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경 (15)
Jesus4Today!
어느 신학자의 블로그를 우연히 읽게되었다. 여러 글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낀것은 그의 신선하게 성경을 보는 눈이 자주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요한복음 13:30 에 기록된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에 대해 원어로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 (παρέδωκεν τὸ πνεῦμα) 인데, 대다수의 역본들이 이것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포기한것 즈음으로 표현했다면서 그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영어번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ASV, KJV, NRSV, NIV, NLT 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를 “gave up his spirit” 이라고 번역을 했다면서, 그것은 “영혼을 포기 했다”로 이해를 하고서는 ‘파라토켄’은 “포기” 가 아니라 “넘겨주다”에 가깝다고..
한 2년전인가, 처음으로 “열정”에 대한 황당한 단어풀이를 설교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본문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약에서 “열심”을 뜻하는 단어로 시작한것으로 봐서 문맥상 로마서 10:2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 설교자는 “열심”은 영어로 ‘지얼’ (zeal) 인데, 우리도 “열정”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그 열정은 영어로 ‘엔투지애즘’ (enthusiasm) 이며, 그 단어의 어원은 “하나님 안에”를 뜻하는 헬라어 ‘엔’ (ἐν) 과 “하나님” 혹은 “신”을 뜻하는 ‘테오스’ (θεός) 에서 유래한것이라면서, 이러한 열정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시는것 혹은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설교를 듣다보면 ‘로고스’ (λόγος) 와 ‘레마’ (ῥῆμά)를 구분하는 설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 구분은 크게 1) ‘로고스’는 기록된 글이며 세상의 언어 또는 철학적 언어라는 것이며, 2) ‘레마’는 ‘로고스’가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받는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이고 영의 언어이다 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할 만큼 한 목회자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 이상의 해석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와 성서 저자들이 사용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두 단어를 구분짖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그 어느 성서 텍스트로도 입증할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들을 한다는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두 단어에는 분명히 사전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
담임목사들을 보면 부사역자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성도들에게 반말을 하며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몰상식을 책망하며 상식적인 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정말 희한한 일이다. 자신들은 나이가 드신 성도님들로부터 “목사님”이라는 존칭과 존대말과 존중의 대접을 받는다. 형, 삼촌, 아버지뻘 되는 성도님들도 예의를 갖춰 그들에게 대해준다. 그런데, 그러한 깍듯한 예의를 받는 담임목사 자신들은 정작 부사역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말을 하고 함부로 책망을 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다른 교회의 목사에게도 한동안 자신 밑에서 부목사 또는 전도사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함부로 대하며 그들의 발언을 짖밟는 인간들도 있다. 상대방이 한 가정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lyspirit11&logNo=220578911554 윗 링크에는 나의 포도주에 대한 글의 링크를 걸고 “개인적인 해석”이라면서 술마셔도 된다는 해석이 틀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의 글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하고서는 거짓이니 악이니 하며 정신 승리를 거두고 있다. 또한 ‘메쑤스코’가 왜 “to begin to be drunk”라고 번역될 수 없음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킵바이블에 있는 주장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다. 이러한것은 바른 반론이 아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한, 킵바이블에 올라온 모든 성서구절들과 해석들이 왜 틀린지 하나 하나 집어 주해하면서 반박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사용한 성..
홍신해만이라는 신학생의 글을 뉴스조이에서 읽었다 (이곳). 그는 마태복음 8:5-13에 나오는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퀴어 비평으로 재해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파이스’를 근거로 백부장은 동성애자였으며, 그의 동성애 파트너를 예수님이 치료하심으로서 동성애를 용납하시는 예수님이라는 해석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글의 내용은 게이/퀴어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글에 담긴 수정주의적 (revisionist) 해석은 이미 역사 비평학적으로 성경을 접근하는 복음주의적 성서학자들을 포함한 자유주의,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그리고 동성애자 학자들에 의해 완전히 discredit 된 해석이다. 다만, 성서를 역사 비평학적으로 접근하지않고 포스트-모던 해석을 하는, 곧 경..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68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2_02&write_id=651 윗 링크들을 따라 가 보면 킹제임스 성경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그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킹제임스 유일론을 주장하는 정동수 목사의 웹사이트에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다. 그곳에는 네 열 (칼럼) 로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 시내사본 사진이 한장 올라와 있는데, 둘째 열에 상당 부분이 매우 희미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그림과 글을 올린자는 현대 역본지지자들이 이사본을 가지고 9-20절이 원래 없었다는 증거..
설교준비를 위해 한어, 중어, 영어, 히브리어, 헬라어 등 여러 언어로 성경을 읽으신다는 구약학 박사이신 어느 목사님의 기독교 방송 출애굽기 강의를 몇편 들어봤다. 그는 출애굽을 뜻하는 ‘엑소더스’는 헬라어로 ‘엑스 호도스’ (ἐξ ὁδός) 로서 “[무엇]~으로 부터”를 뜻하는 ‘엑스’와 “길”을 뜻하는 ‘호도스’ 라는 두 단어의 문구로서 “길에서 나오다”를 뜻하며, 영어 성경에는 ‘엑소더스’ (Exodus) 로 되어 있기에 우리가 ‘엑스 호도스’가 아닌 ‘엑소더스’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구약과 신약에서 살펴보면서 세가지 의미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나오다”라는 뜻이며, 출애굽기 23:16에서는 “연말”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별세”로도 번역..
후러싱 제일연합감리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한 김정호 목사의 설교를 추천한다.http://www.fumc.net/sermon나는 이분의 정치성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설교를 추천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다: 그의 설교는 보편적으로 사회정의와 복음의 균형이 잘 잡혀있으며,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는 것이다. 특히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지식의 축척과 연륜에 따른 체험이 없이 진공상태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의식적으로 자주 이중잦대를 사용하여 미화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괜찮은 설교이다. 2001 년도에 처음 들었을때는..
데모를 주도하는 카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 중 "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 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정말 "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인가? 도데체 어떠한 차원에 그렇다는 것인가? 성경을 눈을 크게 뜨고 다 뒤져봐도 "민중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라고 하는 곳이 없다. 오히려 민중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민중이 원하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숭배한 사건이다. 그 결과는 피비린내 나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뿐 아니라 민중은 항상 하나님을 대항해 왔으며,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착각에 빠져 모든것이 형통할 것이라며 참된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그뿐 아니라 그 민중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대제사장들..
성경에 보면 ‘증인’으로 번역된 헬라어 ‘말투스’ (μάρτυς) 혹은 ‘마르투스’ 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가 나오는 설교를 듣다 보면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말털’ (martyr) 이 '말투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라며 ‘증인’이라는 것은 곧 ‘순교자’를 뜻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러면 과연 ‘말투스’라는 단어가 ‘증인’이라는 뜻 외에 ‘순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가? 첫째, ‘순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rtyr’ 이 ‘말투스’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1 세기 헬라어에 거꾸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인 것이다. 둘째, 성경에서 문맥상 ‘말투스’는 주로 역사적 그리고 법적 ‘증인’ 을 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시록에서는 예수의 ‘증인’이라는 ..
마태복음 28장 18-20 절의 원어 문법을 보다가, 호기심에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성경이라고 가르치는 피터 럭크만파의 정동수 목사가 혹시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교했나 찾아보다가 그의 마태복음 강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의 내용은 그저 그러했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가 사도행전 1장 3절에 있어 개역성경의 번역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눈에 뛰었다. 그것은 영어인 'infallible' 에 대한 번역이다. 정 목사는 개역 성경에 '확실한' 이라는 번역이 'infallible' 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정 목사는 ‘infallible’ 를 '절대 확신' 이라고 그의 킹제임스 흠정역에 번역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정목사는 사전적 의미를 따라 그렇게 번역한것 같..
아래 링크 참조.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00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과연 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것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는 주장을 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셨다는 윗 링크에 있는 정동수 목사의 웹사이트에 있는 글들을 읽어 보았다. 그 글들은 김재욱이라는 분과 관리자 (정 목사?) 가 올린 글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서 ..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파워’ (power) 이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파워'라는단어에 익숙해 있을것이다. 또한 전 아무개 목사의 '파워'로 시작하는주제의 강해서가 한동안 인기가 있었다. '파워' (power) 는 바로 힘 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이다. 왜 이 단어가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영어에 익숙해 있는, 미국에서 목회하는한인 목회자들이 한국어로설교를 하면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것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그 단어를 자주 쓰시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신기한 현상이다. 어쩌면 힘, 능력, 권능 이라는 한국어 보다 ‘파워’가 더욱 강렬하게느껴져서인가? ‘파워’ 하면 때려 부수는 힘을 떠올리..
사도행전 8장에 “능력”으로 번역된 “두나미스” (δύναμις) 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목회자들이 이 “두나미스”라는 단어를 “다이너마이트” (dynamite) 와 비교하면서 이것을 “폭팔적” 인,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능력을 가르킨다며, 사도행전의 성령님의 능력을 “폭팔적인 능력”이라고 설교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교회의 크기나 목회자의 학벌과 무관하게 괭장한 진리로 가르쳐 지고 있다.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가르치면서 원어를 제대로 배운 목회자들을 욕하는 어느 공대출신 목사도 그의 웹사이트에 올린 노트에 이것을 “다이너마이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두나미스”는 과연 “폭팔적인”,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