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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5-17 필리오와 아가페라고? 본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최근 인터넷으로 설교를 자주 보곤 하는데, 우연히 한국 교회의 어느 목사의 요한복음 21:15-17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 설교는 본문이 중심이 되어 본문을 주해하고 그 주해를 근거로 한 설교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자신의 목표와 결론에 짜 맞춘 설교로 들려졌다. 어쨌건, 이곳에서는 원어 사용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설교가가 본문에 사용된 원어를 설명한 것에 있는데, 사랑을 뜻하는 '필리오'와 '아가페'가 교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며, "양"을 뜻하는 단어는 "갓 태어난 양"을 뜻하는 '아르니아', "청년기에 있는 양"을 뜻하는 '프로바티온'과 이미 "성장한 [양]"을 뜻하는 '프로바톤'등 세 가지의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어와 성서 사본 비평을 아시는 분들은 이미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정말 황당한 이유는, 그 설교가는 공부를 할 만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를 설명해 보겠다.
1. '필리오' - '필리오'가 아니고 '필레오'이며, 동사(verb)이다. '아가페' - '아가페'는 동사 (verb)가 아니라 명사 (noun)이다. 비교를 하려면, 동사는 동사와, 명사는 명사와 하는 것이지, 어떻게 동사와 명사를 비교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참고로, 명사 '아가페' (ἀγάπη)의 동사는 '아가파오' (ἀγαπάω)이며, 본문에서는 명사인 '아가페'의 사용이 없다.
형태 | 헬라어 | |
명사 | ἀγάπη (아가페) | φιλία (f/필리아) |
동사 | ἀγαπάω (아가파오) | φιλέω (f/필레오) |
2. '아르니아' (15절), '프로바티온' (16절), '프로바톤' (17절) - 양을 뜻하는 이 세 단어들... 과연 이것들의 차이가 있을까? 이미 그 설교가는 '필리오'와 '아가페'의 구분을 두면 안 되며, 그것은 교차적으로 사용한다고 학자들이 말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그 구분을 두는 것인가? 그리고 그 구분이 가능한 것인가?
3. NA28 헬라어 신약성경을 보면 사본 비평 장치가 있는데, 그것에 보면 a) 15절에서 "어린양"을 뜻하는'아르니아'에 대한 이문은 없고, b) 16절에는 NA28 에는 '프로바티온'이 아니라 '프로바톤'으로 쓰여있지만, 비평 장치에 '프로바티온'이라고 기록된 사본들을 표하고 있고, c) 17절에는 16절과 마찬가지로 NA28 에는 '프로바톤'으로 쓰여있지만, '프로바티온'으로, 그리고 15절에서 사용된 '아르니온'으로 쓰여있는 사본들을 비평 장치에 표하고 있다.
구절 | 이문 (NA28 비평 장치에 의한) | ||
15절 | ἀρνία (알니아/아르니아) 알니온'/'아르니온'의 복수형 | - | - |
16절 | πρόβατά (프로바타) '프로바톤'의 복수형 | προβάτια (프로바티아) '프로바티온'의 복수형이며, '프로바타'의 지소사 | ἀρνία (NA28에는 없지만, 대충 흩어 본 어느 학술지에 의하면) |
17절 | πρόβατά | προβάτια | ἀρνία |
4. '프로바티온'은 '프로바톤'의 지소사 (diminutive)이다. 이것을 구분 짓는 그 설교가는 어떤 헬라어 성경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르니아', '프로바티온', 그리고 '프로바톤' - 이 세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헬라어 성경은 없다. 다만, 위에 도표에서 볼 수 있는것 처럼, '아르니아'와 '프로바톤'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아르니아'와 '프로바티온'을 사용하는 사본과 편집된 성경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바로 그가 헬라어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이 구절에 관한 헬라어 사용에 대한 논문만을 살펴본 것으로 추측을 해보는데,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그냥 사용한 것이 아니진 모르겠다. 어쨌건, 성서 사본학적으로 '프로바톤'이 사용되는 16절과 17절에서, 실제로는 지소사인 '프로바티온'이 맞을 가능이 높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윗 도표에서 보이는 데로, '프로바톤'이던 '프로바티온'이던 '아르니온'이던, 이 모든 것은 다른 성장 단계에 있는 양을 뜻한다기보다는, 다 같은 어린양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 이처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여러 단어들의 사용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차원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이미 다른 글에서 설명했지만, 이스라엘에 거하던 유대인들이 사용한 '필레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용한 '아가파오'는 예수님 안에서 같은 의미를 지닌 두 개의 다른 단어가 (따라서 문화와 사상이 의미하는 '사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인데,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단어가 '필레오'에서 '아가파오'적 사랑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던 당시, 예수님이 그 두 가지의 다른, 그러나 같은 뜻을 의미한, 두 단어의 의미를 (이스라엘의 유대인, 헬라어파 유대인, 전세대와 새 시대의 사람들) 모두 품으신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그 단어들의 핵심적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 부분적인 혹은 미세한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적어도 요한복음에서는. 그리고 '아르니아'와 '프로바톤', 이 역시 모든 양들을 품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역별 단어 사용 | |
이스라엘 유대인 | φιλέω (f/필레오) |
헬라/디아스포라 유대인 | ἀγαπάω (아가파오) |
아래는, '아가페'에 대해 적은 내 글의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두 단어의 사례를 살펴볼 때, 21장 15-17절에서 ‘아가파오’ (ἀγαπάω)와 ‘필레오’ (φιλέω)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로서 교환되어 사용되었고 , 이것은 요한의 글을 쓰는 방식 혹은 스타일이다 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요한이 두 단어를 교환해서 사용한 것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들이 더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두 단어 외에도 다른 동의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양들”을 뜻하는 ‘알니아’ (ἀρνία)와 ‘프로바타’ (πρόβατά), “안다”를 뜻하는 ‘오이다’ (οἶδα)와 ‘기노스코’ (γινώσκω), “돌보다” 또는 “먹이다” 라는 뜻의 ‘보스코’ (βόσκω)와 ‘포이마노’ (ποιμαίνω) 등 쌍을 짓는 단어들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은 바로 동사인 ‘아가파오’를 명사인 ‘아가페’로 오해하고 동사인 ‘필레오’를 명사인 ‘필리아’ (φιλία)로 오해하며 그 두 단어의 특징을 주장하는 목회자들이 다른 쌍의 단어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시는 질문에 베드로가 확실하게 “네, 주님”이라고 답한 것과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에 “근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히브리-아람 방언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그들에게는 헬라어처럼 사랑에 대한 여러 표현이 없었는데, 베드로 자신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답했으나 계속해서 히브리-아람 방언 곧 같은 단어로 ‘사랑’하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두 단어의 의미에는 문맥상 아무런 차이가 없고, 다만 이스라엘에 거하는 유대인들이 ‘사랑’의 표현으로 사용한 ‘필레오’와 이방인 교회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사용한 ‘아가파오’적 사랑이 21장에서 예수님에 의해 화합된 것이 아닌가 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필레오’와 ‘아가파오’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때 두 단어는 적게나마 동의어로서 교환되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jesus4today.tistory.com/23?category=61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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