지얼’ (zeal) 인데, 우리도 “열정”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그 열정은 영어로 ‘엔투지애즘’ (enthusiasm) 이며, 그 단어의 어원은 “하나님 안에”를 뜻하는 헬라어 ‘엔’ (ἐν) 과 “하나님” 혹은 “신”을 뜻하는 ‘테오스’ (θεός) 에서 유래한것이라면서, 이러한 열정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시는것 혹은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몇일 전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 사용된 떡/빵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 내용은 바로 공관복음의 저자들은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떡/빵이라는 단어를 “무교병”을 뜻하는 ‘아쥐모스’ (ἄζυμος) 를 사용하지 않고 “유교병”을 뜻하는 ‘아르토스’ (ἄρτος) 를 사용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새 언약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글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전혀 새로운것이 아니며,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거의 없지만, 이미 오래전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The Eucharistic Words of Jesus” 통해 신빙성이 없는 주장임이 이미 밝혀졌고, 고 하워드 마샬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아르토스’는 모든 종류의 빵을 뜻하는 단어로서 “무교병”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편에 서 있다. 1. 산상수훈을 보..
설교를 듣다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레마’는 ‘로고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받는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이고 영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할 만큼 한 목회자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성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두 단어를 구분짖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그 어느 성서 텍스트로도 입증할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한다는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두 단어에는 분명히 사전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
아주 오래전이다. 아이티에 있는 어느 신학교의 미국인 학장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대화가 행복과 기쁨의 차이에 대한것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는 다짜고짜 행복과 기쁨에는 차이가 있다면서, 행복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잠간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기쁨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러 나오는 것이라면서, 기독교는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한 곧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러러 나오는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서 내게 강의를 했다. 옛 직장에서도 여럿의 기독인들 역시 그러한 차이를 강조하면서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하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중에는 신학생도 있었고 목사도 있었다. 내가 동양인이라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신들보다 잘 모..
담임목사들을 보면 부사역자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성도들에게 반말을 하며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몰상식을 책망하며 상식적인 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정말 희한한 일이다. 자신들은 나이가 드신 성도님들로부터 “목사님”이라는 존칭과 존대말과 존중의 대접을 받는다. 형, 삼촌, 아버지뻘 되는 성도님들도 예의를 갖춰 그들에게 대해준다. 그런데, 그러한 깍듯한 예의를 받는 담임목사 자신들은 정작 부사역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말을 하고 함부로 책망을 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다른 교회의 목사에게도 한동안 자신 밑에서 부목사 또는 전도사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함부로 대하며 그들의 발언을 짖밟는 인간들도 있다. 상대방이 한 가정의..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 있는 여러 미국교회들을 출석했다. 한 교회는 원래 1000명의 교인이 있던 어느 미국 감리교회의 청소년 담당 목사가 그 교회의 담임목사 문제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리고 또 담임/교단이 진보적으로 나간다고 해서 보수적인 교인들을 데리고 나와 개척한 교회이고, 또 다른 교회는 남침례교회로서 남침례교단의 교회에 안수집사직만 있는것에 불만을 느낀 성도들이 장로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이에 반대한 담임목사는 떠난 교회이다. 그 교회는 오늘 담임목사를 청빙했는데, 99%의 찬성 투표율에 의해 담임으로 결정되었다. 그 담임목사는 침례신학원을 졸업한 목사가 아니며, 초교파적이며 보수적인 신학원을 졸업한 목사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가장 큰 두 한인교회들과 그 보다도 괭장히 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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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lyspirit11&logNo=220578911554 윗 링크에는 나의 포도주에 대한 글의 링크를 걸고 “개인적인 해석”이라면서 술마셔도 된다는 해석이 틀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의 글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하고서는 거짓이니 악이니 하며 정신 승리를 거두고 있다. 또한 ‘메쑤스코’가 왜 “to begin to be drunk”라고 번역될 수 없음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킵바이블에 있는 주장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다. 이러한것은 바른 반론이 아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한, 킵바이블에 올라온 모든 성서구절들과 해석들이 왜 틀린지 하나 하나 집어 주해하면서 반박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사용한 성..
홍신해만이라는 신학생의 글을 뉴스조이에서 읽었다 (이곳). 그는 마태복음 8:5-13에 나오는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퀴어 비평으로 재해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파이스’를 근거로 백부장은 동성애자였으며, 그의 동성애 파트너를 예수님이 치료하심으로서 동성애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이라는 해석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글의 내용은 게이/퀴어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글에 담긴 수정주의적 (revisionist) 해석은 이미 역사 비평학적으로 성경을 접근하는 복음주의적 성서학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그리고 동성애자 학자들에 의해 완전히 discredit 된 해석이다. 다만, 성서를 역사 비평학적으로 접근하지않고 포스트-모던 해석을 하는, 곧 경..
신약성경에서 주로 “염려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메림나오’가 있다. 이 단어를 가지고 희안한 해석을 하는 설교가들이 너무나 많다. 이는 “염려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마다 자주 듣는 해석인데 정리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염려하다”를 영어단어로 “worry” 라고 하면서 그 영어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는데, 이는 “목을 졸라 죽인다”는 고대 앵글 색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동사형인 ‘메림나오’는 “나눈다” 또는 “쪼개어진다”를 뜻하는 동사 ‘메리조’와 “마음”을 뜻하는 ‘누스’의 합성어라고 한다.이러한 단어풀이를 근거로 염려는 살인적인 것이라느니 사람의 목숨을 단축시킨는 무서운 적이라는 성서본문과 상관없는 매우 주관적인 해석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왜 이러한 해석들이 잘못된것인지 살펴보..
www.biblelife.co 오동수님이 발행하는 '원문과 설교'입니다. 원어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평신도나 평신도 지도자들은 물론 원어를 사용하지 않아 잊어버린 목회자나 신학생들에게도 유익한 자료로 보입니다. 아래 링크는 '원문과 설교" 11월 부 인데, 97장의 분량이며, 71장에서 부터는 원문 해설입니다. 한동안 '메디타치오'라는 이름으로 변경했었는데, 다시 '원문과 설교'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발행을 그만 두려고 했다고 하는데, 많이들 구독하시거나 기부가 가능한 분들은 개인적으로나 교회차원에서 기부를 하셔서 좋은 일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로고스나 어코덴스와 바이블워크스를 사용하시는 분들에게는 필요가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돕는 차원에서 구독 바랍니다. ..
(윗줄을 친 문자들이 티스토리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에 그림포맷으로 아래에 올린다.) 작년 성탄절 즈음에 어느 신약신학자가 ‘X-Mas’ 는 ‘그리스도’를 뺀 것으로서 잘못된 것이기에 ‘X’ 를 사용하지 말고 ‘그리스도’ (Christ) 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올렸었는데, 그 글의 핵심 내용은 ‘X’는 ‘그리스도’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 의 약자인데 왜 그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어느 신약성서사본비평학자는 헬라어 문자 ‘카이’ (X) 를 ‘그리스도’의 약자로 사용한 문서가 없다며, 그렇게 사용한 고대문서가 발견되지않는 한 ‘X’는 ‘그리스도’의 약자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과연 ‘X’ 가 ‘그리스도’의..
성탄절이 어느덧 빠르게 지나가고 이제는 새해가 눈앞에 다가왔다. 성탄절은 영어로 ‘크리스마스’인데, 이제는 한국에서도 ‘성탄절’ 보다는 ‘크리스마스’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성탄절’ 보다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종교적으로 중립적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하기에 에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체 세상적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다. 미국에서는 80-90년도에는 기독인들 중 세상이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뺀, 미지수를 가르키는 ‘엑스’ (X) 인 ‘엑스-마스’로 사용한다면서 이이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에도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하..
바쁘다 보니 제대로 읽지 못하고 조금전에야 킹제임스 온리를 주장하는 알 레이시가 쓰고 정동수 목사가 편역한 “천사와 UFO 바로 알기”를 다시 대충 흩어 보았는데 정말 골때린다. 어쨋건, 흩어 보다가 눈에 뛴 황당한 부분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천사와 UFO 바로 알기” (adobe p. 381) 에 보면 (이곳에서 다운), “그리스어 ‘프뉴마’ (pneuma) 즉 ‘영’ (Spirit) 은 기독교를 인도하지만 ‘포스’ (phos), 즉 ‘빛’은 뉴에이지와 이방종교를 인도합니다” 라고 하면서 엡 5:9에 “빛의 열매”로 번역한 성경들은 독자들을 “성령님의 열매가 아닌 ‘빛의 열매’를 요청하고 있고 뉴에이지 대열에 함께 가담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라며 “분명히 갈5:22 말씀은 ‘빛의 열매’가 아니..
80년도에도 좀 잘못된 세대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에 UFO 가 나온다고 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선지서와 계시록에 나오는 비젼들을 현시대의 신무기들로 설명하는 이상한 종말론적 해석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이상한 해석들을 미국의 킹제임스온리파 가 오늘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한 해석들이 럭크만을 추종하는 한국인 목사들에 의해 한국에서도 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쨋건 정확히 뭐라고 주장하는지 궁금해서 미국인 레이시의 저술하고 정동수 목사가 편역한 “천사와 UFO 바로 알기” 를 몇달전에 들여다 보았다 (이곳에서 다운). 황당한것은 이들이 이런 3류 공상 소설을 성경의 예언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며, 더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공학박사인 정동수 목사가 UFO 음모설을..
오늘 아침 성경을 읽으면서 비평장치를 들여다 보다가 루시퍼 라는 이름을 보게 되었는데, 칼라리스의 비숍이었던 루시퍼(루키페르)이었다. 그는 4세기말의 라틴교부로서 다수의 라틴교부들과 마찬가지로 라틴불가타를 사용한 분이었다. 그는 니케아 공회에서 아리우스를 대항해서 싸우는 아타나시우스의 편에서 서서, 아리우스의 손을 들어주는 콘스탄티우스 II 황제에 대항해서 그를 변호한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예전에 고신에서 신사참배를 했던 목회자들을 거부했던 것처럼, 루시퍼 역시 아리우스의 신학을 따르다가 니케아신조를 받아들인 후 아리우스파와 싸운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극단주의적인 인물이었다. 어쨋건, 이 칼라뤼스의 비숍이었던 루시퍼를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바로 그의 이름때문이다. 황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히브리어 단어 중 ‘콜’ (קול)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소리’ 또는 ‘음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목사님들 중 ‘콜’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분들이 있다. 히브리원어사전을 찾아보면 ‘콜’에 “말씀”이라는 의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사용된 사례가 전혀 없다. 또한 이 단어가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다발’ (신 1:34; 4:12; 5:28; 삼상 15:1) 그리고 ‘밀라’ (욥 33:8; 34:16) 와 함께 사용됨으로서 “소리”를 뜻하지 “말씀”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리”와 “말씀”을 혼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목사님들이 도데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가르치는지 찾아보다가 김구원 교수의 사무엘상 주석을 발견하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