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단어풀이/히브리어/헬라어 단어 풀이 (40)
Jesus4Today!
! 2024.06.52 - 아래의 내용은 내가 이중부정의 단순한 문법적 법칙만을 가지고 신약 성경을 찾아본 결과인데, 고대헬라어 문헌을 근거로 살펴보지 않아 발생한 오류들이 있다. Smyth와 Funk의 문법책을 들여다 봤으면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뗀데, 두 문법책을 들여다 보지 않은 내 잘못이다. 아래의 글을 시간 나는데로 오류들을 고치도록 하겠다. 그런데, 이중부정은 긍정이다가 아니라 강한 부정이라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헬라어를 배운지 수십년이 지나고, 써 먹을 일도 별로 없고, 거기에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썩기 시작해서... 원어 단어 사용에 대한 주책스런 글들을 접어야 하나?) 설교를 듣다 보면, 헬라어 문법에서 이중 부정은 긍정이다! 혹은,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라는 말을 최근에..
창세기 4장 1절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창세기 4장 1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 설교자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이 구절의 “성경번역이 조금 잘못되었다”.“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의 “말미암아”라는 부분이 잘못 번역이 되었다. 같은 단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사용될 때에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비교를 해봐야 한다.창세기 37장 23절을 보면 “…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말미암아” 또는 “덕분에”로 번역이 되지 않고 “곧”으로 번역이 되었다.성경의 다른 곳에도 “곧”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따라서, 창세기 4:1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보다..
어느 젊고 열정 있는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설교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정돈이 잘되어 있었고, 서론, 본론, 결론이 확실하고, 설명과 적용이 잘된 설교이었다. 또한, 칭찬할 만한 것은, 그는 원어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고, 다만 “헬라어는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어요]”라고 설명을 했다는 것인데, 헬라어 단어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늘 성도들에게 던지는 목사들보다 훌륭하다고 본다. 그는 누가복음 8장 45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한글로 읽으 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댄 자가 누구냐?’ 하면, ‘누구냐?’하고 들려지지만, 헬라어는요, ‘누구인가?’라고 ‘누구?’라고 물을 때, 남성과 여성이 다릅니다. 남성일 때 물을 때 쓰는 단어 하고, 여성에 대해서 누구냐?라고 물을 때 달..
얼마 전 호서대학교의 이영진 교수의 글을 읽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8008 그는 “‘아바’는 아빠가 아니다”라는 저스틴 테일러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며, 그러한 주장은 “좌파적 반동에 따른 비평이지 진실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부류로는 핏츠마이어, 제임스 바, 그리고 한국의 차정식과 뉴스앤조이 등이 있다”고 하고 있다. 정말 황당한 발언이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학적 주장에 대해, 그것이 왜 “진실이” 아닌지에 대한 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잘못된 번역과 이해를 바로 잡는 학자들의 주장을 이분법 흑백논리로 “좌파적 반동”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연 신학자의 바른 자세인가? "좌파적 반동"이라는 프레임을 걸고 홍길동을..
사도행전 1장 8절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8 ἀλλὰ λήμψεσθε δύναμιν ἐπελθόντος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ἐφ’ ὑμᾶς καὶ ἔσεσθέ μου μάρτυρες ἔν τε Ἰερουσαλὴμ καὶ [ἐν] πάσῃ τῇ Ἰουδαίᾳ καὶ Σαμαρείᾳ καὶ ἕως ἐσχάτου τῆς γῆς. (NA28) 사도행전 1장 8절에 대한 질문을 들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는 보편적으로 순서라는 개념보다는 모든 곳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강한별 박사는 얼마전 미국 남침례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 우연히 그의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고, 대충 흩어 보니 매우 흥미로워 구글로 좀 더 알아보니 그 논문이 출판된 것을 알게 되었으며, 미국의 "데일리 도스 오브 그릭"(Daily Dose of Greek) 한국판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웹사이트에 가면, 2분 동영상들이 있는데, 마태복음을 원어로 설명하는 동영상이다. 그 동영상들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세 동영상을 본 것으로는, 제대로 된 번역과 문법적 이유와 기능을 배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며, 원어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강한별 박사의 동영상을 추천한다. 웹사이트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ddgkorea.com.
출애굽기 3장 14절-15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얼마 전 출애굽기 강해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자는 미주 한인교회 중 대형교회에 속하는 교회의 목사인데, 그 교단의 대표적인 한인 교회이다. 그는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이라고 한다. 너무나 황당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전에 한..
마태복음 1:19-20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 성탄을 맞이하여 여러 설교를 유튜브에서 듣고 있었는데, 성경의 번역 이 잘못되었다는 설교를 들었다. (한국어 성경만이 아닌, 그와 같이 번역된 모든 언어의 성경이 잘못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발언의 범위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한국의 스카이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인데, 마태복음 1:19-20에 대해 설교를 하면서, 20절에 “[요셉이] 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는 “번역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2:18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마태복음 12:18은 다음과 같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ἰδοὺ ὁ παῖς μου ὃν ῄρέτισα, ὁ ἀγαπητός μου εἰς ὃν εὐδόκησεν ἡ ψυχή μου· θήσω τὸ πνεῦμά μου ἐπ’ αὐτόν, καὶ κρίσιν τοῖς ἔθνεσιν ἀπαγγελεῖ. 그 설교자는 “나의 택한 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둘로스’를 사용하지 않고 ‘파이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둘로스’는 종을 의미하지만 ‘파이스’..
마가복음 8장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자는 29절을 설명한답시고 헬라어로 “수 에이 호 크리스토스!”라고 한 후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했다. 그 후에 그 문구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왜 갑자기 쓸데없이 헬라어 문구를 외치고 난리인가? 도대체 왜! 말을 곱게 쓰려고 노력을 하는데… 삼성한테 미안하지만 정말 z-roll이다! (삼성 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삼성을 좋아한다.) 헬라어 문구를 외쳐서 도대체 무엇을 성취하려는 것이었던가? 자신은 학적인 목사라는 것을 성도들에게 그토록 자랑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 이유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 후에 쓸데 없는 헬라어 단어 하나를 주해했는데, 그 단어들이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한국..
어느 집회에서 설교 내용 중 다음과 살짝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말은 들었는데, 그곳에 참석한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사명은 ‘아우토텔로스 (autotelos)’이며, 희랍어 ‘아우토’는 자신 (self)을 의미하고 ‘텔로스’는 목적(goal)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아우토텔로스’는 목적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명은 자기 ‘목적성’을 갖고 있고 그 자체가 목적이다. 따라서 다른 보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보상이며 즐거움이다.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아우토텔로스’(αὐτοτελός) 라는 헬라어 단어는 없다. 아니,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부사 (adverb)인 αύτοτελῶς 의 철자를 잘못 쓴 것이다 - ‘오메가’(ω) 대신 ‘오미크론’..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누가복음 16:1-13). 그 설교자는 누가복음 16장 9절에 가서 원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성경에 “불의의 재물로"와 "너희를 영주 할 처소로"에서 “로"에 집중을 하라면서, 한글 성경에 둘 다 같은 "로"라고 번역된 원어는 서로 다르다면서, 첫째의 "로"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다"를 뜻하는 헬라어 전치사 '에크'이지만 둘째의 '로'는 "안으로 들어가다"를 뜻하는 헬라어 전치사 '에이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9절의 참된 뜻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는 것이 아니라, “불의의 재물에서 빠져나오라”는 뜻이며, 불의의 재물에서 빠..
가상 이야기 하나: 한국어를 한학기 배운 어느 미국인이 "Let me off this once please"로 번역이 된 어느 한국인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는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원문을 봐야 한다며 한글로 된 저자의 글을 찾아 보았는데, 한글로는 "한 번만 봐주세요"이었다. 그는 다른 미국인 친구에게 "Let me off this once please"는 잘못된 번역이라면서, 한글로 된 문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한번만"을 "this once"로 번역된 것은 바른 번역이지만, "봐주세요"를 "let me off this"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했다. 그는 이 문구에서 "주세요"는 공손하게 "달라"라고 부탁하는 의미가 있으며, "봐주세요"의 참된 의미는 "please look",..
“나이예 에르쿡, 쿠리에 예수” - 목회를 수 십 년 하고 신학박사학위를 소유한 어느 목회자가 설교 중 “유식한 말을 했습니다” 라면서 언급한 헬라어 문구로서, 개역개정에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번역된 요한계시록 22:20의 말씀이다. ‘나이예 에르쿡, 쿠리에 예수’라고 발음한 헬라어 문구는 목회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UBS4/5 나 NA27/28이 아닌, 1516년에 출판된 에라스무스의 편집본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왜 에라스무스를 인용한 것인가? 왜냐하면, 모든 권위 있는 주석들은 NA27/28 사용하기 때문이며, 또한 목회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헬라어 성경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에라스무스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문구 앞에 있는 부분과 혼동을 해서 그랬던 것인가? 잘 모..
몇 개월 전 어느 누구에게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자신이 잘못 사용한 헬라어 단어를 부목사가 지적했다고 설교 시간에 언급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하기에 그런가 하고 있다가 그 목사의 설교를 한편 듣게 되었는데,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두 단어를 언급한 설교였다. 짧게 설명하자면,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이름으로, '티테디오스'는 "염려 없는"을 뜻하는 단어이고 '아메림노스'는 사람의 이름이라면서, "염려 없는" '아메림노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티테디오스 존', "염려 없는 존", '티테디오스 ㅇㅇㅇ', "염려 없는 ㅇㅇㅇ" 이 되자는 설교를 했다. 이러한 설교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이러한 설교는 성경에 대한 학적..
홍신해만이라는 신학생의 글을 뉴스조이에서 읽었다 (이곳). 그는 마태복음 8:5-13에 나오는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퀴어 비평으로 재해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파이스’를 근거로 백부장은 동성애자였으며, 그의 동성애 파트너를 예수님이 치료하심으로서 동성애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이라는 해석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글의 내용은 게이/퀴어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글에 담긴 수정주의적 (revisionist) 해석은 이미 역사 비평학적으로 성경을 접근하는 복음주의적 성서학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그리고 동성애자 학자들에 의해 완전히 discredit 된 해석이다. 다만, 성서를 역사 비평학적으로 접근하지않고 포스트-모던 해석을 하는, 곧 경..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최근 인터넷으로 설교를 자주 보곤 하는데, 우연히 한국 교회의 어느 목사의 요한복음 21:15-17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 설교는 본문이 중심이 되어 본문을 주해하고 그 주해를 근거로 한 설교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자신의 목표와 결론에 짜 맞춘 설교로 들려졌다. 어쨌건, 이곳에서는 원어 사용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설교가가 본문에 사용된 원어를 설명한 것에 있는데, 사랑을 뜻하는 '필리오'와 '아가페'가 교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며, "양"을 뜻하는 단어는 "갓 태어난 양"을 뜻하는 '아르니아', "청년기에 있는 양"을 뜻하는 '프로바티온'과 이미 "성장한 [양]"을 뜻하는 '프로바톤'등 세 가지의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어와 성서 사본 ..
이재철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설교에 헬라어 문법에 대한 문제를 거론했었는데 (https://jesus4today.tistory.com/90), 그 글에 헬라어 문법을 제대로 모르면서 생각없이 이재철 목사 옹호하기 위해 내글을 공격하는 댓글들이 있었다. 그 댓글에서 전치사 ‘에이스’(εἰς) 에 관하여 더욱 그러했는데, 댓글의 저자는 달라스 신학원 교수 댄 월래스의 헬라어 기초 문법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εἰς는 “목적격에 쓰일때 목적이나 의도를” 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면서, εἰς 가 목적을 의미할 수 도 있기에 이재철 목사가 틀린것이 아니며 오히려 εἰς가 목적격이 아니다 라고 “단언”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많은 목회자들이 모든 문법적 기능들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옵션으로..
아래 링크는 호서 대학의 신학 교수라는 사람의 원어를 근거로 한 성서해석이 담긴 글인데, 너무나 황당한 원어 풀이를 계속해서 하기에 그의 링크를 걸고 그 문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사람을 어떻게 낚는단 말인가ㅡMIMOONCHURCH.COM 윗글의 원어 풀이를 정리하자면 이와 같다. 이 교수는 헬라어 ‘알리에이스 안트로폰'에서 사람을 뜻하는 ‘안트로폰’이 속격이기에 “사람의” 라고 번역해야 되기에 “어부”를 뜻하는 “알리이스”는 대격이므로 “사람들의 어부들”이라고 번역해야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왜 문제인지 살펴 보기로 한다. 1. 이교수는 헬라어 ἁλιεῖς 를 ‘알리이스’ 라고 적었는데, 첫 글자인 알레프 위에 있는 악센트 (accent) 부호를 볼 수..
지난주 집에서 노는 날에 등산을 준비하면서 어느 신학자의 원어 사용에 대한 비판의 글이나 적어본다. 우선 헬라어 문법부터 설명을 하고 시작을 하기로 한다. 헬라어에서 일반 명사가 술어 명사로 사용되려면 세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 1) 명사는 주격 형태 (nominative case) 이어야 하고, 2) 관사가 붙지 않으며, 3) 연결 동사를 따라야 한다. 예외가 몇가지가 있는데, 혹 무관사 명사가 연결 동사 앞에 있을 경우에는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subject 와 object 가 가치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연결 동사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는 술어 명사가 무관사 명사로서 관사가 붙은 주 명사 앞에 있던지 혹은 관사가 붙은 주 명사 뒤에 관사가 없이 따른다. 물론 주 명사가 관사..
1. 나는 레브 쇼메아에 대한 글에 올린 (목회자?) 댓글을 보고 그가 신학교에서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 참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 사람만이 아니다. 지난 10년동안 소셜 미디아 (한국에서는 SNS라고 부른다는데…) 를 통해 한국인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으로는 그들 중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사람들이 너무나 적다는데 의아했었다. 물론 글을 읽고 이해못하는 대학졸업자인 미국인들도 많이 접했었지만, 그중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었다. 특히 젊은층으로 가면 그러한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해도 못하고…논리도 없고… 교육체제에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사라면 기본적으로 목회학이나 종교학 석사과정을 다 마친 사람들일텐데, 이들 중에서도 기능적 문..
어느 블로그에서 원어의 어원을 근거로 본문을 해석하는 글을 읽었는데, 새롭게 본문을 보고자 하는 의욕이 지나쳐서인지, 본문의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해석을 하는것을 읽어보았다. 그 글은 바로 빌립보서 3:3에 나오는 ‘신뢰하다’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쏘)와 4절에 나오는 ‘신뢰’, ‘확신’, ‘자신감’을 뜻하는 명사 ‘πεποίθησις’ (페포이테시스/페포이쎄시스) 에 대한 것이었다. (블로그에 올려진 해석은 20+년 전에도 접했었는데, 글에서 읽은것인지 누구에게 들은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로그의 저자는 “믿음”을 뜻하는 명사 ‘πίστις’ (피스티스) 와 “신뢰”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페이쏘) 의 어근이 같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을 뜻하는 ‘피스티..
설교를 듣다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레마’는 ‘로고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받는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이고 영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할 만큼 한 목회자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성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두 단어를 구분짖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그 어느 성서 텍스트로도 입증할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한다는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두 단어에는 분명히 사전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
아주 오래전이다. 아이티에 있는 어느 신학교의 미국인 학장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대화가 행복과 기쁨의 차이에 대한것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는 다짜고짜 행복과 기쁨에는 차이가 있다면서, 행복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잠간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기쁨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러 나오는 것이라면서, 기독교는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한 곧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러러 나오는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서 내게 강의를 했다. 옛 직장에서도 여럿의 기독인들 역시 그러한 차이를 강조하면서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하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중에는 신학생도 있었고 목사도 있었다. 내가 동양인이라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신들보다 잘 모..
신약성경에서 주로 “염려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메림나오’가 있다. 이 단어를 가지고 희안한 해석을 하는 설교가들이 너무나 많다. 이는 “염려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마다 자주 듣는 해석인데 정리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염려하다”를 영어단어로 “worry” 라고 하면서 그 영어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는데, 이는 “목을 졸라 죽인다”는 고대 앵글 색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동사형인 ‘메림나오’는 “나눈다” 또는 “쪼개어진다”를 뜻하는 동사 ‘메리조’와 “마음”을 뜻하는 ‘누스’의 합성어라고 한다.이러한 단어풀이를 근거로 염려는 살인적인 것이라느니 사람의 목숨을 단축시킨는 무서운 적이라는 성서본문과 상관없는 매우 주관적인 해석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왜 이러한 해석들이 잘못된것인지 살펴보..
(윗줄을 친 문자들이 티스토리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에 그림포맷으로 아래에 올린다.) 작년 성탄절 즈음에 어느 신약신학자가 ‘X-Mas’ 는 ‘그리스도’를 뺀 것으로서 잘못된 것이기에 ‘X’ 를 사용하지 말고 ‘그리스도’ (Christ) 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올렸었는데, 그 글의 핵심 내용은 ‘X’는 ‘그리스도’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 의 약자인데 왜 그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어느 신약성서사본비평학자는 헬라어 문자 ‘카이’ (X) 를 ‘그리스도’의 약자로 사용한 문서가 없다며, 그렇게 사용한 고대문서가 발견되지않는 한 ‘X’는 ‘그리스도’의 약자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과연 ‘X’ 가 ‘그리스도’의..
성탄절이 어느덧 빠르게 지나가고 이제는 새해가 눈앞에 다가왔다. 성탄절은 영어로 ‘크리스마스’인데, 이제는 한국에서도 ‘성탄절’ 보다는 ‘크리스마스’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성탄절’ 보다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종교적으로 중립적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하기에 에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체 세상적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다. 미국에서는 80-90년도에는 기독인들 중 세상이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뺀, 미지수를 가르키는 ‘엑스’ (X) 인 ‘엑스-마스’로 사용한다면서 이이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에도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하..
히브리어 단어 중 ‘콜’ (קול)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소리’ 또는 ‘음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목사님들 중 ‘콜’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분들이 있다. 히브리원어사전을 찾아보면 ‘콜’에 “말씀”이라는 의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사용된 사례가 전혀 없다. 또한 이 단어가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다발’ (신 1:34; 4:12; 5:28; 삼상 15:1) 그리고 ‘밀라’ (욥 33:8; 34:16) 와 함께 사용됨으로서 “소리”를 뜻하지 “말씀”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리”와 “말씀”을 혼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목사님들이 도데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가르치는지 찾아보다가 김구원 교수의 사무엘상 주석을 발견하게 되..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대사명’, ‘대위임령’, 또는 ‘지상명령’ 이라고 불리우는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면, “가서”를 주제로 하는 설교를 자주 듣게 된다. 그러한 주제의 설교의 핵심 내용은 “가라” 이며, 예수님이 주신 명령이기에 복음 전파를 위해 순종하며 가야 된다는 것이며 가히 선동적이다. 나는 이러한 설교를 여러번 들었는데, 실망스러운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들의 설교가 동영상으로 웹사이트에 올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 이다. 이 단어에 대한 원어풀이를 설교시간에 종종 듣게되는데, 이 단어에 대한 기독교적인 선입견에 의해 정확하지 않은 풀이를 하는 것을 듣게된다. 그 정확하지 않은 해석은 바로 ‘에클레시아’는 헬라어 전치사 ‘에크’ (~로부터) 와 ‘칼레오’ (부르다)의 합성어로서 “불러낸 자”를 뜻한다며 이 단어를 기독교만의 특별한 단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원어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이 부여하는 교회의 의미와 클래식과 코이네 헬라어 사전적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상에서 불러내셨다는 것은 사실이나, ‘에클레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내심을 받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에클레시아’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