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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 흐레마) 본문

단어풀이/히브리어/헬라어 단어 풀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 흐레마)

frog prince 2016. 3. 17. 14:08

설교를 듣다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레마’는 ‘로고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받는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이고 영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할 만큼 한 목회자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성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두 단어를 구분짖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그 어느 성서 텍스트로도 입증할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한다는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두 단어에는 분명히 사전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클래식 헬라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레마는 구어, 발언, 말의 주제나 내용, 문구를 뜻하며; 로고스는 계산, 가치, 비율적 또는 연관성, 설명, 내적인 논쟁 또는 논리, 담화, 웅변, 말로서의 표현 또는 발언 (보고 또는 평범한 대화,  토론), 특별한 발언, 무엇에 대해 말한것 혹은 무엇에 대한 것 또는 말의 주제 등 레마가 가지고 있는 사전적 의미를 포함해서 그 외에도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단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말이라는 차원에서 두 단어 모두 다 입에서 나온 말을 뜻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클래식 사전적 의미는 성서에서 사용된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에서의 ‘로고스’ 역시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음성으로 전해진 말씀, 선포된 말씀, 가르침을 뜻하고 있으며, 음성으로 전해졌다는 차원에서 ‘레마’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70

70 역에서는 로고스 레마 단어가 너무나 많이 사용되었기에 일일이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힘들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되었을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 또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이 입이 있어서 그가 말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씀하셨다는 것은 신인동형론적 언어로서의 표현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 (로고스) 대해 말하다 뜻하는 랄레오’ (λαλέω) 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으며 ( 20:1; 24:3; 9:10; 10:4; 2:4; 삼하 23:2; 왕상 2:4; 왕하 9:36; 15:12; 19:21; 20:9; 24:2; 역하 6:10; 10:15; 3:1; 37:22; 10:1; 50:1; 30:4; 37:2), ‘레마역시 같은 뜻의 랄레오 함께 사용되고 있다 ( 4:30; 16:23; 4:12; 5:22; 18:21, 22; 14:6, 14:10; 21:45; 23:15; 왕상 2:27; 8:20; 12:15; 13:18; 16:12, 34; 17:16; 22:38; 왕하 1:17; 10:10, 17; 14:25; 16:13). 출애굽기 24:3 이사야 66:5 에서는 로고스 레마 단어가 동의어로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그의 말씀을읽다 아니라 듣다라는 의미의 아쿠오’ (ἀκούω) 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함으로서 로고스 단순히 글로 적힌 우리가 읽고 끝나는 과거의 말씀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듣고 순종해야 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내고 있다 ( 12:6; 왕하 7:1; 20:16; 역하 18:18; 34:19; 1:10; 28:14, 23; 32:9; 39:5; 2:4; 7:2; 9:19; 10:1; 11:2, 6, 10; 13:10; 17:20; 18:2; 19:3; 19:5; 21:11; 22:2, 5, 29; 23:18, 22; 28:7; 31:10; 34:4; 42:15; 44:24, 26; 3:10, 17; 6:3; 13:2; 16:35; 20:47; 25:3; 33:7; 34:7; 36:1, 4; 37:4; 4:1; 3:1; 4:1; 5:1; 6:1; 8:9). ‘레마또한 로고스 마찬가지로 듣다라는 뜻의 아쿠오 함께 사용되고 있으며 ( 4:10; 4:36; 3:9; 삼상 9:27; 왕상 22:19; 66:5; 6:10; 33:31, 32), 또한 듣고 순종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된 로고스 레마 랄레오 아쿠오 동사와 함께 사용된것은 바로 둘은 글에 같혀진 말씀이 아니라 생동력있는 말씀임을 나타내고자 한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로고스 레마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같은 히브리 단어 다바르’/ ‘다발/ 헬라어로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로고스 이성적인 말씀이고 레마 마음에 주어지는 말씀, 또는 로고스 쓰여진 말씀이고 레마 성령님의 역사로 로고스 레마 변하게된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말씀 다발’/‘다바르’ (דבר), 입을 뜻하는 ’ (פה), ‘임롸’/‘이머롸’ (אמרה: 33:9; 삼하 22:31; 12:6; 18:30; 105:19; 119:11, 38, 41, 50, 58, 67, 76, 82, 103, 116, 123, 133, 140, 148, 154, 158, 162, 170, 172,; 138:2; 147:15; 30:5; 5:24; 29:4; 32:9; 2:17), ‘밀라’ (מלה: 삼하 23:2) 사용하고 있는데 이중에 다바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어떤이들은 말씀을 아마르’/‘아말’ (אמר) 이라는 단어로도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마르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며 명사로서의 말씀으로 사용된 사례가 하나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바르라는 단어가 70 역에서 로고스’ (λόγος) 레마’ (ῥῆμα) 그리고 음성을 뜻하는 포네’ (φωνή) 번역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 한가지 때문에 로고스 레마 동의어라고 무조건 단정할 없으며, 먼저 단어로 번역이 구절들의 컨텍스트를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번역된 단어들과 원어의 컨텍스를 봐도 로고스 레마 주로 동의어로 사용된것을 확실히 있다. 이것은 바로 레마 아마르 같고 로고스 다바르 같다는 주장 레마 아마르 로고스 다바르 다른것이라는 주장이 틀린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아마르 동사인것을 염두에 둘때 그러한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있다. 또한 로고스 다바르 보이는 세상의 언어 철학으로 풀어가는 말이고 레마 아마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내적으로만 있는 진리의 내용을 가진 언어라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역시 근거 없는 과도한 해석임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은 ’ (קול) 말씀이라고 주장하는데, 도데체 무엇을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 브라운-드라이버-브리그스 (BDB) 게세니우스 히브리어 사전을 찾아보면말씀이라는 사전적 의미나 그렇게 사용된 사례를 찾아볼 없다. 다만 사전적 의미는 음성또는 소리이다. 또한 단어가 말씀 뜻하는 다바르’ ( 1:34; 4:12; 5:28; 삼상 15:1) 그리고 밀라’ ( 33:8; 34:16) 함께 사용함으로서 말소리 뜻하지 말씀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리 말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김구원 교수의 사무엘상주석을 보면, 15 1절에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 (qōwl) 들려진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 (qōwl, 들려진 ) 들으소서 (qōwl)”라는 말은 의미 중복적으로…”  이라고 하고 있으며 14절에 대해서는 ““소리 말씀 모두 ’ qōwl 번역어다라고 하고 있는데, 혹시 주석을 근거로 말씀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151절에는 שמע לקול דברי יהוה” (쉐마 레콜 디베리 야훼) 라고 되어있는데, 김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여호와의 말씀 아니라 디베리 야훼’ (여호와의 말씀) 이며 들으소서역시 아니라 쉐마이고, 오히려 음성으로서, 직역을 하자면 야훼의 말씀의 소리를 들으시오이며, “말씀 소리 더함으로서 듣다라는 뜻을 포함한 쉐마 순종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후에 김교수의 해석대로 14절에 짐승의 소리와 대조하고 있다.)
 

복음서

복음서에서는 기록된 말씀을 뜻하는 성경을 명사 그라페’ (γραφή) 라고 하고 있으며 ( 21:42; 22:29; 26:54, 56; 12:10, 24; 14:49; 4:21; 24:27, 32, 45; 2:22; 5:39; 7:38, 42; 10:35; 13:18; 17:12; 19:24; 19:28, 36, 37; 20:9), ‘로고스라는 단어 자체는 기록된 말씀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된 말씀을 의미할때는 기록하다 의미하는 동사 그라포’ (γράφω) 함께 사용되었을때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고 있는데 ( 3:4; 15:25; 15:15; 3:4; 22:19), 기록된 말씀 또한 읽어 선포하여 모두가 듣게되는 것이기에 그라포 함께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기록된 말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1:3; 22:18).
 

마태복음

1. ‘로고스’는 기록된 객관적인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 ‘로고스’는 ‘레마’와 마찬가지로 입으로 하신 말씀을 뜻하고 있다. 마태복음 7:24, 26, 13:19, 22, 2; 15:12; 19: 22 에서는 “듣다” 를 뜻하는 ‘아쿠오’ (ἀκούω) 를 ‘로고스’와 함께 사용함으로서 ‘로고스’가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소리로 전해지는 말씀을 뜻하며; 마 12:23-32 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성령님을 거스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시는데, 32절에 “인자에게 대항해 말씀 (로고스) 을 [말]하는 (εἴπῃ) 자” 라고 하심으로서 ‘로고스’는 입에서 나오는 말을 뜻하는 것이며 (또한 8:8; 26:44); 15:23 에는 ‘로고스’ 말로 “답하다 [답하지 않았다]” (ἀπεκρίθη) 라고 되어있고; 19:1에는 말씀을 “마치셨다” (ἐτέλεσεν) 고 되어있는데, 이는 글로 기록하심을 마치신 것이 아니라 18장의 내용 곧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가르치신것을 마치신 것이며; 22:46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어느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οὐδείς ἐδύνατο ἀποκριθῆναι) 는 것은 글로 답을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말로 답을 못했다는 것이며; 24:35 에는 기록된 말을 뜻하기 보다는 그의 뜻 곧 그가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꼭 이루어질것이다 라는 뜻이며; 26:1 에는 예수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마치셨는데 그것은 그가 입으로 “말하신” (εἶπεν) 말씀 (로고스) 이라고 하고 있으며; 26:44 역시 예수님께서 같은 말씀 (로고스) 을 “말하셨다” (εἰπών) 라고 하고 있다.
 
2. 마태복음에서의 ‘로고스’는 일반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가르침이나 행해야 되는것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레마’는 구체적인 가르침이나 행해야 되는것보다는 일반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말 그 자체를 뜻하고 있는것을 볼 수 있는데, ‘레마’의 사용은 다음과 같다: 4:4 에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그의 구체적인 명령이나 가르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신 말씀이라는 일반적인 차원에서이며; 5:11 에는 핍박하는 자들이 하는 말; 12:36 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말; 18:16에는 증인이 하는 말; 26:75에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베드로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하신 말이다. 따라서 ‘로고스’와 ‘레마’에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단어의 의미가 서로 겹쳐져 일반적으로 “말”이라는 차원에서 동의어로 사용되는 부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레마’는 치유, 변화 등을 일으키는 능력의 말씀이며, ‘로고스’가 ‘레마’로 바뀌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로고스’ 말씀 역시 능력있는 말씀이다. 마 8:8 에서는 치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병든자가 들을 수 없었기에 그 병든자에게 ‘로고스’가 ‘레마’로 바뀔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치유되었다. 마 10:14에는 악령에게 사로잡힌자를 자유케 하시고 병든자들을 치유하셨는데, ‘레마’가 아닌 ‘로고스’ 말씀으로 하셨고, 이 역시 악령에 사로잡힌자가 ‘로고스’를 ‘레마’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4. 마 26:75 을 가지고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께 들은 것은 ‘로고스’ 말씀으로서 (마 26:34) 그 후 곧 75 절에서야 그 말씀이 ‘레마’로 들려왔다며, ‘로고스’가 많이 쌓여 있어야 성령님이 이 중에 하나를 사용해 말씀하신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성령님이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는다는 말이 없다. 또한 이 사건이 다음 새벽에 벌어진 것으로서 베드로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그는 기억 장애를 앓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지 이것을 꼭 성령님의 역사로 깨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다만 닭의 울음 소리로 인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또한 마 26:34을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로고스’라는 말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로고스’ 라고 가정할 수 없다. 마태복음에서의 두 단어의 사용을 분석해 보면, 오히려 예수님이 즉시 하신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지만 ‘레마’라고도 한다. 또한 ‘로고스’ 말씀이 성령님이 사용하실때 ‘레마’로 변한다는 논리를 따르자면, 마 4:4 에서 성령님이 아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로고스’가 아닌 ‘레마’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그 반대로, 마 27:14절에서는 성령님이 아닌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질문에 한 말씀도 답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기서의 예수님의 “말씀”은 ‘레마’이다. 이 상황은 단순히 질문에 대해 말을 않하신것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성령의 역사와 무관한 것이다. 위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을 했지만, ‘레마’는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는 말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일반적인 말을 뜻하는 것이며 주로 구체적인 말을 뜻하는 ‘로고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그뿐아니라, ‘로고스’가 성령님을 통해서 ‘레마’가 된다는 가르침을 마태복음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5. 마태복음13장에 있는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로고스’가 ‘레마’가 되게 하시기 위해 고난과 연단을 사용하신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예수님께서 그 비유에 대해 마 13:10-23에 설명을 하고 계시는데, 21절에서 말하는것은 하나님께서 ‘로고스’를 ‘레마’로 변하도록 고난과 연단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믿는자들에 대한 환난과 박해가 일어날때 금방 넘어지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말씀을 받는자의 상태를 가르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특히 23절에서 로고스가 자체가 (‘레마’로 변한것이 아님) 많은 결실을 맺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연단으로 인해 ‘로고스’가 ‘레마’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로고스’를 듣고 깨달아 아는 사람이기에 세상의 욕심이나 환난이나 박해에 흔들리지 않고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고스’가 ‘레마’로 변해야 한다는 것은 근거없는 것이며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주장일 뿐이다.
 
6. 마 4:4에서 사용된 ‘레마’를 근거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여준데로 히브리어 성경과 70인 역과 복음서에서는 기록된 말씀을 꼭 ‘로고스’라고 하지 않고 ‘그라페’라고 하며, ‘로고스’와 ‘레마’ 둘 다 말로 하는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가복음

1. 마가복음에서는 로고스 기록된 말씀을 뜻하기도 하지만 (7:13), “말하다” (λαλέω, λέγω), “듣다” (ἀκούω) 엿듣다” (παρακούω), 그리고 대답하다” (ἀποκρίνομαι) 라는 단어들을 로고스 함께 사용함으로서 로고스 기록된 말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입에서 나온 말씀을 뜻하고 있다: 2:2, 4:33, 8:32, 에서는 로고스 말하셨다” (ἐλάλει); 5:36에는 회당장의 로고스 엿들으시고” (παρακούσας); 10:24 에는 그가 다시 대답하셨다” (πάλιν ἀποκριθεὶς) 사용함으로서 로고스 예수님이 입으로 하신 말씀;  10:22에서는 부자가 예수님께 귀로 직접 들은 말씀; 14:39에는기도하셨다, 같은 말씀으로 말하셨다 (εἰπών)”. 또한 13:31 에는 로고스 없어지지 않는 말씀으로서, 파피루나 피지에 기록된   없어질 쓰여진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종이와 그것에 적힌 글체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서 살아 숨쉬고 역사하는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2. ‘로고스 레마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4:14-20 보면 말씀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 말씀이 레마 바뀌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전혀 없고, 오히려 로고스말씀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열매를 맺게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 또한 레마 받는 말씀이라는 해석과는 달리 로고스역시 받는 말씀으로 설명되고 있다.
 
3. ‘레마 곳에서 나오는데 (9:32; 14:72) 입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적 세계의 언어라는 주장과는 달리 로고스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인간의 말을 뜻하고 있다.
 

누가복음

1. 누가는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 보다 레마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로고스 레마 세배 이상 사용하고 있다. 누가는 로고스 기록된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1:2; 3:4) 기록된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5:1; 8:11, 15, 21; 11:28 ). 또한, 듣다 (ἀκούω) 말하다 (λέγω) 라는 단어들을 로고스 함께 사용함으로서 로고스 입에서 나간 말씀을 뜻하고 있다: 1:20 에는 천사가 입으로 전한 ; 4:22 에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4:32, 36 에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가르침; 6:47; 10:39 에서는 [귀로] 들은 말씀; 7:7; 22:61 에는 입으로 말한 말씀; 9:44에는 말씀을 귀에” (τὰ ὦτα – 복수형) “담아두어라” (θέσθε); 12:10 에서는 로고스 말하다”; 그리고 21:33 에서는 예외인데,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말씀으로서 없어질 종이에 적힌 문자나 입에서 나와 사라지는 말을 뜻하지 않으며; 24:17에서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주고 받는 (로고스) 이다.  따라서 로고스역시 기록된 말씀만이 아닌 입에서 나오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는것을 있다.
 
2. ‘로고스 레마 단어는 동의어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3:2; 4:4 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레마, 8:11, 2; 11:28 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 사용함으로서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4:32, 36에서는 예수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고 있으며, 5:5에서는 예수님이 입으로 하신 말씀을 레마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로고스말씀은 쓰여진 말씀이며 레마 선포되어 마음으로 받아 들여지는 말씀이라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7:7에는주께서 말씀하시면 종이 낳을것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에 로고스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로고스말씀 역시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말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온전하게 받아들여 믿고 의지하는 말씀이다. 그뿐 아니라 8:13에는 받은 말씀을 로고스, 15절에는 들은 말씀을 로고스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듣는 말씀과 받은 말씀이 다르다는 해석과 레마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받아들이는 말씀이라는 해석은 틀린 해석임을 보여주고 있다.
 
3. 8:11, 12, 13, 15 에는 하나님의 로고스말씀 (기록된 또는 선포된) 땅에 뿌리어진 씨앗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레마 변한 로고스 아닌 로고스자체를 받아들인 자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것인데, 15절에는 말씀 (로고스)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바로 로고스 레마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것임을 나타내준다.
 
4. 5:5 보면 레마 기적과 연관이 되어있는데, ‘로고스 레마 바뀌어 기적이 일어난것이 아니라 다만 레마 순종했기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에서 로고스 순종할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로고스 레마 변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이 로고스이던 레마이건 아무런 상관없이 다만 말씀에 순종을 하느냐 않하느냐 관건인 것이다. 순종을 할때 로고스 레마말씀이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 불순종을 할때 로고스 레마말씀이 우리 삶속에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고스 레마 다가와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5. 누가복음에서는 레마 능력있는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역시 능력있는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다. 4:36에는 로고스 더러운 영들을 쫒아내는 권세있는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4:19 에서도 역시 예수님은 능하신 선지자로서 그가 하신 일과 말씀 (로고스) 그가 능하신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가 하신 일과 말씀 (로고스) 능력의 일과 말씀 (로고스) 뜻하고 있다. 그렇기에 레마 능력의 말씀이라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다.
 
6. 어떤이는 22:31-32 인용하면서, ‘로고스 레마 되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절을 보면, 사탄이 베드로를 쓰러뜨리고자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이지, ‘로고스 레마 변하도록 로고스 붙잡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로고스 레마 된다는 가르침이 구절에는 물론 누가복음이나 성경 전체 어디에서도 찾아 없다.
 

요한복음

1. 5:47에서는 모세를 (46) 통해주어진 기록된 말씀을 명사 로고스 아닌 그라마’ (γράμμα) 표현하고 있으며, 7:15에서도 그라마라고 하고 있다.
 
2.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라고 하고 있는데, 10:35 에서는 기록된 글을 뜻하면서도 음성으로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뜻하기도 하며; 12:38 에서는 이사야의 말씀으로서 기록된 말씀이며, “우리에게서 들은 라고 함으로서 입으로 선포된 말씀을 뜻함으로서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 혹은 음성으로 받은 말씀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3. 요한복음15:25에서 로고스 율법 기록된 말씀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공간복음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말하다” (λέγω, λαλέω) “듣다” (ἀκούω) 라는 단어를 로고스 함께 사용함으로서 로고스 입에서 나온 말로 사용하고 있다: 4:50; 5:24; 6:60; 7:36, 40; 8:43; 12:38, 48; 15:3; 18:9, 32.  따라서 로고스 기록된 말씀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입으로 전한 말씀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4. 요한복음 17:6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이 아버지의 말씀 로고스 지켰다고 하시며; 17:14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고 있는데, 말씀을 그의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하고 있으며,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세상이 그들을 미워했다고 하시며; 17:17 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진리의 로고스라고 표현하시면서 진리의 로고스 자신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구하고 계신다. 그러나  17:8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받아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들을 레마라고 하고 있으며, 레마 받고 예수님이 아버지에로 부터 나오신것과 아버지가 자신을 보내신것을 믿었다고 하신다. 반면에 17:20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인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는데, 레마 아니라 로고스이다. 이것은 적어도 예수님의 기도에서 단어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1.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곳에서도 역시 기록된 말씀을 ‘그라페’ (γραφή) 라고 하고 있다 (행1:6; 8:32, 35; 17:2, 11; 18:24, 28).  특히 17:11 에서는 ‘로고스’는 선포된 말씀으로 ‘그라페’는 기록된 말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로고스’가 아닌 ‘그라페’를 “상고했다” 라고 하고 있다.
 
2.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 라고 하고 있으며 (행 4:31; 6:2, 7; 8:14; 11:1; 12:24; 13:5, 7; 13:44, 46; 17:13; 19:20), 예수님의 말씀 또는 그의 가르침 또한 ‘로고스’ 라고 하고 있다 (행 4:29; 8:25; 13:48, 49; 15:35, 36; 16:32; 19:10). 누가는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서도 “말하다” (λαλέω, λέγω) 와 “듣다” (ἀκούω) 를 하나님의 ‘로고스’와 함께 사용함으로서,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뜻하고 있다.
 
3. 사도행전에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레마’가 아닌 ‘로고스’에 능력이 따른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2:41 에는 베드로의 말을 듣고 3000명이 세례/침례를 받은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말은 ‘레마’가 아닌 ‘로고스’이며, 그 ‘로고스’를 통해 구원의 큰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사도행전 4:4 에는 5000명이 믿는 큰 사건을 설명하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레마’가 아닌 ‘로고스’이다. 사도행전 4:29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를 하는데, 그들이 구하는 것은 주의 말씀 곧 ‘로고스’를 담대히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이지 그 ‘로고스’가 ‘레마’로 받아들여지게 해달라는 내용이 없다. 또한 그들이 성령이 충만해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레마’가 아니라 ‘로고스’이다 (행 4:31). 사도행전 10:44 절에는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있는 자들 위에 성령님이 임하셨다고 하는데, 베드로가 하고 있던 말이 ‘레마’이며, 여기서 중요한것은 바로 그와 함께한 자들이 베드로로부터 들은 것을 ‘로고스’라고 하고 있다. 만약에 성령의 역사로 개인에게 주시는 것이 ‘레마’ 곧 ‘로고스’가 변화된 것이라는 주장이 맞는다면, 여기서는 왜 ‘레마’와 ‘로고스’의 순서가 바뀐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베드로는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전에 ‘레마’를 전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 역시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로고스’가 ‘레마’로 변해야 한다면, 누가는 베드로가 ‘로고스’를 전했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들이 받은 것은 ‘레마’라고 기록을 했어야 적어도 이 구절에서 그러한 주장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누가는 오히려 베드로가 ‘레마’를 전했고 듣는 자들이 받은 것은 ‘레마’가 아니라 ‘로고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누가는 이곳에서 두 단어를 동의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두 단어에 세상적인 언어와 영적인 언어라는 의미를 전혀 부여하여 구분짖고 있지 않다. 다만, 두 단어의 차이를 따지자면, ‘레마’는 일반적으로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을 가르키는 것이고 ‘로고스’는 듣는 자들에게 깨달음과 변화를 주어 반응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가르침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사도행전 11:1에는 ‘로고스’를 통해 구원을 베푸셨고; 행 12:24에서는 하나님의 ‘로고스’가 “자랐고” “배로 늘어났다”라고 함으로서 ‘로고스’ 능력을 보여주며; 행 13:26 에는 구원의 ‘로고스’로서 이것이 ‘레마’로 변해서야 된다는 것을 전혀 뜻하지 않고 있으며; 행 13:48에는 주의 말씀을 들은 자들 중 ‘레마’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정해진 자들이 믿었다고 되어 있으며, ‘로고스’는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한 것이다. 사도행전 14:3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은혜의 ‘로고스’를 전했는데 주께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셔서 그 은혜의 말씀이 참된것임을 증거하셨으며, 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있는 방면에 그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이 구절에서 ‘로고스’가 믿는자들에게는 ‘레마’로 임했고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은 ‘로고스’로 밖에 듣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로고스’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능력있는 말씀으로 보여지고 있다. 사도행전 15:15에는 선지자의 “말씀”을 ‘로고스’라고 하고 있는데,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 또는 예언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던지 혹은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던지, 인간의 반응과 무관하게 꼭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바로 ‘로고스’를 꼭 ‘레마’로 받아들여야 성령님 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주장이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16:32에는 바울이 간수의 집에서 주의 ‘로그스’를 전했는데,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라고 되어있는데, 이 어디에도 ‘레마’가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행 19:20에는 주의 ‘로고스’가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20:32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로고스’는 “세우기에 능하며” (τῷ δυναμένῳ οἰκοδομῆσαι) 라고 되어있다. 긍극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그 어디에서도 ‘로고스’가 ‘레마’로 변화된다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 증거를 찾아 볼 수 없으며, ‘로고스’는 표적과 기사 그리고 변화와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4. ‘레마’는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도행전에서는 구체적으로 ‘로고스’ 역시 받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도행전11:1 에서는 “하나님의 ‘로고스’를 받았다” (ἐδέξαντο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라고 하고 있음으로서 ‘로고스’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며, ‘로고스’를 통해 구원을 베푸셨으니 ‘로고스’ 역시 능력의 말씀이며; 행 17:11에서는 11:1과 마찬가지로 ‘레마’가 아니라 “‘로고스’를 받아들였다” (ἐδέξαντο τὸν λόγον) 라고 되어있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레마’이던 ‘로고스’이던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되는 것으로서, 말씀에 대한 순종을 뜻하는 것이다.
 
피곤하다. 여기까지만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