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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술을 금하는가? 본문

성경은 술을 금하는가?

frog prince 2016. 2. 23. 14:07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lyspirit11&logNo=220578911554
 
링크에는 나의 포도주에 대한 글의 링크를 걸고개인적인 해석이라면서 술마셔도 된다는 해석이 틀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의 글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하고서는 거짓이니 악이니 하며 정신 승리를 거두고 있다. 또한 메쑤스코 “to begin to be drunk”라고 번역될 없음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킵바이블에 있는 주장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다. 이러한것은 바른 반론이 아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한, 킵바이블에 올라온 모든 성서구절들과 해석들이 틀린지 하나 하나 집어 주해하면서 반박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사용한 성경구절들과 논리에 반대되는 성경구절들을 제시하고 주해했다. 만약에 링크의 저자가 내글에 반론을 제기하려면, 주해와 대화를 하면서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에 대해 틀렸는지 문법적으로, 해석학적으로, 역사/문화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야한다. 그래야 제대로된 반론이된다. 그러나 블로그의 저자는 내글을 제대로 읽었는지 또는 이해를 했는지 의문이간다. 사실 성경의 오이노스 포도주스이며 술을 절대로 마시면 안된다는 주장은 성서적 주장이 아니라 19세기 미국의 금주운동이라는 문화를 성서와 혼동해서 빚어낸 문화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킵바이블이나 블로그의 저자의 글은 이러한 문화적 운동을 성서의 가르침으로 혼동한,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고집에 의한 짜맞추기 해석과 변증이다.
 
1. ‘메투스코 취하기 시작하다’ (to begin to be drunk) 번역이 없는지 첫번째 글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그외에 다른 가지 이유를 추가로 설명을 하겠다.
1.1  내가 보기에는 블로그의 저자는 몇몇 목사님의 설교를 인용했던지 혹은 원어에 대한 지식이 스트롱원어코드사전을 사용하는 정도로 보인다. 그는 술취하기 시작하다” (to begin to be drunk) 라는 이상한 영어 번역을 어디에서인가 져와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영어 역본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영어 역본들을 편찬한, 헬라어에 능통한 학자들이 술취하기 시작하지 말라” (do not begin to be drunk) 라고 번역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을 봤어야 하는 아닌가? 답은,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그렇다. 결론적으로, 블로그의 저자는 성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려다 보니 자신의 생각과 눈을 닫고 있어 어떠한 증거도 증거로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1.2  에베소서 5:18에서 사용된취하다충만하다라는 단어는 모두 현재 동사로서 지속적인 상태를 뜻한다. 만약 현재 명령어를 “to begin to be”라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한다면, “취하라 뜻하는메투스케스테’ (μεθύσκεσθε) 취하기 시작하다 번역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라 뜻하는플레루스테’ (πληροῦσθε) 역시 “[성령으로] 충만하기 시작하라 번역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플레루스테 그런식으로 번역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은 성령님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다만 빈컵이나 그릇을 채우는 에너지 정도로 보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자면, 성령으로 채운다는 것은 주의 영이 에너지가 연료통을 체워나가듯 조금식 채워나가는것이 아니라, 인격체이신 주의 영이 우리안에 주가 되셔서 다스리시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플레루스테충만하기 시작하라 번역할 없고, 따라서 메투스케스테역시취하기 시작하라 번역할 없다. 오히려, ‘메투스케스테플레루스테 이미 취해있는 상태 그리고 채워져있는 상태를 뜻한다.
1.3  메투스케스테’ (μεθύσκεσθε) 취하기 시작하다 아닌취하기 시작했다 번역이 가능한 상황이 있다. 그것은 메투스케스테 현재동사 명령어가 아닌 불완전 과거 동사로 볼때에 가능하다. ‘메투스코’ (μεθύσκω) 현재 명령어와 불완전 과거 형태는 똑같다. 그러나 모든 불완전 과거 동사가 무조건 “~하기 시작했다라는 의미로 번역이 없고, 다만 기동동사 (ingressive) 일때만 그렇게 번역을 있다. 기동동사는 시작을 강조하며, 행동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로 이야기속에서 주제가 바뀌거나 행동의 방향이 새로이 바뀔때이다.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 4:11 διηκόνουν; 5:2 ἐδίδασκεν; 8:15 διηκόνει; 9:11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복음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에베소서 5:18 이야기가 아니며, 어떠한 행동의 방향이 바뀌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부정분사인’ (μὴ) 앞에 옮으로서 메투스케스테 불완전 과거일 없음을 말해준다. 이유는 헬라어에서 어떠한 행동을 금하는 금지어는 주로 현재, 부정과거 (aorist), 그리고 미래 시제 동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불완전 과거어는 절대로 금지어로 사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 함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금지명령어는 이미 행해지고 있는것을 금하는것을 의미하는 방면에, 부정과거 (aorist) 금지 명령어는 시작하는 것을 금한다. 그런데, 위에서 계속해서 설명한데로, ‘메투스케스테 현재 명령어이며, 앞에 부정분사 붙음으로서 현재금지어이다. 따라서, 이것은 이미 여러번 설명한것처럼 술취하기 시작하지 말라 아니라 이미 취해있는 상태을 금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취하기 시작하지 말라라는 주장은 문법적으로 불가능하다.
1.5  아래는 신약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재 동사, 명령어 중간태 2인칭 복수어다. 단어들에 “..하기 시작하다” (to begin to be…) 번역을 보길 바란다. 이상한 번역이 될것이다.(참고로, 단어형태따라 꾸준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여호와 증인들의 신세계 번역 성경처럼 된다.)

  • 12:15 너희 자신을 지켜라 φυλάσσεσθε
  • 13:14 너희는 만들지 말라/너희는~하지 말라/ 너희는 도모하지 말라 ποιεῖσθε; 14:1; 15:7 너희는 받아라 προσλαμβάνεσθε
  • 고후 6:17 너희는 만지지 말라 μὴ ἅπτεσθε
  • 3:9 너희는 거짓말하지 말라 μὴ ψεύδεσθε; 3:18 너희는 복종하라 ὑποτάσσεσθε; 4:1 너희는 주어라 (give) παρέχεσθε
  • 데전 5:22 너희는 절제하라 ἀπέχεσθε
  • 데후 3:14 너희는 명심하라 (take note) σημειοῦσθε
  • 10:32 너희는 기억하라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ε; 13:17 너희는 순종하라 pείθεσθε
  • 3:14 너희는 거짓말하지말라μὴ ...ψεύδεσθε; 5:16 너희는 고백하라 ἐξομολογεῖσθε
  • 벧후 3:17 너희는 조심하라 φυλάσσεσθε

1.5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사를“~하기 시작하다” (to begin to be) 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한다면, 그것은 문법적 증거와 상반되는 것으로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독선에 의한 해석이며, 같은 형태의 모든 단어들도 그러한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을 해야 할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이것은 성경이 단어들과 문구와 문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것과 미국 19세기 금주운동이라는 문화와의 대립인데, 미국의 한 문화를 성경의 가르침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것이며,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2. ‘오이노스’가 포도주임을 증명하는 구절들.
2.1  내 주위에 성경주석이 없고 도서관에 갈 상황이 아니라 모든 주석들을 살펴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본 학자들이 쓴 모든 주석과 학술지 그리고 오래전 이문제를 다룬 자료들을 읽은 기억으로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변화시켜 만드신 ‘오이노스’가 포도주스 라는 주장을 본적이 없다. 다만 존 맥아더 목사만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변화시켜 만든 포도주는 알콜성분이 전혀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80년도 후반 아니면 90년도 초에 한것이 생각나는데, 그 후에 그러한 주장을 포기한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를 해보니 그러한 주장을 유지하는것이 어려웠기 때문일것이다. 또한 근본주의 학자들도 예수님이 만드신 '오이노스'는 포도주이며, 성경에 나오는 '오이노스'는 포도주스가 아닌 포도주라고 한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오이노스’가 포도주스라고 하는 학자들의 글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주장은 주로 근본주의 성향의 목사들과 신학생들과 평신도들의 설교나 글에서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오이노스’가 포도주스라는 주장과 예수님이 물을 변화시켜 만든것이 포도주가 아닌 포도주스라는 주장은 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2.2  에베소서 5:18에는 “와인에 취하지 말라”라고 하는데, ‘와인’은 “포도주스”가 아니라 “포도주”이다. 이것은 성서저자들이 ‘오이노스’를 “포도주스”가 아닌 “포도주”로 이해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따라서 백날 ‘와인’이 “포도주스”라고 억지를 부려도 소용이 없다. 에베소서에서 사용하는 ‘오이노스’는 분명히 취하게하는 포도주임을 가르킨다. 그런데 왜 이 ‘오이노스’와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오이노스’와 다르다고 하는 것인가? 또한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포도주가 섞인 물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나실인 또한 포도와 연관된 모든것을 금했으니 그들은 맹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맹물도 마실만했다는 것이며, 당시에 마실 물이 부족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물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물이 부족한 나라들을 보건데, 물이 부족하다고해서 과일을 술로 만들어 물대신 마시는 나라는 찾아 볼 수 없으며, 그러한 나라의 국민들은 물이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마시면서 살고있다. 또한 당시 유대인들이 포도주에 높은 비율의 물을 섞어 마신것을 볼때, 이는 물이 부족해서가 아닌것을 알 수 있다. 그뿐아니라, 유대인들은 청결을 위해 식사전 손을 씻었고 손님에게 발씻을 물을 제공했는데, 성경이 술을 금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상하는것처럼 항상 기근으로 인해 고생했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과 달리 모든것을 먹고 마셨다 (마 11:18-19).
2.3  디모데전서 3:8에는 “집사는 술에 인박히지 않고…” 원어에는 ‘메 오이노 폴로 프로세콘타스’ (μὴ οἴνῳ πολλῷ προσέχοντας) 인데, 직역을 하자면 “많은 포도주에 중독되지 아니하고” 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많은” (폴로: πολλῷ) 그리고 “빠지지 아니하고 혹은 중독되지 아니하고” (μὴ …προσέχοντας) 인데 (취함과 중독을 다르게 봐야 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취할 정도로 마시지는 않지만 포도주 혹은 술이 계속해서 당기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오이노’ (οἴνῳ)가 포도주스라면 취하지 않는 포도주스를 “많이” 마시는 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포도주스에 중독되지 않은자를 집사로 택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확실한것은 ‘오이노’는 포도주 곧 술이며, 바울은 포도주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에 빠져 사는 사람은 집사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2.4   바울은 디도서 2:3에서 “늙은 여자로는…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여기서 주목해야될 단어는 “많은” (폴로: πολλῷ) 그리고 “종이 되지 아니하며” (메…데둘로메나스: μὴ…δεδουλωμένας) 이다. 여기서 ‘오이노’ (οἴνῳ) 가 “포도주스”라면 형용사 “많은”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것이고 (그 어느 누구가 포도주스를 많이 마시는 것에 트집을 잡겠는가?), 또한 “종이 되지 아니하며”는 바로 포도주에 취해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술을 금하라는 말이 아니라 포도주 곧 술을 과하게 마셔 결국에 술에 중독되지 말라는 것이다.
2.5  고전 11:21 에는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여기서 “취함이라” (메투에이: μεθύει) 라 함은 술에 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상황은 믿는 자들이 모여 함께 만찬을 하는 상황에서 과하게 술을 마셔 취했다는 것인데, 바울은 술을 금하지 않고 다만 취함을 탓하고 있다.
2.6  물론, 술때문에 자식과 아내를 구타하거나, 술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여 남의 인생을 망치거나 위협을 주는 인간들과 술만 마시면 개버릇 나오는 사람들, 또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폭행하고 희롱하는 놈들 곧 술을 절제 할 수 없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은 술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모든사람들이 술을 조절 하지 못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3. 블로그의 저자는 내글을 개인의 해석이라면서 나 혼자의 생각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정말 그러한가?
3.1  교부들의 술에 대한 가르침
3.1.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 어떤이들은 건강만을 위해 포도주를 약으로 사용하고, 다른이들은 기분전환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는데 그것은 매우 적절하다. 우선, 포도주는 마시는 사람으로 이전보다 자비롭게 만들고, 동반자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게 하며, 집안의 하인들에게 친절하게 만들고, 친구들에게는 유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취했을때, 그는 오히려 폭력적으로 변한다” (Schaff, Ante-Nicene Fathers, vol. 2 522).
  •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와서 계셨을때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 [포도주를] 드셨는가? 바른 예절과 적당함이 아니었는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드신것이 아니었던가? 안심하라, 주님도 인간이셨으며 그도 포도주를 드셨다. 그리고 그가 포도주를 축복하시고 말씀하시길, “받아 마셔라; 이것은 피다” – 포도나무의 그리고 누구든지 [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절도를 지켜야 함을 그는 [주님은] 절기때에 가르치셨던 것으로 확실히 보여주셨는데, 그는 포도주에 영향을 받아 [취한 상태에서] 가르치지 않으셨다.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내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마시기전에는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나온것을 마시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가 축복하신것은 포도주였으며, 주님께서 드셨던것은 포도주였다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길인자가 왔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보라 음식을 탐하고 술을 탐하는 자이며 세리들의 친구이다’”  (ANF, series 2, vol. 2 526)
  • 그러나 저녁때, 저녁식사 시간즈음에,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 (ANF, vol. 2 521)

3.1.2        제롬

  • 주님은포도주를 탐하는 라고 불리우셨다. 또한 디모데의 약한 위를 위해 포도주를 적당히 [마실것을] 허락하셨다. 나는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나이, 건강, 혹은 체질에 따른 한계를 지킬것을 요구한다”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2, vol. 6 253).

3.1.3        어거스틴

  • 술고래는 항상 취해있지 않다. 또한 사람은 술고래가 되지 않고서도 한번즈음은 취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로운 사람에 한해서는 한번의 취함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NPNF, series 2, vol. 4  495). 여기서의 어거스틴의 경고는 술취함에 대한 것이지 술마시는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3.1.4        키프리아누스

  • 어떤곳에서는 복음적 그리고 사도적 규율과는 달리 주님의 잔에 [성찬식에] 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물로서는 예수님의 피를 표현 [상징] 없다. 성령님은 시편에서 성례에 대해 침묵하고 계시지 않으며, 주의 잔을 언급하시면서 말씀하시길, “취하게 하는 당신의 잔은 얼마나 훌륭한가!” 과연 취하게 만드는 잔은 확실하게 포도주를 담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물은 어느 누구도 취하게 없기때문이다” (Ante-Nicene Fathers, vol. 5 875).

3.1.5        크리소스텀

  • 술취한자가 없이 하라; 포도주는 하나님이 만드신것이다, 그러나 술취함은 사탄의 행위이다, 포도주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품을 비난하지 말고 도리어 같은 인간들의 광기를 비난하라” (NPNF, series 1, vol. 9 462).
  • 5:17,18 대해, “포도주는 우리의 쾌활함을 위해 주어진 것이지 취함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술취함은 포도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폭음에서 부터이다작은 컵의 포도주와 한덩어리는 사람의 배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NPNF, series 1, vol. 13 257, 258).

3.1.6  교부들은 술취함에 따르는 위험에 대해 너무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술취함에 대해 많은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술취함을 탓하지 적당하게 또는 적게 마시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2  13세기 신학자이며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

  • “…사람이 포도주를 모두 금하라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라는 것이다어떤이들은 포도주를 모두 금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나 장소들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사도 [바울] 단순히 술을 금하는 것이 좋은것이라고 하지않는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있는 상황에서 [금주는] 좋다는 것이다” (Summa Theologica  4100)..

3.3  종교개혁자들
3.3.1        루터

  • 남자들은 와인과 여자들로 인해 잘못될 있다. 그렇다고해서 와인을 금하고 여자들을 없애야 하는가?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들은 숭배했었다. 그렇다면 모든것들을 하늘에서 뽑아내야 하는가?...그러나 내가 가만히 앉아서 빌립과 앰스돌프와 맥주를 마시는 동안 하나님은 교황제에 타격을 입히셨다” (Roland H. Bainton, Here I Stand 212).
  • 루터는 레오날드 코프에게 자신과 카타리나와의 결혼식 초대장을 보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나는 목요일에 결혼하게 됩니다. 나의 카티에와 나는 당신이 최고의 톨가우 맥주 한통을 보낼것을 부탁합니다. 만약에 맛이 없다면 당신이 전부 다 마셔야 겁니다” (Here I Stand 290).
  •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는 자주 아프던 루터를 위해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시게 했었는데, “맥주는 그의 불면증을 치료하는 진정제 역활을 했고 신장의 결석을 녹이는데 사용되었으며, 그녀 스스로 맥주를 양조했다” (Here I Stand,  292-293).

3.3.2        칼빈

  • 그러나 많은 양의 포도주, 그것도 가장 좋은 포도주를 절제의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해주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John 2:8).
  • “[시편저자는]…이것외에 포도주와 기름을 언급했는데, 둘은 인류에게 필요한것을 공급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삶에 유쾌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시편 104:14).
  •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하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것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그의 선하심으로인해포도주와 기름으로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하심으로자연은 분명히 마시는 물로 충족할것이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더한것은 하나님의 차고 넘치는 관대함으로 부터이다사람이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누릴때, 그들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빛난다우리가 그의 [선지자의] 말에서 추측할 있는것은 바로 포도주를 필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것 만이 합법적인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즐거워지는것 역시 합법적이다” (Psalms 104:5).
  • 만약에 당신이 포도주를 금하기로 서약한다면, 또한 마치 그렇게 하는 것에 어떤 성결함이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라면, 당신은 미신적이다” (The Institutes 998-999).
  • 포도주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즐거워지고, 그들의 힘이 강화되고, 온전한 사람이 강해지는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주님의 피로 인해 그와 같은 혜택을 얻게된다” (Tracts and Treatises of John Calvin, Volume 1 89).

3.4 제네바시의 목회자들의 연봉

  • 1541-1601사이에 제네바시의 목회자의 연봉은 사택을 포함해서 보리와 포도주를 주었다고 한다 (Scott M. Manetsch, Calvin's Company of Pastors 117). 그뿐 아니라 목회자들의 적은 연봉을 보충하기 위해 가끔식 포도주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118).
  • 칼빈의 연봉은 “500 florin [은화/동전] 함께 , 그리고 (아마도 250 갤런) 포도주였다.” (J.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160)

3.5  너무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읽었기에 기억이 가물거리고, 그 자료를 찾지 못하겠지만, 설교가들의 왕자라고 불리우는 스펄젼 목사는 일반적으로 술을 금하는 남침례교단이 우러러 보는 존재이다. 그는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하는 설교가이었다고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바로 스펄젼 목사는 술도 마시고 담배 (Cigar) 도 피우신 분이다. 물론 담배가 건강을 해치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끊었지만. 그리고 담배를 끊고 나서도 그것을 죄라고 한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이 된다.
 
3.6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일평생 복음의 핵심을 전하신 분이다. 그의 설교는 복음의 본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전기를 읽은지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기에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는 설교준비를 하기 전 항상 위스키? (보드카?)를 한잔하고 시작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한 습관에 빠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 즉시로 술을 끊었다고 한다. 그것은 성경이 술을 금하거나 그것을 죄라고 가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러한 습관을 끊기 위함 곧 스스로 절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3.7 성경은 술취함과 중독되는것을 금하는 것이지 술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이해하고 가르치던것임을 충분히 위에서 증명했다고 본다.
 
4.남침례교단에 속한 교회들 대부분은 술을 금한다. 그러나 공부를 제대로 한 남침례교단의 목사들 중 성경이 술을 금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또한 그 교단의 신학자들 중 대부분은 성경이 술을 금한다고 보고 있지 않다. (나실인을 언급하며,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취고의 선택이라며 금주를 정당화 하던 현 남침례신학교의 총장들 있긴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나실인의 언약을 한 바울도 지속적으로 나실인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해석이라는데에 있다.) 특히 한동안 미국 복음주의의 최고의 조직신학자라고 불리웠고 남침례교단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밀라드 에릭슨 (에릭슨은 자신을 특정 침례교단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다만 교단을 초월한 침례교인이라는 넓은 틀에서 자신을 본다) 은 술 마시는 것을 죄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남침례교회들은 술을 금한다. 그러나, 남침례교단이 술을 금한 것은 술금지운동이 시작된 19세기 말이다.  그전에는 남침례단에서는 전혀 술을 금하지 않았다. 원래 교리나 어떤 집단적인 강요에 거부반응을 하던 남침례교단은 19세기 초에 시작된 금주주의에 휩쓸려 술에 관해 비성서적이고 율법적인 방침을 교단적으로 거의 모든 교회에 적용했다. 결국에는 성서가 아니라 미국의 19세기 금주 운동이라는 비성서적인 극단주의에 굴복한 것이다.
 
5. 술은 하지 않는게 좋다고 권면하는 것과, 성경은 술을 금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다른것이다. 술의 위험성 때문에 하지 않는게 좋다고 권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취함이나 중독됨은 금할 수 있으나, 조금식 마시는것을 금할 수는 없는것이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금하지 않는 것을 금하는 것은 성경을 대항하는 것이다. 다만, 술때문에 자신과 남의 인생을 망칠것 같은 사람에게는 술을 금하는 것이 좋다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긍극적으로, 술을 주님이 본을 보이신데로 사용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금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단이며, 그 결단을 존중해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것이 좋다고 본다. 그러나 술을 절제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식 마시는 것은 좋다고 본다. 결국에는 개인에게 그리고 개인의 상황에 있어서 어떠한 선택이 지혜롭냐가 관건이지 술을 마시는 것이 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6. 블로그의 저자는 “때가 악하니 술을 마셔도 된다고 말하는 거짓 목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라고 심하게 함부로 말을 한다. 미안하지만 고정관념과 고집과 독선과 자신이 선호하는 문화라는 색안경을 끼고 성경을 바라보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성경을 바르게 주해할 실력도 않되면서 제대로 성경을 주해하는 사람들을 악한 시대의 거짓 목사들로 몰아가고, 또 제대로된 주해를 이해못하니 과연 무지한것인지 아니면 뭐가 모자란것인지 잘 모르겠다. (심하게 말하니 나도 심하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이 말하고자하는 것에 솔직해지지 못하고 다만 자신들의 정서나 신념과 또는 고정관념 곧 자신의 생각에 억지로 짜맞추어 해석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거짓을 전하는 자들이며, 그들이야말로 성경이 말하고자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다만 자신들의 주장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닌가? 항상 무지한 극단적 근본주의자이며 독선적인 사람들이 성서적 근거없이 쉽게 그리고 함부로 남에 대해 거짓 목사 거짓 선지자라고 하면서 악으로 몰고 간다.
 
7. 블로그의 저자는 “부디 정신차리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입맛대로 풀어서 예수님을 욕 보이고, 술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짓 안하셨으면 합니다” 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맛대로 풀어 억지 부리며 무식함을 드러내어 기독교 신앙을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속박하는 짓 좀 안했으면 한다.

 

8. 블로그의 저자는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술을 마셔도 된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높은 지위의 분들과 격식을 차리고 정식으로 만나는 귀한 자리에 술을 마시고 가십니까?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뿐만이 아니라 내 삶 속 기도와 찬양 모든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런 만왕의 왕이시며 경외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께 더 조아리고 조심해야 맞건만 기독교인이 술마셔도 상관없다면, 교회당에 갈 때에도 술 한 잔 걸치고 가도 상관없다는 소린데... 하나님께 감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맥주 마시면서 예배하는 어느 호주 교회도 있다던데... 정말 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릴 사랑하시듯,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술 냄새 풍기는 사람이 아닌 정결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라고 한다. 정말 우습지도 않다. 고린도 전서 11:21을 보면 믿는자들이 모여 (교회에 – 믿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기에)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포도주도 마셨다. 그리고 위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바울은 적당히 마시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갈때 술을 마시고 가냐고 묻는데, 서양에서는 한잔 하고 만나도 상관없다. 한잔 했다고 술냄새 풍기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리고 교회가기전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많은 양을 마셔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곧 적은 양을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되니 않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시험을 줄 수 있기에 교회 가기전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인 것이다. 호주에 맥주마시면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다면 (왜 이처럼 극단적인 예만 드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술을 금하지 않는다고 제대로 가르치는 목사들 중 교회에 술을 가져와 마시라고 하는 목사는 찾기 쉽지 않다), 그것은 맥주를 마시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전념하지 않는다는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교회문화를 조성하는것에 따르는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교제 시간에 맥주를 조금 마시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찬식에 매주 포도주를 사용하는 교회들이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고해서 이제는 모든 교회가 맥주와 포도주로 교제를 나누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을 성경은 금하지 않는다는것은 술을 권장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술을 적당히 마시는 행위는 성서적으로 죄가 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것으로서 신앙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일방적으로 술마시면 안된다고 떠들지 말고 바른 주해로 왜 안되는지 또는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견해가 왜 틀렸는지부터 먼저 밝혀야 할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교회에서 술마셔도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적으로 그러한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교회에서 직분까지 맡고서 술 좋아하는 사람들 중 이글을 가지고 자신들의 술좋아함을 정당화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그러한 것을 정당화하라고 쓴 글이 아니다.)
 

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http://jesus4today.tistory.co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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