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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유월절 그리고 아르토스 (무교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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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월절
몇달전 내가 헬라어 ‘아르토스’는 보편적인 “빵”을 뜻하며, 문맥상 구약과 신약에서 “만나”, “무교병”, “유교병”을 뜻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최후에 만찬에서 사용된 “빵” (아르토스) 는 무교병을 뜻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글을 이해 못하고 이상하고 황당한 초딩같은 댓글을 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답은 후에 따로 올릴것이고, 이곳에서는 요한복음서에서의 유월절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 분의 댓글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한다. (시간이 없어 정리를 제대로 못하고 올리느라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더라도 이해하시라.)
1.1 우선 스트롱 원어 코드 사전에 대한 오해들이 있는것 같은데, 특정 단어에 대한 모든 정의가 다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스트롱원어코드사전에 나온 정의가 다 옳은 것이 아니다. 스트롱원어코드사전은 단어들이 어디에서 사용되었는지 잘 정리를 해 놓은 사전이지, 그 단어들의 의미들이 어느때에 가능한지를 설명하는 렉시콘이 아니며 또 그 단어들에 대한 정의가 다 옳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원어의 의미를 찾기위해 스트롱원어코드사전만을 의지하는것은 문제가 된다. 또한, 바른 정의를 찾는것이 문제 해결의 기본임을 이곳에서 보여 주고자 한다.
1.2 ‘토 파스카’ (τό πάσχα).
‘토 파스카’라는 헬라어 단어는 영어로 “the Passover”인데 한국어로는 “유월절”이다. 스트롱원어코드사전에는 “유월절 잔치” 혹은 “유월절 양”이라는 두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문제는 바로 그 의미가 “유월절 잔치”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바로 그냥 “유월절”이다. 또한 “유월절 양”이라는 의미는 “희생하다”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될때에만 “유월절 양”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월절 음식이 꼭 양 고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출애굽기 12.5에 의하면 염소를 먹어도 되며, 8 절에의하면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었다. 따라서 ‘토 파스카’는 유월절에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뜻하는 것이지 꼭 “유월절 양”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제사하다”, “잡다” 혹은 “희생하다” 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될때에만 “유월절 어린양” 혹은 유월절 짐승을 뜻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짐승의 종류를 언급하지 않으면 보편적으로 “유월절 양”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한복음 18.8에서는 ‘토 파스카’가 “희생하다”라는 단어와 사용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는 절대로 “유월절 음식”을 뜻하지 꼭 “유월절 양”을 뜻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파스카’는 유월절만을 뜻하지 않고 무교절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유교절 식사” 나 “유월절 음식”이라는 정의 역시 “먹다” 혹은 “잔치”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했을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2. 문맥.
가장 큰 문맥은 복음서이다. 이말은 바로 어느 특정 복음서에 나오는 유월절에 대해 이해를 하려면, 모든 복음서에서 그 유월절에 대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 설명하는 유월절 그리고 그것과 연관해서 예수님에 대한 사건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관복음에서 설명하는 유월절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서야 복음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 (성서사본비평은 하지 않겠다.)
2.1 우선 유월절에 대한 문제는, 요한복음 19.14에서 발생하는데, 개역개정에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 유월절이 아니라 유월절을 준비하는 날이라며, 공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드셨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구절을 증거로 예수님이 드신 음식은 유월절 음식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며 공관복음의 진술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사숙고하기는 커녕, 일방적인 단순논리와 새로운 언약이라는 전제에 짜 맞춘 선입견을 따라 쉬운 길을 선택한 정직하지 못한 주장일 뿐이다.
3. 복음서에의 유월절
3.1 마태복음 26.18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가르켜 말씀하시기를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이구절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시겠다고 하시지 유월절 전날을 준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19절에는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이것은 유월절 전날에 집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명하신대로 유월절 음식을 먹기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월절 전날이었다면 유월절 음식을 먹기위한 준비를 했다고 할 수 없다.
3.2 마가복음 14.12 절에는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날인데 (저녁 6시 전), 예수님이 “유월절 음식 (τό πάσχα)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라고 명한 그 날이 이미 무교절 첫날이며, 그 날이 곧 양을 잡는 날이라고 마가는 설명하고 있다. 16절에는 “양을 잡는 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던대로 준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준비한다는 단어는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헤토이마쪼’ (ἑτοιμάζω) 이며, “유월절 음식” 역시 ‘토 파스카’ (τό πάσχα) 이다.
3.3 누가복음 22.1 에는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그리고 7절에는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유월절과 무교절은 명확하게 구분된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구약에서도 유교절과 무교절은 항상 함께 등장하고 있으며, 누가는 이 두 절기를 따로 구분하여 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로 보고 있는데, 무교절이 칠일 동안의 절기임을 생각할때, ‘파스카’는 유월절 첫날만을 의미하지 않고 무교절이라는 기간을 포함한 유월절 모든 기간을 뜻하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세푸스 역시 ‘유대 전쟁사’, II.1.8 에서 “καὶ δὴ τῆς τῶν ἀζύμων ἐνστάσης ἑορτῆς, ἣ πάσχα παρὰ Ἰουδαίοις καλεῖται” (직역: 이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이라고 부르는 무교절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무교절 역시 유월절로 불렸음을 알 수 있는데,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일주일 동안 지켜진 무교절 역시 유월절로 불렀다는 것이다. 어쨋건, 유월절이 다가 오는 날, 곧 양을 잡는 이날에 예수님께서 자신과 제자들을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먹게 하라 (8절)”고 제자들에게 명하신다. 여기서 “유월절을 준비하여”라는 것은 유월절을 준비하는 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그날 음식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준비하여” 라는 단어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같이 ‘헤토이마쪼’ (ἑτοιμάζω) 를 사용하고 있으며, 7절에서의 “유월절 양”은 유월절을 뜻하는 ‘토 파스카’ (τό πάσχα) 인데 그 앞에 “잡다”, “제물로 삼다”, 또는 “희생시키다”를 뜻하는 ‘투오/쑤오’ (θύω) 와 함께 사용하기에 “유월절 양”으로 번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11 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집 주인에게 자신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유월절을 준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저녁 6시 이후로 시작되는 유월절 음식을 먹겠다는 것이다. 13절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을 준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도 “유월절”과 “준비”로 번역된 단어들은 ‘토 파스카’ (τό πάσχα) 와 ‘헤토이마쪼’ (ἑτοιμάζω) 이다.
4. 요한복음에서의 유월절
4.1 요한복음에서 여러 유월절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데, 2:13 에는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2.23 에는 “유월절에” (ἐν τῷ πάσχα), 그리고 6.4에는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라며 설명을 하고 있다. 마지막 유월절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은 11장 55절에서 부터 전개되고 있다.
4.2 요한복음 13.1 에는 “유월절 전에”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유월절”이 아니다. 유월절을 뜻하는 ‘파스카’와 잔치를 뜻하는 ‘헤올테스’를 함께 사용하기에 정확히는 “유월절 잔치” (τῆς ἑορτῆς τοῦ πάσχα) 이다. 또한 이것은 유월절 절기 전날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유월절 잔치를 먹기 전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바로 3절에 “저녁 먹는 중” 그리고 4절에 “저녁 잡수시던” 이라는 상황에서 유월절 전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월절 잔치” 곧 유월절 음식을 먹기 전을 뜻한다.
4.3 요한복음 18.28 에는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난해되는 부분이다. 공관 복음에서는 분명히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잔치이며, 요한복음 13:1 도 문맥상 유월절 잔치로 봐야하는데, 이곳에서는 예수를 잡아 빌라도에게 넘긴 자들이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관복음의 저자가 틀렸던지 아니면 요한이 틀렸거나 혹은 유월절에 대해 혼동했거나, 그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요한이 유월절에 대해 여러번 집중적으로 다룬것을 볼때 그가 틀렸거나 유월절 사건을 혼동한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과연 예수를 로마 재판장에 넘긴자들이 먹고자 한 유월절 잔치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두가지로 답을 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4.3.1 첫째는 바로 이미 위에서 설명한것처럼 무교절 역시 유월절로 불려졌다. 따라서 이것 역시 무교절이 시작되는 무교절 잔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유월절 잔치”는 꼭 유월절 양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교절 음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양” 이나 “희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만 “유월절”을 의미하는 ‘토 파스카’를 “먹다”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하여 그것이 보편적인 유월절 음식임을 뜻하고 있다.
4.3.2 둘째는 카톨릭 학자인 브랜트 피트리가 그의 저서 “예수와 최후의 만찬” 에서 예리하게 지적한것 처럼, “그들이” 먹고자 했던것은 바로 화목제였다. (레위기 3.1-17에 기록된 화목제에 대한 설명 참조.) 역대하 30.13-22을 보면 유교절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었는데, 특히 22절에 “절기 칠 일 동안에 무리가 먹으며 화목제를 드리고” 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유월절에만 양을 잡은것이 아니라 무교절 칠일동안 화목제를 위해 양과 그외에 허락된 짐승들을 잡은것이다. 또한 신명기 16.2-3에는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칠일동안 유월절 제사로 잡은 소와 양을 누룩없는 떡과 함께 먹으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첫 유월절 양을 잡은 후에도 제사가 계속 이어졌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이 칠일이라는 기간의 무교절은 누가에 의하면 유월절로 불리었다고 한다. 따라서 요 18.28에서의 “유월절 잔치”는 바로 유월절 첫날 (저녁 6시 이후) 에 먹는 첫 희생양 고기를 포함한 유월절 음식이 아니라 그 다음날에 화목제로 희생된 또 다른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서 예수를 넘긴자들이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은 과연 유월절 희생양뿐 아니시라 또한 화목제로 희생된 양이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유월절에 관정에 들어가거나 죽은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기에 유월절 잔치를 먹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있는데, 민수기 9.4-14, 특히 10절을 보면,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유월절 절기 첫날에 먹어야 할 유월절 잔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특혜 한가지를 ‘유대 고대사’ 16, 6, 2 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ἐγγύας τε μὴ ὁμολογεῖν αὐτοὺς ἐν σάββασιν ἢ τῇ πρὸ αὐτῆς παρασκευῇ ἀπὸ ὥρας ἐνάτης” ([유대인들은] … 안식일이나 준비일, 9시 이후로 어떠한 재판관에게 가야할 의무가 없다”) 요세푸스의 이러한 기술은 요한이 말하는 “그들이” 관정에 들어가지 않은것은 바로 그러한 의무에 대한 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유월절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다만 안식일이나 안식일 전날 곧 안식일 준비일인 금요일에 따른 특혜이다.
4.4 요한복음 18.39 에는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냐” (요 18.38) 라고 물은 후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유월절이면” 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엔 토 파스카’ (ἐν τῷ πάσχα) 인데, 전치사 ‘엔’ (ἐν) 은 “(어느)때에” 혹은 바로 “(그)때에” 를 뜻하기도 하는데 요 2.23 에서 ‘엔 토 파스카’ (ἐν τῷ πάσχα) 를 사용하여 유월절 “그때”와 함께 ‘엔 테 헤올테’ (ἐν τῇ ἑορτῇ) 를 사용하여 잔치가 베풀어지는 기간을 뜻한것 처럼 (또한 요 4.45 ἐν τῇ ἑορτῇ; 요 7.11 ἐν τῇ ἑορτῇ; 요 12.20 ἐν τῇ ἑορτῇ) 이곳에서도 역시 유월절을 준비하는 그 전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월절이 이미 시작된 기간을 뜻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요한은 빌라도의 진술로 예수님이 판정에 서 계신 날이 유월절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4.5 요한복음 19.14 역시 유월절 잔치와 연관해서 난해되는 구절인데 개역개정에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것은 바로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준비하다”라는 단어는 동사 ‘헤토이마쪼’ (ἑτοιμάζω) 이며, 위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동사 ‘헤토이마쪼’와 같은 어원을 가진 명사는 ‘헤토이마씨아’ (ἑτοιμασία) 이다. 그런데, 요 19.14에서 사용되는 “준비일”로 번역된 단어는 명사인 ‘파라스큐에’ (παρασκευή) 이다. 그러면 요한은 왜 ‘헤토이마씨아’를 사용하지 않고 ‘파라스큐에’를 사용했을까? 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여기서 요한이 그 두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했다고 생각을 하기 전에 그 두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먼저 살펴 보기로 한다.
5. 헤토이마조 와 파라스큐에
5.1 마태를 포함한 모든 복음서의 저자들이 “[유월절] 전날”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한 것은 동사 “준비하다”를 뜻하는‘헤토이마조’ (ἑτοιμάζω)와 같은 어원을 가진 명사 ‘헤토이마씨아’ (ἑτοιμασία) 가 아니라 ‘파라스큐에’ (παρασκευή) 이다. 반대로, “준비하다”를 뜻하는 단어로는 명사 ‘파라스큐에’와 같은 어근을 두고 있는 동사 ‘파라스큐조/파라스큐쪼’ (παρασκευάζω) 가 아닌 ‘헤토이마쪼’이다. 물론 이 두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의어를 많이 사용하는 요한조차 이 두단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 않다. 다만 복음서에서 관찰할 수 있는것은 “준비하다”를 뜻하는 단어로는 ‘헤토이마조’만을 사용한다는 것이고, ‘[유월절] 전날”을 뜻하는 단어로는 ‘파라스큐에’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헤토이마조’와 ‘파라스큐조’가 동의어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사도행전 10.10 에서 ‘파라스큐쪼’를 어떤 의식적 행사와 상관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음식을 먹기 위한 “준비”라는 문맥에서 복음서에서 사용된 ‘헤토이마쪼’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의 서신에서는 “준비하다”를 뜻하는 단어로서 ‘파라스큐조’를 사용하고 있는데 (고전 14:8 ; 고후 9:2, 3) 어떠한 의식적 행위와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BDAG가 없어 살펴보지 않았지만, 명사를 제외한 동사 ‘헤토이마조’와 ‘파라스큐쪼’는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헤토이마조’가 사용되고 있는 방면에 ‘파라스큐쪼’는 절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신약에서는 명사 ‘헤토이마씨아’는 에베소서 6.15 한곳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명사 ‘파라스큐에’는 복음서에서만 사용되고 있는데, 모두가 다 “안식일”과 연관된 구절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 27.62; 막 15.42; 눅 23.54; 요 19.14, 31, 42).
5.2 복음서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준비하다”를 뜻하는 단어 ‘파라스큐에’ (παρασκευή) 는 여섯번 사용되고 있으며 영어 역본 God's Word Translation 에서는 “금요일” (Friday) 이라는 뜻으로 번역이되고 있는데, 공관복음에서의 사용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헬라어는 NA28이다.)
5.2.1 마가복음 27.62: Τῇ δὲ ἐπαύριον, ἥτις ἐστὶν μετὰ τὴν παρασκευήν, (직역: 이튿날은 곧 준비일 다음 날에.) 마태는 여기서 “준비일 다음날” 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않고 또한“안식일”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공관복음의 진술과 비교를 하건데, 안식일 전날을 뜻한다. 여기서 “준비일”은 ‘‘헤토이마씨아’가 아니라 ‘파라스큐에’이다. (물론, 이 구절에서의 문제는 왜 안식일을 “안식일” 이라고 하지 않고 “준비일 다음날” 이라고 했는가? 이다.)
5.2.2 마가복음 15.42 “Καὶ ἤδη ὀψίας γενομένης, ἐπεὶ ἦν παρασκευὴ ὅ ἐστιν προσάββατον” (직역: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여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준비일” (파라스큐에) 인데, ‘파라스큐에’는 정관사가 없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마가는 이를 유월절 준비일이 아니라 안식일 준비일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마태복음 27.62를 제외한 모든 구절에서 정관사가 없는 고유명사로서 안식일 전날을 뜻하는 금요일로 사용되고 있다.
5.2.3 누가복음 23.54: “καὶ ἡμέρα ἦν παρασκευῆς καὶ σάββατον ἐπέφωσκεν.” (직역: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누가 역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이 바로 “준비일” (파라스큐에) 인데, 이것이 유월절 준비일 이 아니라 “안식일 전날”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5.2.4 공관복음에서는 ‘파라스큐에’를 오직 안식일과 함께 사용함으로 “준비일”은 안식일 전날을 의미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유월절 전날이 아니라 안식일 전날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5.3 이제는 요한복음에서의 ‘파라스큐에’ 사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5.3.1 요한복음 19.14 “ἦν δὲ παρασκευὴ τοῦ πάσχα, ὥρα ἦν ὡς ἕκτη. καὶ λέγει τοῖς Ἰουδαίοις· ἴδε ὁ βασιλεὺς ὑμῶν.” (개역개정: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이 구절에서 ‘파라스큐에’는 분명히 유월절 준비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월절을 뜻하는 ‘파스카’를 과연 “유월절”로 문자 그대로 번역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후에 따르는 요한복음 19.31때문이다: “Οἱ οὖν Ἰουδαῖοι, ἐπεὶ παρασκευὴ ἦν, ἵνα μὴ μείνῃ ἐπὶ τοῦ σταυροῦ τὰ σώματα ἐν τῷ σαββάτῳ, ἦν γὰρ μεγάλη ἡ ἡμέρα ἐκείνου τοῦ σαββάτου, ἠρώτησαν τὸν Πιλᾶτον ἵνα κατεαγῶσιν αὐτῶν τὰ σκέλη καὶ ἀρθῶσιν.” (개역개정: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한은14절에서는 예수님이 판정에 서신 날이 “유월절 준비일” (파라스큐에 투 파스카) 라고 하면서도 31절에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을 “유월절 준비일”이라고 하지 않고 다만 “준비일” (파라스큐에) 이라고 하고 있다.요한은 42절에서도 역시 그 날이 “유대인의 준비일” (텐 파라스큐에 톤 유다이온: τὴν παρασκευὴν τῶν Ἰουδαίων) 이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준비일”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날을 “유월절 준비일”, “준비일”, 그리고 “유대인의 준비일”이라고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표현들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모두다 한 날 곧 위에서 이미 언급했듣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31절에서는 그 준비일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데, 그 바로 그 준비일 후에 임박하는 날이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준비일”을 뜻하는 ‘파라스큐에’는 안식일 전날이며 곧 금요일을 뜻하고 있다를 나타내고 있는것이다. 따라서 14절에서 “유월절”을 뜻하는 ‘파스카’는 유월절 첫날을 뜻하기 보다는 유월절로 불리는 무교절 기간 곧 유월절 기간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준비일은 유월절 기간에 다가 오는 안식일의 준비일 혹은 “금요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유대인의 준비일” 이 유월절 준비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 준비일을 뜻하는 표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물론, 공관복음의 진술을 배제하고 요한복음 19.14, 31, 42 만 따로 본다면 안식일과 유월절이 곂쳤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월절기간에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드시기를 원하셨다는 진술을 함께 볼때, 예수님이 드신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만찬이었으며, 따라서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날 역시 유월절이었으며, 그날을 안식일 준비일 이라고 함으로서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쳤다고 할 수 없다.
5.3.2 이미 위에서 언급한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XVI.6.2 를 다시보면, “ἐγγύας τε μὴ ὁμολογεῖν αὐτοὺς ἐν σάββασιν ἢ τῇ πρὸ αὐτῆς παρασκευῇ ἀπὸ ὥρας ἐνάτης” ( “[유대인들은]…안식일이나 준비일, 곧 9시 이후로 어떠한 재판관에게 가야할 의무가 없다” – ‘ἐγγύας…ὁμολογεῖν’ 는 법정에 서는 것을 뜻한다 ) 는 유대인의 특혜를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파라스큐에’는 안식일 전날 혹은 금요일을 뜻한다. 특히 요세푸스는 그의 모든 글에서 ‘파라스큐에’를 “유월절” 준비일이라는 뜻으로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을 보건데, 이는 ‘파라스큐에’를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안식일 전날” 곧 “금요일”로 이해하고 있던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복음서의 저자들이 사용한 ‘파라스큐에’ 역시 문맥상 그리고 요세푸스의 기술에 의해 안식일을 준비하는 금요일이다.
6. 정리를 하자면, 요한복음에서 문제로 제시하는데 사용된 “준비일”을 뜻하는 단어 ‘파라스큐에’는 “안식일 전날” 곧 금요일을 뜻하며, “유월절 잔치”는 꼭 “유월절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교절에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뜻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유월절 곧 안식일 전날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19:14의 ‘ἦν δὲ παρασκευὴ τοῦ πάσχα’ (에인 데 파라스큐에이 투 파스카) 를 “유월절 주의 금요일” 혹은 “유월절 주의 안식일 준비의 날” 이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이로서 요한복음의 기술 역시 공관복음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음식으로 행하신 것이며 무교병을 사용한것이다.
7. 예수님이 사용하신것이 무교병이기에 성찬식은 무조건 무교병으로 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유교병을 사용하면 큰 죄를 범하는 것으로 몰아가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데, 무교병을 사용하던 유교병을 사용하던 그러한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성찬식은 유대인들이 행하는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리는 유월절이 아니라, 모든 식물을 온전케하시는 곧 우리에게 영혼의 빵으로 오신 예수님의 행하신일을 기리는 행위이기 때문인데, 이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유대인 의식을 강요하지 않은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무교병을 주장하면서 유교병 사용을 죄악시 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방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유대인이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사람들로서 제2의 바리세인들인데, 특히 이단으로 판정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일 수록 이러한것에 더욱더 집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누룩은 죄악이라면서 영적의미를 운운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에 대해 시간이 나는데로 글을 올릴터이니 잠잠히 기다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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