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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4Today!
지난 2년 동안의 미주 한인교회들을 불안하게 만든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단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전에도 수 많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과 미주 한인 교계에서 이단으로 판정한 신천지이다. 왜냐하며, 이것은 단순히 정통신학과 신학적/신앙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침투해서 그 교회를 쑥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주 한인교계에서는 이단대책 세미나와 그에 대한 글들이 신문에 자주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반응들을 보면서 좀 갑갑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 자체가 갑갑한 것이 아니라, 한인교회들이 이단을 대응할 수 있는 지식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과 이단대책에 발벗고 나서는 분들 중 이단성이 있거나 잘못된..
김성수 목사님의 영향을 받아서 파자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는것 같다. 이중에는 여기저기 강사로 다니는 도은미 사모라는 분도 있고, 그외에도 비슷한 내용의 파자 해석을 하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파자해석을 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히브리어가 한자처럼 뜻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근거없는 주장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모세 당시 발전되어 온 히브리어 문자는 원하는대로 배열해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뜻을 지닌 단어가 아니라 단순히 소리를 표시하기 위해 발전되어 온 문자들이다. (참고로: 파자해석하는 분들이 원시내 문자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근거로 정당화하려고 하는데, 원시내 문자의 출발은 이집트의 문자에서 ..
나는 미국인 (주로 백인 그리고 가끔식 흑인) 교회와 미주 한인교회를 수십년 출석했고,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의 설교를 테잎과 동영상과 글로 많이 접했다. 그러면서 미국인 교회와 한국인/한인 목회자들의 설교자의 차이를 몇가지 느꼈는데, 그 중 하나를 지적하자면 예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 설교자는 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화로 사용하며 간혹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는 자랑거리 보다는 실패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는 반면에 한인교회와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의 설교에는 너무나 설교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자신의 죄인됨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 이다. 그들의 설교에는 자신들이 선을 행한 이야기, 담대하게 전도를 한 것에 대한 이야기, 갑자기 공..
아주 오래전 어느 도시에 있는 한인 식당에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 전직 한인 회장이 왔었는데, 웨이트레스가 그를 회장님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었다. 또한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어느 한인 회장 역시 한인 식당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자신을 회장님 대접하지 않았다고 괭장히 불쾌해 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명함도 못내미는 별볼일 없는 이 인간들은 한 도시의 한인회 회장자리가 대단한 명예와 권력의 자리라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한인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면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자라서 의사가 되어서는 어린 시절의 열등의식에 의해서 인지 아니면 성공했기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어디를 가던 자신은 늘 의사라고 하는 흑인의사가 있다는 ..
내가 교회에서의 분쟁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국민학교 5 학년 때였다. 한국에서 이다. 일요일에는 한국에서 내 놓으라 하는 대형 장로교회에 출석을 했고 주중에는 인근에 있는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바로 집에서 보이는 작은 성결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동생들이 출석을 했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작은 교회라서 담임목회자 부인이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당시에 내가 어려서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교회의 몇몇의 직분자들이 목사님을 쫓아 내기위해 난동을 부려 교인들과 목사님과 그 가정이 큰 고통을 격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두 눈으로 교회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을 목격한것은 열네살 때였는데,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방문해서 이민 전 주중에 출석했던 교회를 방문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니 예배시간..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대사명’, ‘대위임령’, 또는 ‘지상명령’ 이라고 불리우는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면, “가서”를 주제로 하는 설교를 자주 듣게 된다. 그러한 주제의 설교의 핵심 내용은 “가라” 이며, 예수님이 주신 명령이기에 복음 전파를 위해 순종하며 가야 된다는 것이며 가히 선동적이다. 나는 이러한 설교를 여러번 들었는데, 실망스러운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들의 설교가 동영상으로 웹사이트에 올려..
참조 링크: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25 정동수 목사가 운영하는 윗 링크에 있는 웹사이트를, 보면 이사야 14장 12절에 나오는 “계명성” 혹은 “새벽별” 은 틀린 번역이라며, 그것은 ‘루시퍼’ 로서 마귀의 이름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 글들에 대한 반박을 하기로 한다. 1) 글쓴이는 “‘별’ kowkab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이사야 14장 12절 원문에 없다” 면서 “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성경은 잘못되었으며, 2) 그것은 별이 아니라 마귀의 이름 곧 루시퍼이며, 3) “대부분의 현대 성경들은 마귀의 이름을 빼고 예수님의 이름을 넣기 위해 없는 단어를 조작해서 번역했다”고 한다. 첫째, 글쓴이의..
참조 링크: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2 셋째와 넷째 문단과 공인 본문과 비평 본문 비교: “만약 에라스무스가 라틴 본문을….” 와 “예를 들어 바로 그 앞의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2:10-21절 까지 에라스무스의 1516판과 NA 28 비평본문과 비잔틴 성경을 비교해 보았다. 한글로 번역하기에 시간도 없고 귀찮아 영어로만 서로의 다른 점들을 작성해 보았다. 10-15절에는 20개 이하의 이문이 있으며 16-21절에는 이문이 18개라면서 “이 정도의 이문들은 개수와 특성 면에서 볼 때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이 두개의 그리스어 본문에서 늘 발견되는 수준”이라는 홀랜드의 주장과는 달리 라틴어를 역번역한 16-21절..
(Proof-reading 을 귀찮아서 않하고 그냥 올립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코멘트에 남기시길 바랍니다.) 참조 링크: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12 위에 있는 링크에 있는 글은 토마스 홀랜드의 “Crowned With Glory” 를 그 웹의 관리자가 번역한 것이다. 윗 링크의 글의 관건은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코덱스 1r 사본에는 요한계시록 22장의 16-21절이 없었기에 라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는 주장이 틀렸으며, 결론적으로 ‘생명의 나무’는 틀린것이며 ‘생명 책’이 옳다는 것이다. 첫째 문단과 둘째 문단, “이 구절의 초점이 ‘생명나무’가 아니라…” 와 “확실히 라틴 벌게이트와 그리스어 공인 본문은…”홀..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8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51 윗 링크들을 따라 가 보면 킹제임스 성경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그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킹제임스 유일론을 주장하는 정동수 목사의 웹사이트에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다. 그곳에는 네 열 (칼럼) 로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 시내사본 사진이 한장 올라와 있는데, 둘째 열에 상당 부분이 매우 희미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그림과 글을 올린자는 현대 역본지지자들이 이사본을 가지고 9-20절이 원래 없었다는 증거..
원래는 크리스웰 목사에 대해서는 적지 않으려고 했는데, 인터넷에 그에 대한 너무나 잘못된 이야기가 진실처럼 떠돌아다니며 그를 살인자로 누명을 쒸우고 있기에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크리스웰에 대한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다. 첫번째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야기 1: 크리스웰 목사는 사냥을 좋아했다.어느날 사냥을 가서 노루로 보이는 물체를 겨냥하고 총을 쏘았다.그런데 노루가 아닌 사람을 쏴 죽였다.교회를 사임해야만 하는 상태였다.교인들은 사람죽인 목사는 목회를 할 수 없다며 교회를 나가라고 했다.교회의 중직자들은 기도하면서 감동을 받고 크리스웰을 사랑과 용서로 덮기로 하고 교인들을 설득했다.교회의 용서를 받은 크리스웰은 사랑과 용서의 내용을 설교할 때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 이다. 이 단어에 대한 원어풀이를 설교시간에 종종 듣게되는데, 이 단어에 대한 기독교적인 선입견에 의해 정확하지 않은 풀이를 하는 것을 듣게된다. 그 정확하지 않은 해석은 바로 ‘에클레시아’는 헬라어 전치사 ‘에크’ (~로부터) 와 ‘칼레오’ (부르다)의 합성어로서 “불러낸 자”를 뜻한다며 이 단어를 기독교만의 특별한 단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원어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이 부여하는 교회의 의미와 클래식과 코이네 헬라어 사전적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상에서 불러내셨다는 것은 사실이나, ‘에클레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내심을 받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에클레시아’라는..
오래전 미주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모임에 어느 목사의 간증이 있었는데, 희생이 없이 교회성장을 이룰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희생은 바로 자신의 가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대형교회의 목사들을 가끔식 보게 된다. 백인 목사들은 거의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유난히도 한국인 목사들이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것 같다. 참고로, 그 목사는 더 큰 교회에 청빙되어 떠났다. 나는 이러한 말들을 들으면 매우 불편해진다. 희생없이 교회성장을 이룰 수 없다면, 작은 교회의 목사들은 희생을 않기에 교회를 성장 시키지 못한다는 말인가? 물론 대형교회 목사들중 백인이건 한인이건 부인들이 중한 병에 걸려 고생하는 분들이 있다. 마음의 병, ..
내가 보기에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회를 성장시킨 어느 목사의 항당한 말이 기억난다. 그는 성도수가 적은 교회에 대해 목사가 열심히 하면 성장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했다. 너무나 황당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교회 성장은 과연 목사의 열심으로 일궈내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교회는 목사가 게으르기 때문인가? 교회성장에는 세상의 모든것들이 그런것처럼 영적인것을 떠나 세상적으로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 성장이라는 것은 꼭 목사의 열심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꼭 목사의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개교회의 성장이 꼭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이뤄졌다고도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곽선희 목사님은 인천에서..
설교준비를 위해 한어, 중어, 영어, 히브리어, 헬라어 등 여러 언어로 성경을 읽으신다는 구약학 박사이신 어느 목사님의 기독교 방송 출애굽기 강의를 몇편 들어봤다. 그는 출애굽을 뜻하는 ‘엑소더스’는 헬라어로 ‘엑스 호도스’ (ἐξ ὁδός) 로서 “[무엇]~으로 부터”를 뜻하는 ‘엑스’와 “길”을 뜻하는 ‘호도스’ 라는 두 단어의 문구로서 “길에서 나오다”를 뜻하며, 영어 성경에는 ‘엑소더스’ (Exodus) 로 되어 있기에 우리가 ‘엑스 호도스’가 아닌 ‘엑소더스’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구약과 신약에서 살펴보면서 세가지 의미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나오다”라는 뜻이며, 출애굽기 23:16에서는 “연말”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별세”로도 번역..
현대교회교음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따라서 이제는 대부분의 교회가 찬송가보다는 여러 장르의 현대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다양한 장르의 현대교회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나이가 40대 후반을 넘은 목사님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축제 분위기의 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이유 중 몇가지를 들어보면, 축제 분위기와 감성에 휩싸여 은혜를 받았다며 눈물을 흘리거나 기뻐 춤추고 뛰면서도 그들의 삶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깊이 적시는 이슬처럼 잠잠한 가운데 감동을 주는 교회음악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에서의 젊은이들을 위한 축제분위기의 음악집회나 예배시간에 그러한 찬양을 반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80년도 후반에 전자 성경책이 나오면서 그것에 대한 예배시간에 사용에 대한 찬반의 노란이 있었다. 그러나 전산화 시대인 2015년도에는 그런 논란이 완전히 종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아직도 스마트폰 성경에 대한 찬반의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특히 어느 교회에 초대되어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쇼크를 먹었다. 그 이유는 그가 성경봉독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읽는 젊은 사람들을 보고 “이것들” 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화를내는 것이었다. 어디서 성경을 스마트폰에 탑재해서 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며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본질적인것과 비본질적인것을 구분 못하고 자신의 무지와 편견에 근거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분 나쁘게 만드는 그 모..
어느 미주 한인교회에서 목회하는 어느 젊은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설교 내용은 괭장히 복음적이었는데 영어풀이를 하면서 무식한 면을 드러냈다. 그는 성경에서 ‘구속’은 영어로 ‘redemption’ 이라며, 그 영어 단어를 어원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영어 단어의 의미를 어원적으로 풀어 구속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겠다는 생각에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redemption 의 어원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re’ 는 무엇인가를 없앤다는 것 곧 remove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dempt’ 는 debt 를 뜻하는 것으로서 빚에서 파생한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빚을 없애는 것이 구속이라고 한다. 이러한 엉터리 단어풀이에 성도들은 아멘으로 받아들였다. 미안하지만 정말 골때리는 단..
내가 한 7년전에 ‘아바’ (אבא) 라는 단어에 대한 목회자들의 오해에 대해 언급한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적혀있는 부분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면 ‘아바’는 “아빠”, 영어로는 “Dad” 혹은 “Daddy”라는 뜻이며, 하나님은 어린아이가 부르는 매우 친밀한 “아빠”라는 해석이 유행이었는데, 2015년인 오늘에도 한국이나 미주한인교회는 물론 미국 백인/흑인교회에서도 이러한 해석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는 직장에서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이기에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를 보살피시고 도와주실것이라는 해석을 하는것을 가끔식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요아킴 예레미아스의 두 책이 (예수의 기도, 1967; 신약신학, 1971) 영어..
잠언 29장 18절을 개역개정으로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영어 역본들과 비교하면서 특히 킹제임스역에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 라는 번역을 선택해서 '비전' (vision) 이 없으면 망하기에 꿈을 가져야 산다 라는 설교들을 하고 있다. 다른 역본들에는 “예언적인 환상/꿈” (prophetic vision), “계시” (revelation), “예언” (prophecy) 으로 되어 있고 다른 한글역본에는 “계시”로 되어있는데 왜 하필이면 킹제임스역의 “비전” (vision)을 선택해..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미국 남부 지역에서 부흥사로 이름을 좀 날리던 어느 백인목사가 있었다. 어느날 유명한 설교가들의 설교집을 열심히 읽는 누군가가 그 집회에 참석을 했다. 그런데 그 설교 내용이 매우 익숙해서 혹시나 하고 스펄전의 설교집을 들춰보니 그의 설교 내용과 똑같았다고 한다. 그 후에 그 목사를 만나 남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라고 그가 물었을때, 그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스펄전에 주신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 라고 뻔뻔하게 답하더라는 것이었다. 설교를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표절 또는 그대로 베껴 사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미주한인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한국의 유명한..
본의 아니게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어느 분의 설교를 읽게 되었다. 요한복음 1:14에 대한 좀 황당한 원문강독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헬라어로 ‘호 로고스 사륵스’ 는 “말씀이 육신이되어” 가 아니라 “말씀육신” 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확히 뭘 가르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로고스’ 앞에 관사가 붙어있고 그뒤에 ‘사륵스’ (살크스) 가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육신”이라는 것은 말씀이 육신속에 새겨진 새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우선 “말씀육신” 이라는 번역의 문제는 바로 원어에 ‘호 로고스 살크스 에게네토’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라는 문구를 단어가 배열된 순서대로 번역을 했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기초 헬라어 문법을 모르기에 헬라어 문법을 영문법..
한인 수퍼 마켓에 장을 보러가면 입구에서 전도지나 설교 CD 를 나누어주는 분들이 있다.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분들도 있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자신들이 출석하는 교회 정보가 담긴 전도지나 설교 CD 또는 선물을 강제로 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교회의 목회자들도 나와서 자신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정보가 담긴 전도지를 돌린다. 전도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꼭 해야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예수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교회로 끌어 모으려는 것이고 (한국과 미국교계에서 이단으로 판정한 신천지와 다를게 뭔가?!), 교회는 개교회가 여러 몸을 이루는 것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전도를 순..
오래전 어느 미국인 음악교수가 어느 대형 교회에 교회음악에 대한 세미나 (컨퍼런스? –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에 강사로 갔었다고 한다. 그 교회의 음악 담당자를 따라 교회 지하층으로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하층에 전문적인 복사기와 장비들이 설치되었고 복사 작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바로 성가 악보를 복사하고 바인드 (bind) 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담당자에게 악보 저작권에 대한 설명과 복사하는 것이 불법임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어디 미국교회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나도 대학시절때에 잠시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칸타타를 준비하기 위해 기독교 서점에 전화로 성가대원과 반주자와 지휘자의 숫자에 맞춰 악보를 주문한 적이 있다. 그..
꽤 오래전에 기억이 나지 않는 누군가의 설교에서 들어 본적이 있는데 최근에 다시 접하게 된 히브리어 '다바르'에 대한 해석을 하나 소개 하고자 한다. 그 해석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히브리어 ‘다바르’는 “낱말”이라는 뜻 외에 “물건”, “물질”, “사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말’은 질량을 가진 물질이기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를 연구해 보면 모음보다는 자음에 더 많은 에너지가 있다고 하면서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기에 더 큰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바르’는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증거가 되며, 따라서 ‘언어’라는 것에는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자를 치료하는 큰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
어느분이 김성수 목사님의 교회론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보라고 권한것을 오늘에야 한편 들어보았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들어보라고 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나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설교는 직접듣는 경우에는 다섯번 이상을 듣지 못한다. 설교에 따라 다르지만 내 자신이 그 설교를 직접 듣는 사람으로서 지성과 감성으로 그 설교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에 따라 너무나 황당한 경우에는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섯번 정도를 듣는 것은 공평 하게 그 설교자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 이유는, 목회자들이 연속으로 실수를 하는 경우가 가끔식 있는데 두-세번의 실수를 가지고 그들의 모든 설교들이 다 그렇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래도 다섯번의 설교에서 같은 문제가..
백주년 기념교회의 이재철 목사님. 설교 자체는 재미있는 설교가 아니다. 여러 번 들어봤지만, 솔직히 말해서 느릿느릿하고 가라앉은 소리로 전하는 설교에 경청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좋은 설교이다. 원어 사용에 대해서도 적당히 하시고 (전혀않하시면 더 좋다라고 나는 생각을 하지만)... 그를 이해를 못하는 목사들에 의해 곤욕을 치루셨던 개혁정신을 가지신 좋은 목사님이시다. (오래전 유튜브나 여러 글에 짧게, 부분적으로 나온 설교를 들었을 때에는 좋은 설교라고 생각을 했는데, 설교 여럿을 끝까지 다 듣고, 사도행전 강해서를 두권 정도 읽고 보니 내 생각이 짧었다. 원어 사용이나 개혁... 이건 둘 다 아니다. 여기까지만 한다.) 대중이 아닌 하나님을 인식한 올바른 설교가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면, 박..
히스토리는 히즈 (His) 스토리 (Story) 곧 ‘그의 [하나님] 이야기’ 라는 설교를 거의 20년전에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에 잠시 담임을 했고 신학교수로 있던 어느 목사님의 설교 테잎을 통해 한국 목사님의 그러한 해석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분은 그것이 아주 새롭고 의미 깊은 것처럼 설명했다. 지금 한국과 미국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그러한 설명을 하는 설교와 글들이 즐비하고 이러한 풀이를 하는 설교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풀이는 혹시 존 스토트의 에베소서 강해에서 부터 시작이 된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더 오래전 부터 유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풀이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영어 단어는 어원을 추적하면서 이 단어의 어원은 추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
종교개혁 이전에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고 성도들을 농락하며 자신들의 권위와 지위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칼빈(올리베탕 성경을 개정)의 불어 성경 (작 르페브르 데'타플레 가 올리베탕 보다 5년 앞서 번역) 그리고 영어 성경들이 출판되면서 성도들이 직접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층의 독점이 깨어졌다. (대한성서공회에 의하면 독일의 경우에는 6세기 부터 번역되었다고 함. 그러나 본격적인 영향을 끼친것이 루터와 칼빈.)http://www.bskorea.or.kr/about/worldtrans/engbib/engbib_list.aspx) 현대에는 수많은 역본들이 존재하고 또 계속해서 새로 발견되는 언어로 번역이 되고 있다. 어쩌면 성경번역의 부흥의 시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