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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4Today!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동안 성화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었었고 대구성서아카데미의 정용섭교수의 좋지 않은 설교비평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최고의 강해설교가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박목사님의 많은 설교 중 특히 욥기 강해를 추천하고 싶다. 나도 들은지 일년이 넘었기에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다른 설교에서도 그렇지만 성도들이 겪는 문제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질문들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것들에 대한 과정과 결론이 그대로 녹아져 있는 설교라고 생각된다. http://lamp.kr/lamp-sermon/?cat=29
설교를 듣다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푸는 영어 단어 중 하나가 ‘컴패션’ (compassion) 이다. 이들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라고 하신 단어는 영어로 ‘컴패션’ 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함께하다”를 뜻하는 라틴어의 ‘컴’(com) 과 ‘고통’을 뜻하는 ‘패션’ (passion) 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라며, 예수님은 우리를 단지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과 함께 하신다” 또는 “함께 아파 하신다” 라고 설명하는데, 이러한 풀이를 하는 설교와 간증과 글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도데체 어디서 이런 풀이를 줏어듣고 사용하는지 궁금하며 또 왜 이렇게 영어 단어의 의미를 추적하려고 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불쌍히 여기사”로 번역된 단어의 의미를 연구..
수십년 전 이었다. 어느 신앙 좋은 대학원생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 중 한 학생은 자신은 어릴때 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교회를 다녔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야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이다. 좀 이상해서 물어보니 어느 누군가가 자신에게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봤고 그 질문에 자신이 없어 대답을 못했었다고 한다. 그후에 그 질문을 던진 분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후에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 전에는 예수를 믿은것이 아니었냐고. 그랬더니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구원의 확신을 갖기 전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할때 하나님이 함께하시..
오래전 전 아무개 목사의 설교가 생각이 난다. 단 한번의 예배에 모든것을 걸라는 내용이었다. 그와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지난 몇해 동안 여러 목회자들을 통해 너무 자주 들었다. 단 한번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예배에 모든것을 걸라는 것이었다. 도데체 예배가 무엇이길래 예배에 모든것을 걸어야만 하는가? 예배에 모든것을 걸라고 설교하는 분들에게는 예배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일주일 내내 실패를 거듭하고 살았더라도 예배에 모든것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이민교회와 특히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이해로 부터 시작이 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에서 예배만 잘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사형통이라는 착각이 그들로 가정과 사회에서 개판을 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가정에서 아내는 ..
"History and Exegesis: New Testament Essays in Honor of Dr. E. Earle Ellis" 에 적혀있는 신학자 고 E. 얼 엘리스 교수에 대한 실화이다. "[엘리스 교수는] 튜빙겐 대학에 재학중 돈을 절약하기 위해 자주 자신의 자취방에서 식사를 했다. 그는 빵집에서 썰지 않은 통 빵을 주문했는데 신선함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 당혹스럽게도 그는 "썰지 않은" (운게슈니튼) 이라는 단어를 "운베슈니튼"으로 잘못 배웠다. 그를 늘 기다리는 빵집 아가씨는 웃음을 지으며 그 단어를 고쳐 주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는 늘 "운베슈니트네스 브롯"을 달라고 했다. 그가 미켈 교수의 갈라디어서 강의를 들으면서 *"베슈나이둥스파르타이"에 대해 말한것을 들었을때에서..
나는 예배시간에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려는 성가대나 찬양대와 찬양 인도자들 그리고 대표 기도자들과 설교자들을 여러 교회에서 보았는데 그들이 염려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심과 선동으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가대는 은혜롭게 찬양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먼저 자신들이 은혜를 받어야 성가를 듣는 성도님들도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을 한다. 찬양 인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흔들거나 눈을 지극히 감거나 손으로 성령님과 은혜를 꽉 잡는 시늉을 하거나 손을 높이들거나 손뼉을 과하게 치며 선동적인 찬양을 한다. 어쩔때는 감성을 자극하는 곡들만 골라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것을 은혜로운 찬양이었다는 환상에 빠져 있기도 한다. 대표 기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뜨거움을 성도들에게 전하기 ..
내가 올린 원어풀이에 대한 문제들을 지적한 글들을 보며 목회자도 사람인데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이다. 목회자 뿐만이 아니라 신학자들도 실수를 한다. 단어 풀이에 대한 실수를 하기도 하고 해석 선택에 있어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다만 그 실수가 어떠한 실수이냐? 라는 것이다. 가끔 하는 실수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실수인가? 또 확실치 않은 해석을 확실한 또는 절대적인 진리로 가르치는가 아닌가? 선동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해를 위해서인가? 이다. 내 주위에는 목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고 방지일 목사님과 말씀 연구와 설교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해석의 선택에 있어서 고민을 하는 ..
어떤 교회에는 찬양을 인도하는 음악/예배 목사님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이 즐겨 풀이를 하는 단어가 ‘예배’/’경배’를 뜻하는 영어 ‘워쉽’/‘워십’ (worship) 이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들도 설교를 하며 ‘예배’/’경배’라는 단어를 영어로 풀이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영어 ‘워십’은 ‘워스십’ (worth-ship) 에서 유래했다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 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해석이 매우 불편하다. 우선, 왜 모두가 다 이해하는 좋은 한국어를 놓고 일부러 영어 단어를 들먹이면서 그 단어의 의미를 풀려고 하는 것인가? 한국어 보다 영어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더 많이 숨겨져 있거나 내포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영어 단어들이 ..
목회자의 설교 향상을 위해 교회에서 투자를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경험한것에 따른 주관적인 것이다. 1. 교회는 성경연구 프로그램을 교회 사역자들을 위해 구입해야 한다. 성경연구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는데 목회자들이 자비로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기에 교회용으로 모든 사역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돈이 없기에 불법으로 프로그램을 복사해 사용하는 목회자들이 가끔식 있는데 그것은 도적질을 한것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니 좋은것이 아니다.) 내가 추천하는 프로그램은 학적인 연구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바이블워크스(BibleWorks) 와 어코댄스(Accordance) 인데 이둘을 함께 사던지 아니면 주로 설교자들을 위해 만든 로고스(Log..
한국이나 미국이나, 교인들을 보면 정말 궁금한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과연 예수를 믿는것인지 목사를 믿는것인지 의심이 들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들의 행동과 신념을 보면, 예수 숭배가 아닌 목사 숭배로 밖에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고 김성수 목사가 목회하던 서울과 남가주 서머나 교회는 김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에도 후임을 모시지 않고 그의 설교를 동영상으로 보고 들으면서 예배를 드렸고, 아직도 여러 서머나 교회는 김목사 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도데체 김목사가 무엇이었기에 이런 코믹한 일들을 하는가?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기로 거부했던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의 생전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을때 이스라엘은 ..
(모든 인용한 한글성경구절은 개역개정 이고 헬라어는 SBLGNT 와 German Bible Society 의 Septuagint 이다.) 내가 지난 일년 동안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로드의 사랑에 대한 질문과 답에 대한 설교를 같은 교회에서 두-세분의 다른 설교가를 통해 네번 정도 들었다. 그 중 두번의 설교는 ‘아가페’ 와 ‘필리아’를 구분하는 내용을 담은 설교였다. 이외에 또 다른 설교를 들었는데 인터넷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아가페’ 사랑에 대한 설교들과 블로그들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가페는...무조건적인 사랑이다;차별하지 않는 사랑이다;헌신적인 사랑이다;의지적인 사랑이다;분별력있는 사랑이다;이성적인 사랑이다;노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기분에 따라 바뀌는 감정적인..
폐북 포럼에서 장로교단에서 목회하던(?) 어느분(이후 00)과 딸리는 한국어로 논의를 했다. 그분은 제네바 성경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되었고, 그 성경의 marginal notes 에 감동받은 분이다. 그 이유는 제네바 성경이 칼빈의 영향을 받은 성경이었기에 마진에 있는 노트를 통해 칼빈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알게 된다는 기쁨때문이었다. 제네바 성경은 1557년도에 신약이 완성되었고, 1560년도에 신구약 전체가 완성되었다. 제네바 성경 이전에 많은 영어 번역본들이 있었다. 최초의 영어 번역본은 600년도 즈음에 성경의 한부분을 번역한것이었고 그 후에도 부분적으로 번역된 여러 성경들이 있었으나, 신구약 전체를 번역한것은 1382 년 즈음에 라틴불가타를 번역한 위클리프 성경이 최초였다. 그 이후에는 독일어 ..
최근에 고00 목사라는 분의 설교를 한국 어느 대형교회 웹사이트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설교본문은 요한복음 17:2-3 이었다. 설교를 듣고 나니 좀 답답한 부분이 있어서 혹시나 다른 설교도 이런식으로 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그가 시무하는 미국에 있는 교회 웹사이트를 통해 그의 설교 두편을 더 들어 보았는데, 역시나 이었다. 나는 고 목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의 설교 세편을 통해 고 목사는 복음과 선교에 대한 열정도 있고 진실된 목회자로 느꼈다. 그러나 원어 사용에서의 문제가 있고, 이것은 고 목사뿐만 아니라 명 설교가들과 신학교수를 하는 목사들을 포함한 수 많은 목회자들의 문제이기에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것이니 이해를 바란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서 3절은 아래와 같다. 2 아버지..
후러싱 제일연합감리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한 김정호 목사의 설교를 추천한다.http://www.fumc.net/sermon나는 이분의 정치성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설교를 추천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다: 그의 설교는 보편적으로 사회정의와 복음의 균형이 잘 잡혀있으며,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는 것이다. 특히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지식의 축척과 연륜에 따른 체험이 없이 진공상태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자주 이중잦대를 사용하여 미화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괜찮은 설교이다. 2001 년도에 처음 들었을때는..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솔로몬이 구한 지혜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이 설교에서 9절에 솔로몬이 구한 “지혜로운 마음”이 지혜가 아니라 “레브 쇼메아” 곧 "듣는 마음”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설교의 핵심내용으로 전개시킨 설교였으며,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되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솔로몬이 구한것은 "지혜로운 마음" 이 아니라 "레브 쇼메아" 곧 "듣는 마음"이라고 가르치는 설교들과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레브 쇼메아"는 정말 "지혜로운 마음"이 아닌 것인가? 첫째, 나는 원어를 사용하는 목사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원어 사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 특정 단어를 계속해서 늘어 놓거나 번역과 대조해서 새로운 의미를 주지 않는 원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
데모를 주도하는 카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 중 "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 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정말 "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인가? 도데체 어떠한 차원에 그렇다는 것인가? 성경을 눈을 크게 뜨고 다 뒤져봐도 "민중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라고 하는 곳이 없다. 오히려 민중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민중이 원하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숭배한 사건이다. 그 결과는 피비린내 나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뿐 아니라 민중은 항상 하나님을 대항해 왔으며,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착각에 빠져 모든것이 형통할 것이라며 참된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그뿐 아니라 그 민중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대제사장들..
나는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평이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가 궁금해서 그 카페에 가입했다가 2014년 11월 8일에 탈퇴 되었다. 이메일로 받은 탈퇴 사유는 다음과 같다. 탈퇴 사유 : 우리 카페 내 자체 운영 원칙에 위배되는 활동 나는 내가 어떤 원칙에 위배되는 활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dsmedic (이인규 권사) 이라는 분이 “김성수 목사의 잘못된 설교에 대한 비판” 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의 설명과 함께 동영상 링크를 올렸다: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4447#39636“이 자료를 올리는 이유는 김성수목사의 설교가 얼마나 엉터리인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설교가 복음적..
아래 링크는 김성수 목사님의 엉터리 원어 풀이에 대한 증거 자료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aRup1N7VvEU 동영상 10분 40초에서 44초를 보면, 그가 창세기 1 장 1절을 히브리어로 적는 것을 보여 준다. 문제는 그가 중요한 단어에서 스펠링(철자법)을 틀리게 했으며, 또 한 단어에서는 접속사를 빼놓았다. 그뿐 아니라 어느 단어를 읽을때는 정관사를 빼놓고 읽었다. 이것에 대해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지 않나? 라고 반문을 할 수 있다. 물론이다. 그러나 설교에 능숙능란한 김 목사가 할 실수는 아니며 너무 많은 문제를 실수로 볼 수 없다. 특히 창세기 1장 1절은 너무 잘알고 있는 구절이기에 히브리어 첫학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외우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면 도데체..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어느 목사님이 특정인물을 겨냥해서 비웃는 얼굴로 학계에 종사한 사람은 (신학자) 목회현장과 동떨어진 말을 한다며 그렇기에 목회를 잘하신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이것은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이다. 나는 신학자들을 그런식으로 무시하고 비웃거나 신학과 신학자들이 필요없다고 하는 목사들 모두를 의심한다. 그 이유는, 신학자들을 욕하거나 그들을 비하하는 말을하는 목사들 중에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신학자들을 현장감 없는 탁상공론만 하는 자들로 교인들에게 인식시켜야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숨기거나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이 목회..
(나는 전병욱 목사가 삼일교회에서 나온 후 한 설교는 들어보지 않았고, 다만 한 일년전에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 하는 설교 한편을 조금 들은 것 밖에 없다. 아래는 2007년도와 그 후에 미국집회에서의 설교 내용에 대한 것이다.) 2010-03-25나는 전병욱 목사의 설교를 2007년도에 내가 출석만 하던 교회에서 처음으로 직접 듣게 되었다. 그전에는 그의 “가르침” 의 일 부분을 그의 추종자들로 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설교를 한 열번 들었을까? 그 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어쨋건, 미국에 있는 그 어느 장로교회에서 여러번 집회할 때 들은 설교를 아래와 같이 정리 해본다. 기존 해석을 잘 못된것 처럼 떠들어댄 후 자신의 해석이 더 위대하다 라는 생각을 듣는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자신의 깨달음이..
성경에 보면 ‘증인’으로 번역된 헬라어 ‘말투스’ (μάρτυς) 혹은 ‘마르투스’ 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가 나오는 설교를 듣다 보면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말털’ (martyr) 이 '말투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라며 ‘증인’이라는 것은 곧 ‘순교자’를 뜻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면 과연 ‘말투스’라는 단어가 ‘증인’이라는 뜻 외에 ‘순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가? 첫째,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rtyr’ 이 ‘말투스’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1 세기 헬라어에 거꾸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인 것이다. 둘째, 성경에서 문맥상 ‘말투스’는 주로 역사적 그리고 법적 ‘증인’ 을 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시록에서는 예수의 ‘증인’이라는 ..
(일요일, 29 8월 2010 14:29)http://wkcseattle.org/154#0위에 링크는 김강욱 목사님의 창세기 설교 (연구 발표) 이다.간단하게 exegetical 문제 한가지를 다루겠다.우선 원어를 보자 (BHS).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베뤄쉬트(태초에) | 바라(창조하시다) | 엘로힘(하나님) | 엣트(*) | 하-샤마임(하늘들: the heavens) | 봐-(그리고: and)엣트(*) | 하-에렛쯔(땅: the earth) 1. 김강웅 목사님은 '엣트' (빨간색의 단어)를 "권위있는" 옥스포드 사전에 "with" (함께하다) 라고 되어 있으며, 기독교 학자들이 알수 있는..
(일요일, 12 9월 2010 22:35)지난 몇 주동안 어느 교회에서 듣던 질문은 "왜 한인교회에서 자란 우리의 1.5세 와 2세 자녀들이 한인교회로 돌아오지 않는가?" 이다. 오늘 설교한 어느 목사는 설교시간 50 분중 45분을 이문제에 대해 다루었다. 성서 해석도 없이 시계 추 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뉴욕의 뤼디멀 장로교회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PCA)) 의 팀 켈러 (Tim Keller) 목사를 방문한 사례를 들었다. (1.5-2세 한-미 인이 5,000명 교인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교회다.) 그곳에서 대형 한인 감리교회의 김00 목사가 위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고 한다. 그때 팀 켈러 목사의 답은 한국교회는 장자의..
http://smyrnachurch.com/index.php?mid=SanSangSermons 여차저차 해서 호기심으로 고 김성수 목사님의 산상수훈 25번을 듣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성도들이 그를 따르고 있으며, 그의 원어 풀이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미국도 또한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복음의 깊은 비밀을 파헤치며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 즈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그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그가 담임하던 교회는 새로운 목회자가 오기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김목사의 설교 동영상을 보며 예배드리기를 고집해 왔었다. 그것은 김목사외에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분이 없다 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인과 유가족에게는 죄송하지만 틀린것은 바로 잡아..
임영수 목사님이 계시는 모새골입니다. 설교를 차분히 하시지만 계속 듣다보면 그분의 신앙/신학의 깊이를 알 수 있다. 극단적이지 않고 조용히 바른 길을 제시하시는 분이시다.http://mosegol.org/
Jesus4Today! 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비본질적인것이 본질적인것으로 둔갑하고, 비상식적이고 비객관적인 개인의 발상이 우주적 진리처럼 전해지고 그것을 믿고 따르는, 개인과 집단의 야망이 하나님의 꿈(비젼)으로 아름답게 포장되는, 성서본문이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해지는, 몰상식을 상식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본문이 실종되고 오히려 개인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많은 한국교회와 미국한인교회의 사역자들과 교인들에 대한 분노를 삭히는 수단으로 이 블로그를 만들어 보았읍니다. 긍극적인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본질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저와 여러분들의 생각/마음이 새롭게 변하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읍니다. 서로..
마태복음 28장 18-20 절의 원어 문법을 보다가, 호기심에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성경이라고 가르치는 피터 럭크만파의 정동수 목사가 혹시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교했나 찾아보다가 그의 마태복음 강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의 내용은 그저 그러했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가 사도행전 1장 3절에 있어 개역성경의 번역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눈에 뛰었다. 그것은 영어인 'infallible' 에 대한 번역이다. 정 목사는 개역 성경에 '확실한' 이라는 번역이 'infallible' 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정 목사는 ‘infallible’ 를 '절대 확신' 이라고 그의 킹제임스 흠정역에 번역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정목사는 사전적 의미를 따라 그렇게 번역한것 같..
아래 링크 참조.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00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과연 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것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는 주장을 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셨다는 윗 링크에 있는 정동수 목사의 웹사이트에 있는 글들을 읽어 보았다. 그 글들은 김재욱이라는 분과 관리자 (정 목사?) 가 올린 글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서 ..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파워’ (power) 이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파워'라는단어에 익숙해 있을것이다. 또한 전 아무개 목사의 '파워'로 시작하는주제의 강해서가 한동안 인기가 있었다. '파워' (power) 는 바로 힘 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이다. 왜 이 단어가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영어에 익숙해 있는, 미국에서 목회하는한인 목회자들이 한국어로설교를 하면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것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그 단어를 자주 쓰시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신기한 현상이다. 어쩌면 힘, 능력, 권능 이라는 한국어 보다 ‘파워’가 더욱 강렬하게느껴져서인가? ‘파워’ 하면 때려 부수는 힘을 떠올리..
이곳 미국에 있는 남침례교단과 장로교단의 한인목사들 몇몇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가관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카톨릭 신부들이 착용하고 감리교 목사들이 한동안 착용하던 하얀 플라스틱 칼라가 달린 성직자 의복을 입고 다니는 그것이다. 오히려 감리교단에서는 그 옷을 입지 않는 목사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말이다. 성직자 의복을 왜 그렇게들 입고 싶어들 하는지 궁금하다. 그것을 입으면 신령해 보이기 때문인가? 폼이 나기 때문인가? 아니면 똑똑하게 보이고 싶어서인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인가? 그렇게도 목사 대접 받고 싶어서인가? 그런한 것들이 아니라면 성직자라고 표를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도 잘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평복을 입고 다녔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