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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4Today!
강한별 박사는 얼마전 미국 남침례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 우연히 그의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고, 대충 흩어 보니 매우 흥미로워 구글로 좀 더 알아보니 그 논문이 출판된 것을 알게 되었으며, 미국의 "데일리 도스 오브 그릭"(Daily Dose of Greek) 한국판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웹사이트에 가면, 2분 동영상들이 있는데, 마태복음을 원어로 설명하는 동영상이다. 그 동영상들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세 동영상을 본 것으로는, 제대로 된 번역과 문법적 이유와 기능을 배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며, 원어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강한별 박사의 동영상을 추천한다. 웹사이트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ddgkorea.com.
마가복음 8장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자는 29절을 설명한답시고 헬라어로 “수 에이 호 크리스토스!”라고 한 후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했다. 그 후에 그 문구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왜 갑자기 쓸데없이 헬라어 문구를 외치고 난리인가? 도대체 왜! 말을 곱게 쓰려고 노력을 하는데… 삼성한테 미안하지만 정말 z-roll이다! (삼성 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삼성을 좋아한다.) 헬라어 문구를 외쳐서 도대체 무엇을 성취하려는 것이었던가? 자신은 학적인 목사라는 것을 성도들에게 그토록 자랑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 이유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 후에 쓸데 없는 헬라어 단어 하나를 주해했는데, 그 단어들이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한국..
나는 이재철 목사님이(이후 존칭 생략) 한 일들 곧 시기와 질투에 가득찬 그리고 잘못된 기독사상을 가진 이상한 목사들에게 욕 얻어먹는 행위들을 동영상을 통해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그동안 변호해 왔었다. 그것은 그가 한 일들이 무조건 옳거나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단”이니 뭐니하면서 물어뜯을 정도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개혁 정신”이라는 것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나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면 그 다지 개혁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또한 이름없이 과감한 개혁을 이루어내는 한국의 수많은 용기있는 목회자들에 대해 들어왔기에 그의 개혁을 대단한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식적인 목사님이기에 좋게 ..
1. 나는 레브 쇼메아에 대한 글에 올린 (목회자?) 댓글을 보고 그가 신학교에서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 참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 사람만이 아니다. 지난 10년동안 소셜 미디아 (한국에서는 SNS라고 부른다는데…) 를 통해 한국인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으로는 그들 중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사람들이 너무나 적다는데 의아했었다. 물론 글을 읽고 이해못하는 대학졸업자인 미국인들도 많이 접했었지만, 그중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었다. 특히 젊은층으로 가면 그러한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해도 못하고…논리도 없고… 교육체제에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사라면 기본적으로 목회학이나 종교학 석사과정을 다 마친 사람들일텐데, 이들 중에서도 기능적 문..
어느 블로그에서 원어의 어원을 근거로 본문을 해석하는 글을 읽었는데, 새롭게 본문을 보고자 하는 의욕이 지나쳐서인지, 본문의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해석을 하는것을 읽어보았다. 그 글은 바로 빌립보서 3:3에 나오는 ‘신뢰하다’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쏘)와 4절에 나오는 ‘신뢰’, ‘확신’, ‘자신감’을 뜻하는 명사 ‘πεποίθησις’ (페포이테시스/페포이쎄시스) 에 대한 것이었다. (블로그에 올려진 해석은 20+년 전에도 접했었는데, 글에서 읽은것인지 누구에게 들은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로그의 저자는 “믿음”을 뜻하는 명사 ‘πίστις’ (피스티스) 와 “신뢰”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페이쏘) 의 어근이 같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을 뜻하는 ‘피스티..
어느 신학자의 블로그를 우연히 읽게되었다. 여러 글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낀것은 그의 신선하게 성경을 보는 눈이 자주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요한복음 13:30 에 기록된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에 대해 원어로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 (παρέδωκεν τὸ πνεῦμα) 인데, 대다수의 역본들이 이것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포기한것 즈음으로 표현했다면서 그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영어번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ASV, KJV, NRSV, NIV, NLT 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를 “gave up his spirit” 이라고 번역을 했다면서, 그것은 “영혼을 포기 했다”로 이해를 하고서는 ‘파라토켄’은 “포기” 가 아니라 “넘겨주다”에 가깝다고..
한 2년전인가, 처음으로 “열정”에 대한 황당한 단어풀이를 설교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본문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약에서 “열심”을 뜻하는 단어로 시작한것으로 봐서 문맥상 로마서 10:2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 설교자는 “열심”은 영어로 ‘지얼’ (zeal) 인데, 우리도 “열정”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그 열정은 영어로 ‘엔투지애즘’ (enthusiasm) 이며, 그 단어의 어원은 “하나님 안에”를 뜻하는 헬라어 ‘엔’ (ἐν) 과 “하나님” 혹은 “신”을 뜻하는 ‘테오스’ (θεός) 에서 유래한것이라면서, 이러한 열정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시는것 혹은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설교를 듣다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레마’는 ‘로고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받는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이고 영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할 만큼 한 목회자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성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두 단어를 구분짖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그 어느 성서 텍스트로도 입증할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한다는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두 단어에는 분명히 사전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
아주 오래전이다. 아이티에 있는 어느 신학교의 미국인 학장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대화가 행복과 기쁨의 차이에 대한것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는 다짜고짜 행복과 기쁨에는 차이가 있다면서, 행복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잠간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기쁨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러 나오는 것이라면서, 기독교는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한 곧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러러 나오는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서 내게 강의를 했다. 옛 직장에서도 여럿의 기독인들 역시 그러한 차이를 강조하면서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하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중에는 신학생도 있었고 목사도 있었다. 내가 동양인이라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신들보다 잘 모..
설교준비를 위해 한어, 중어, 영어, 히브리어, 헬라어 등 여러 언어로 성경을 읽으신다는 구약학 박사이신 어느 목사님의 기독교 방송 출애굽기 강의를 몇편 들어봤다. 그는 출애굽을 뜻하는 ‘엑소더스’는 헬라어로 ‘엑스 호도스’ (ἐξ ὁδός) 로서 “[무엇]~으로 부터”를 뜻하는 ‘엑스’와 “길”을 뜻하는 ‘호도스’ 라는 두 단어의 문구로서 “길에서 나오다”를 뜻하며, 영어 성경에는 ‘엑소더스’ (Exodus) 로 되어 있기에 우리가 ‘엑스 호도스’가 아닌 ‘엑소더스’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구약과 신약에서 살펴보면서 세가지 의미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나오다”라는 뜻이며, 출애굽기 23:16에서는 “연말”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별세”로도 번역..
최근에 고00 목사라는 분의 설교를 한국 어느 대형교회 웹사이트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설교본문은 요한복음 17:2-3 이었다. 설교를 듣고 나니 좀 답답한 부분이 있어서 혹시나 다른 설교도 이런식으로 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그가 시무하는 미국에 있는 교회 웹사이트를 통해 그의 설교 두편을 더 들어 보았는데, 역시나 이었다. 나는 고 목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의 설교 세편을 통해 고 목사는 복음과 선교에 대한 열정도 있고 진실된 목회자로 느꼈다. 그러나 원어 사용에서의 문제가 있고, 이것은 고 목사뿐만 아니라 명 설교가들과 신학교수를 하는 목사들을 포함한 수 많은 목회자들의 문제이기에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것이니 이해를 바란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서 3절은 아래와 같다. 2 아버지..
http://smyrnachurch.com/index.php?mid=SanSangSermons 여차저차 해서 호기심으로 고 김성수 목사님의 산상수훈 25번을 듣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성도들이 그를 따르고 있으며, 그의 원어 풀이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 미국도 또한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복음의 깊은 비밀을 파헤치며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 즈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그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그가 담임하던 교회는 새로운 목회자가 오기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김목사의 설교 동영상을 보며 예배드리기를 고집해 왔었다. 그것은 김목사외에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분이 없다 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인과 유가족에게는 죄송하지만 틀린것은 바로 잡아..
아래 링크 참조.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00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과연 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것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는 주장을 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셨다는 윗 링크에 있는 정동수 목사의 웹사이트에 있는 글들을 읽어 보았다. 그 글들은 김재욱이라는 분과 관리자 (정 목사?) 가 올린 글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서 ..
사도행전 8장에 “능력”으로 번역된 “두나미스” (δύναμις) 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목회자들이 이 “두나미스”라는 단어를 “다이너마이트” (dynamite) 와 비교하면서 이것을 “폭팔적” 인,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능력을 가르킨다며, 사도행전의 성령님의 능력을 “폭팔적인 능력”이라고 설교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교회의 크기나 목회자의 학벌과 무관하게 괭장한 진리로 가르쳐 지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가르치면서 원어를 제대로 배운 목회자들을 욕하는 어느 공대출신 목사도 그의 웹사이트에 올린 노트에 이것을 “다이너마이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두나미스”는 과연 “폭팔적인”,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