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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와 한인교회 그리고 잘하는 설교 본문

신학/신앙 에세이

미국교회와 한인교회 그리고 잘하는 설교

frog prince 2016. 2. 29. 13:38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 있는 여러 미국교회들을 출석했다. 한 교회는 원래 1000명의 교인이 있던 어느 미국 감리교회의 청소년 담당 목사가 교회의 담임목사 문제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리고 담임/교단이 진보적으로 나간다고 해서 보수적인 교인들을 데리고 나와 척한 교회이고, 다른 교회는 남침례교회로서 남침례교단의 교회에 안수집사직만 있는것에 불만을 느낀 성도들이 장로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이에 반대한 담임목사는 떠난 교회이다. 교회는 오늘 담임목사를 청빙했는데, 99% 찬성 투표율에 의해 담임으로 결정되었다. 담임목사는 침례신학원을 졸업한 목사가 아니며, 초교파적이며 보수적인 신학원을 졸업한 목사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가장 한인교회들과 보다도 괭장히 적은 미국인 교회의 목사들을 비교해 보면서 너무나 실망을 했다. 이유는 바로 한인교회의 목사들의 신학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위에서 언급한 교회의 목사들에게 뒤진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교회의 목사들은 나이가 한인 교회의 목사들에 비해 상당히 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새로 부임한 미국침례교회의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성서본문에 대한 주해 능력이 한인 목사들에 비해 상당히 뛰어났다. 그리고 그의 설교는 (아직 신학 지식과 주해 능력을 키워야 하지만) 나름대로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안정된 설교였다. 그것은 깊이가 있거나 새로운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에는 해석의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며, 본문을 강해만 한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차원에서도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교는 덩치가 한인 교회의 목사에게서 찾아 보기 힘들다. 도데체 그런것일까?

 

 나는 사실 미국 대도시에 있는 대형한인교회들의 목사들의 설교에 실망을했다. 그들의 설교에는 성서 본문에 대한 주해는 너무나 빈약하다. 어떤 분들의 설교를 들으면 인터넷에 나온 블로그의 글들 그리고 다른 목사들의 설교에 있는 주해나 해석적 인용을 스스로의 연구와 원본을 통해 검증하지 않은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원어를 알지도 못하면서 설교시간에 원어 단어 두개식을 남발하는 목사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틀린 해석 그리고 틀린 원어 단어 풀이를 인터넷에서 발견한것인지 신학교에서 들었던것인지 잘모르겠으나, 그대로 주워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설교는 본문 풀이보다는 적용에 거의 모든것을 쏟아 붙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러한 설교는 미국목사들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인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이라면 교회들의 목사들은 성경을 주해하는 능력과 신학지식이 뛰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대해 어떤 서부의 한인대형교회의 목사는, 성도들과 공감을 형성하는 목사들이 교회에 오래 붙어 있는다면서 자신은 성서본문의 뜻을 주해보다는 성도들이 원하고 공감할 있는 주관적인 설교 방식을 채택한다는 말을 다른 목사들에게 한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황당했다.

 

 문제는 성도들의 입맛을 맞추려는 목사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설교하는 목사를 청빙하는 교인들에게도 있다. 따라서 덩치가   교회에 청빙된 목사들을 보면, 교인들 자신들이 공감할 있는 적용을 강조하는 목사들이 많은것을 있다. 물론, 말로는 설교 잘하는 목사님을 찾는다고 하는데, 문제는 설교를 잘하는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말하는 설교 잘한다는 것은 성서본문을 바르게 주해하고 신학기반이 탄탄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공감할 있는 해석 그리고 재미있는 설교가 바로 잘하는 설교이다. 그 이유는 목사의 해석에 문제들이 있고 신학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음에도 그것을 분별할 능력이 없고 기준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뜨겁고 재미있고 공감되는 해석을 하면 말씀이 좋다고 평한다. 그것은 좋은 설교를 판단할 신앙의 수준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신앙이 대단하다고 착각들을 하고 있다. 슬프지만 아직 미국교회에 비해 멀었다. 하긴, 미국교회에는 강해 능력이 뛰어난 설교가들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많고 또 평신도들을 위해 쓰여진 신학서적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한 설교가들의 설교를 듣고 그러한 신학서적을 읽으며 신앙 생활을 하는 미국교인들과 그렇지 못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이 섬기던 교회의 목사의 설교가 신앙 기반의 전부인 한인교회들의 수준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스스로 신앙의 깊이가 있다는 착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교단마다 그리고 교회마다 다르지만, 위에서 언급한 미국 남침례교회의 청빙위원회에는 교회의 부목사도 포함이 되어있다. 자문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청빙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자격 조건외에 가장 중요시 여긴것이 성경을 강해하고 가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본문을 해석하는데 황당하거나 맞지 않는 해석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해석을 하는 목사를 청빙한것이다. 사실 그의 설교는 그렇게 재미있는 설교는 아니다. (오늘 직접 들어봤고 인터넷에서 이미 들어봤다. 참고로, 한인교회를 보면, 교회 웹사이트에 가입하지 않으면 목사의 설교를 들을 없게 만든 곳이 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런 웹사이트에는 가입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목사들은 다른 교회에 가게 되면, 자신이 있던 교회 웹사이트에 올라온 설교를 삭제하기도 한다. 새로운 교회에서 재탕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재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본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 충실할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순간 심령을 움직이는 부분들이 있다. 목사의 말재주가 아니라 말씀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한인교회들에 비해 미국교회는 그러한 설교가 좋은 것임을 인식하고 좋아하는 교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갑갑하다. 그렇다고 해서 설교를 잘하는 한인 목사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목사들의 설교를 성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로 갑갑하게 만든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설교를 좋아하는 성도들과 목사들은 몇이나 될까? 오해마시라, 로이드-존스 목사의 설교 방식만이 좋은 설교의 표본이라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깔깔 웃게 만드는 그러한 재미있는 설교를 좋아한다

 

내가 출석했던 어느 한인 감리교회에 젊은 전도사가 있었다. 그의 설교를 세번 정도 들었는데, 아직 신학의 깊이가 많이 부족하고 주해할 능력이 조금 모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교회에서, 전임과 후임 담임목사를 포함해서 가장 설교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본문을 풀어나가는데 강해설교가 다운 방식으로 그리고 충실하게 풀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앞으로 정말 실력있는 강해 설교가로서의 잠재적 능력을 발견했다. 물론 앞으로 목회를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나 다른 목사들도 그의 능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를 키워줄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슬픈 상황들이 어찌 교회뿐이겠는가? 하긴, 오래전 은퇴하신 어느 목사님은 자신이 설교를 너무나 못하는 것을 인식하고 강대상에서 자신이 설교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실력있는 부목사에게 설교를 자주 맡겼다고 하는데, 그 목사님처럼 자신이 교에 대해 정직한 목사님들은 찾기 어렵다.

 

 어쨋건, 오늘 젊은 미국 목사의 설교를 듣고 그러한 설교를 좋아하는 미국교회의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인 교회들은 앞으로 몇년이 지나야 말씀을 제대로 강해하는 설교를 좋아하게 되려는지 생각하니 참으로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