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신학/신앙 에세이 (25)
Jesus4Today!
아침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 여기저기 주일설교 생방송을 찾다가 아래 링크에 있는 방언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주일 설교는 아니고 금요 예배 설교이다.) 방언하고 싶은 사람들 방언받게 해 주겠다며, 그 방법을 제시하는 영상이다. 하버드 신과와 캐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고 하는데, 하버드 신과는, 내 기억에는 그래도 80중, 후반까지는 인정을 하겠는데, 그 후로부터는 그다지... 어쨌건, 신학교 교수였던 분이 이러니... 그 밑에서 배우는 목사들은... 이래서 한국교회가 문제라고 하는 거다... 참고로, 오래전 (일년이 넘은것 같다) 이교회에서(아틀란타 벧엘교회)의 한 집회 동영상을 오래전 본 적이 있는데, 그 설교자는 입신을 언급하며 천국에도 텔레비전 같은 모니터가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던 기..
"침례교회는 장로 제도가 싫어서 생긴 교단입니다. 세례가 아닌 침례를 주는 이유가 있기도 하지요." 어느 고신 장로교회 목사의 설교 내용 중 한 부분이다.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을 이곳에 올리는 것은, 고신 교단과 자신만 바르게 한다는 독선과 착각으로, 자신의 무지에 근거해, 교회 직분에 대해 다른 방침을 따르는 교회들을 교회가 아니라는 극단적 발언을 설교 시간에 함으로써, 성도들을 무식한 극단 주의자들로 키우고, 따라서 자신들과 다른 직분 제도를 따르는 교회를 정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침례교회의 시초는 재침례파 (Anabaptist - 애나뱊티스트)이다. 그들을 핍박하던 개혁주의의 다른 교단들이 그들을 단순하게 재 침례파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 이름으로 불러지게 시작된 것이다. 이 재 침례..
"우리 고신 교단은 목사 안수를 줄 때, 고신 교단으로 부르심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이 있냐고 묻습니다." 고신 교단에 속한 장로교회의 목사의 설교 내용 중 한 부분이다. 그는 목사 안수를 줄 때 다른 교단에서는 목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물어보지만, 고신에서는 고신 교단의 목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묻는 다면서, 고신 교단의 목사가 되어서 교단의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교회 직분 자에 대한 설교의 한 부분이었는데, 직분 자는 교회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의 근거는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교회는 모든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서 한 분이신 성령님을 입어,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 분..
얼마전 어떤 특정 이단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다가 정말 황당한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황당하다는 것은 그 블로그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의 제목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블로그의 저자 자신이 스스로를 한국교회를 살리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것 바로 그것이다. 도데체 자신이 누구라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살리며 어떠한 방법으로 살린다는 것인지…착각이 너무 심한것 같다. 그런데 이런 착각을 가진 사역자들과 평신도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사역자는 자신이 선교에 대한 큰 비젼이 있는데, 자신이 없이는 하나님도 현 시대에서의 선교 역사에 힘드실 것이라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말이었다. 이 정도의 정신병은 아니더라도 멍멍이 꿈을 하나님의 비젼으로 착각하는 사역자들이 한둘이 아닌것 같다...
담임목사들을 보면 부사역자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성도들에게 반말을 하며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몰상식을 책망하며 상식적인 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정말 희한한 일이다. 자신들은 나이가 드신 성도님들로부터 “목사님”이라는 존칭과 존대말과 존중의 대접을 받는다. 형, 삼촌, 아버지뻘 되는 성도님들도 예의를 갖춰 그들에게 대해준다. 그런데, 그러한 깍듯한 예의를 받는 담임목사 자신들은 정작 부사역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말을 하고 함부로 책망을 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다른 교회의 목사에게도 한동안 자신 밑에서 부목사 또는 전도사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함부로 대하며 그들의 발언을 짖밟는 인간들도 있다. 상대방이 한 가정의..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 있는 여러 미국교회들을 출석했다. 한 교회는 원래 1000명의 교인이 있던 어느 미국 감리교회의 청소년 담당 목사가 그 교회의 담임목사 문제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리고 또 담임/교단이 진보적으로 나간다고 해서 보수적인 교인들을 데리고 나와 개척한 교회이고, 또 다른 교회는 남침례교회로서 남침례교단의 교회에 안수집사직만 있는것에 불만을 느낀 성도들이 장로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이에 반대한 담임목사는 떠난 교회이다. 그 교회는 오늘 담임목사를 청빙했는데, 99%의 찬성 투표율에 의해 담임으로 결정되었다. 그 담임목사는 침례신학원을 졸업한 목사가 아니며, 초교파적이며 보수적인 신학원을 졸업한 목사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가장 큰 두 한인교회들과 그 보다도 괭장히 적은 ..
지난 2년 동안의 미주 한인교회들을 불안하게 만든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이단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전에도 수 많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과 미주 한인 교계에서 이단으로 판정한 신천지이다. 왜냐하며, 이것은 단순히 정통신학과 신학적/신앙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침투해서 그 교회를 쑥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주 한인교계에서는 이단대책 세미나와 그에 대한 글들이 신문에 자주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반응들을 보면서 좀 갑갑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 자체가 갑갑한 것이 아니라, 한인교회들이 이단을 대응할 수 있는 지식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과 이단대책에 발벗고 나서는 분들 중 이단성이 있거나 잘못된..
나는 미국인 (주로 백인 그리고 가끔식 흑인) 교회와 미주 한인교회를 수십년 출석했고,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의 설교를 테잎과 동영상과 글로 많이 접했다. 그러면서 미국인 교회와 한국인/한인 목회자들의 설교자의 차이를 몇가지 느꼈는데, 그 중 하나를 지적하자면 예화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 설교자는 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화로 사용하며 간혹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는 자랑거리 보다는 실패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는 반면에 한인교회와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의 설교에는 너무나 설교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자신의 죄인됨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 이다. 그들의 설교에는 자신들이 선을 행한 이야기, 담대하게 전도를 한 것에 대한 이야기, 갑자기 공..
아주 오래전 어느 도시에 있는 한인 식당에 간적이 있었다. 그곳에 전직 한인 회장이 왔었는데, 웨이트레스가 그를 회장님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었다. 또한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어느 한인 회장 역시 한인 식당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자신을 회장님 대접하지 않았다고 괭장히 불쾌해 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명함도 못내미는 별볼일 없는 이 인간들은 한 도시의 한인회 회장자리가 대단한 명예와 권력의 자리라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한인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면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자라서 의사가 되어서는 어린 시절의 열등의식에 의해서 인지 아니면 성공했기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어디를 가던 자신은 늘 의사라고 하는 흑인의사가 있다는 ..
원래는 크리스웰 목사에 대해서는 적지 않으려고 했는데, 인터넷에 그에 대한 너무나 잘못된 이야기가 진실처럼 떠돌아다니며 그를 살인자로 누명을 쒸우고 있기에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크리스웰에 대한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다. 첫번째 이야기가 부풀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야기 1: 크리스웰 목사는 사냥을 좋아했다.어느날 사냥을 가서 노루로 보이는 물체를 겨냥하고 총을 쏘았다.그런데 노루가 아닌 사람을 쏴 죽였다.교회를 사임해야만 하는 상태였다.교인들은 사람죽인 목사는 목회를 할 수 없다며 교회를 나가라고 했다.교회의 중직자들은 기도하면서 감동을 받고 크리스웰을 사랑과 용서로 덮기로 하고 교인들을 설득했다.교회의 용서를 받은 크리스웰은 사랑과 용서의 내용을 설교할 때마다..
오래전 미주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모임에 어느 목사의 간증이 있었는데, 희생이 없이 교회성장을 이룰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희생은 바로 자신의 가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대형교회의 목사들을 가끔식 보게 된다. 백인 목사들은 거의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유난히도 한국인 목사들이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것 같다. 참고로, 그 목사는 더 큰 교회에 청빙되어 떠났다. 나는 이러한 말들을 들으면 매우 불편해진다. 희생없이 교회성장을 이룰 수 없다면, 작은 교회의 목사들은 희생을 않기에 교회를 성장 시키지 못한다는 말인가? 물론 대형교회 목사들중 백인이건 한인이건 부인들이 중한 병에 걸려 고생하는 분들이 있다. 마음의 병, ..
내가 보기에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회를 성장시킨 어느 목사의 항당한 말이 기억난다. 그는 성도수가 적은 교회에 대해 목사가 열심히 하면 성장을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했다. 너무나 황당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교회 성장은 과연 목사의 열심으로 일궈내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교회는 목사가 게으르기 때문인가? 교회성장에는 세상의 모든것들이 그런것처럼 영적인것을 떠나 세상적으로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 성장이라는 것은 꼭 목사의 열심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꼭 목사의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개교회의 성장이 꼭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 이뤄졌다고도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곽선희 목사님은 인천에서..
80년도 후반에 전자 성경책이 나오면서 그것에 대한 예배시간에 사용에 대한 찬반의 노란이 있었다. 그러나 전산화 시대인 2015년도에는 그런 논란이 완전히 종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아직도 스마트폰 성경에 대한 찬반의 논란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특히 어느 교회에 초대되어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쇼크를 먹었다. 그 이유는 그가 성경봉독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읽는 젊은 사람들을 보고 “이것들” 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화를내는 것이었다. 어디서 성경을 스마트폰에 탑재해서 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며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본질적인것과 비본질적인것을 구분 못하고 자신의 무지와 편견에 근거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분 나쁘게 만드는 그 모..
종교개혁 이전에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고 성도들을 농락하며 자신들의 권위와 지위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루터의 독일어 성경과 칼빈(올리베탕 성경을 개정)의 불어 성경 (작 르페브르 데'타플레 가 올리베탕 보다 5년 앞서 번역) 그리고 영어 성경들이 출판되면서 성도들이 직접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층의 독점이 깨어졌다. (대한성서공회에 의하면 독일의 경우에는 6세기 부터 번역되었다고 함. 그러나 본격적인 영향을 끼친것이 루터와 칼빈.)http://www.bskorea.or.kr/about/worldtrans/engbib/engbib_list.aspx) 현대에는 수많은 역본들이 존재하고 또 계속해서 새로 발견되는 언어로 번역이 되고 있다. 어쩌면 성경번역의 부흥의 시대라..
수십년 전 이었다. 어느 신앙 좋은 대학원생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 중 한 학생은 자신은 어릴때 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교회를 다녔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야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이다. 좀 이상해서 물어보니 어느 누군가가 자신에게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봤고 그 질문에 자신이 없어 대답을 못했었다고 한다. 그후에 그 질문을 던진 분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후에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 전에는 예수를 믿은것이 아니었냐고. 그랬더니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구원의 확신을 갖기 전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할때 하나님이 함께하시..
오래전 전 아무개 목사의 설교가 생각이 난다. 단 한번의 예배에 모든것을 걸라는 내용이었다. 그와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지난 몇해 동안 여러 목회자들을 통해 너무 자주 들었다. 단 한번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예배에 모든것을 걸라는 것이었다. 도데체 예배가 무엇이길래 예배에 모든것을 걸어야만 하는가? 예배에 모든것을 걸라고 설교하는 분들에게는 예배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일주일 내내 실패를 거듭하고 살았더라도 예배에 모든것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이민교회와 특히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이해로 부터 시작이 된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에서 예배만 잘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사형통이라는 착각이 그들로 가정과 사회에서 개판을 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가정에서 아내는 ..
"History and Exegesis: New Testament Essays in Honor of Dr. E. Earle Ellis" 에 적혀있는 신학자 고 E. 얼 엘리스 교수에 대한 실화이다. "[엘리스 교수는] 튜빙겐 대학에 재학중 돈을 절약하기 위해 자주 자신의 자취방에서 식사를 했다. 그는 빵집에서 썰지 않은 통 빵을 주문했는데 신선함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였다. 당혹스럽게도 그는 "썰지 않은" (운게슈니튼) 이라는 단어를 "운베슈니튼"으로 잘못 배웠다. 그를 늘 기다리는 빵집 아가씨는 웃음을 지으며 그 단어를 고쳐 주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는 늘 "운베슈니트네스 브롯"을 달라고 했다. 그가 미켈 교수의 갈라디어서 강의를 들으면서 *"베슈나이둥스파르타이"에 대해 말한것을 들었을때에서..
나는 예배시간에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려는 성가대나 찬양대와 찬양 인도자들 그리고 대표 기도자들과 설교자들을 여러 교회에서 보았는데 그들이 염려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심과 선동으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가대는 은혜롭게 찬양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먼저 자신들이 은혜를 받어야 성가를 듣는 성도님들도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을 한다. 찬양 인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흔들거나 눈을 지극히 감거나 손으로 성령님과 은혜를 꽉 잡는 시늉을 하거나 손을 높이들거나 손뼉을 과하게 치며 선동적인 찬양을 한다. 어쩔때는 감성을 자극하는 곡들만 골라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것을 은혜로운 찬양이었다는 환상에 빠져 있기도 한다. 대표 기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뜨거움을 성도들에게 전하기 ..
내가 올린 원어풀이에 대한 문제들을 지적한 글들을 보며 목회자도 사람인데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이다. 목회자 뿐만이 아니라 신학자들도 실수를 한다. 단어 풀이에 대한 실수를 하기도 하고 해석 선택에 있어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다만 그 실수가 어떠한 실수이냐? 라는 것이다. 가끔 하는 실수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실수인가? 또 확실치 않은 해석을 확실한 또는 절대적인 진리로 가르치는가 아닌가? 선동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해를 위해서인가? 이다. 내 주위에는 목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고 방지일 목사님과 말씀 연구와 설교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해석의 선택에 있어서 고민을 하는 ..
목회자의 설교 향상을 위해 교회에서 투자를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경험한것에 따른 주관적인 것이다. 1. 교회는 성경연구 프로그램을 교회 사역자들을 위해 구입해야 한다. 성경연구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는데 목회자들이 자비로 구입하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기에 교회용으로 모든 사역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돈이 없기에 불법으로 프로그램을 복사해 사용하는 목회자들이 가끔식 있는데 그것은 도적질을 한것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니 좋은것이 아니다.) 내가 추천하는 프로그램은 학적인 연구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바이블워크스(BibleWorks) 와 어코댄스(Accordance) 인데 이둘을 함께 사던지 아니면 주로 설교자들을 위해 만든 로고스(Log..
한국이나 미국이나, 교인들을 보면 정말 궁금한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과연 예수를 믿는것인지 목사를 믿는것인지 의심이 들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들의 행동과 신념을 보면, 예수 숭배가 아닌 목사 숭배로 밖에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고 김성수 목사가 목회하던 서울과 남가주 서머나 교회는 김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에도 후임을 모시지 않고 그의 설교를 동영상으로 보고 들으면서 예배를 드렸고, 아직도 여러 서머나 교회는 김목사 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도데체 김목사가 무엇이었기에 이런 코믹한 일들을 하는가?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기로 거부했던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의 생전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을때 이스라엘은 ..
데모를 주도하는 카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 중 "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 라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정말 "민중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인가? 도데체 어떠한 차원에 그렇다는 것인가? 성경을 눈을 크게 뜨고 다 뒤져봐도 "민중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라고 하는 곳이 없다. 오히려 민중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민중이 원하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숭배한 사건이다. 그 결과는 피비린내 나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뿐 아니라 민중은 항상 하나님을 대항해 왔으며,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착각에 빠져 모든것이 형통할 것이라며 참된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그뿐 아니라 그 민중은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대제사장들..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어느 목사님이 특정인물을 겨냥해서 비웃는 얼굴로 학계에 종사한 사람은 (신학자) 목회현장과 동떨어진 말을 한다며 그렇기에 목회를 잘하신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이것은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이다. 나는 신학자들을 그런식으로 무시하고 비웃거나 신학과 신학자들이 필요없다고 하는 목사들 모두를 의심한다. 그 이유는, 신학자들을 욕하거나 그들을 비하하는 말을하는 목사들 중에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신학자들을 현장감 없는 탁상공론만 하는 자들로 교인들에게 인식시켜야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숨기거나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이 목회..
(일요일, 12 9월 2010 22:35)지난 몇 주동안 어느 교회에서 듣던 질문은 "왜 한인교회에서 자란 우리의 1.5세 와 2세 자녀들이 한인교회로 돌아오지 않는가?" 이다. 오늘 설교한 어느 목사는 설교시간 50 분중 45분을 이문제에 대해 다루었다. 성서 해석도 없이 시계 추 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뉴욕의 뤼디멀 장로교회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PCA)) 의 팀 켈러 (Tim Keller) 목사를 방문한 사례를 들었다. (1.5-2세 한-미 인이 5,000명 교인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교회다.) 그곳에서 대형 한인 감리교회의 김00 목사가 위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고 한다. 그때 팀 켈러 목사의 답은 한국교회는 장자의..
이곳 미국에 있는 남침례교단과 장로교단의 한인목사들 몇몇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가관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카톨릭 신부들이 착용하고 감리교 목사들이 한동안 착용하던 하얀 플라스틱 칼라가 달린 성직자 의복을 입고 다니는 그것이다. 오히려 감리교단에서는 그 옷을 입지 않는 목사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말이다. 성직자 의복을 왜 그렇게들 입고 싶어들 하는지 궁금하다. 그것을 입으면 신령해 보이기 때문인가? 폼이 나기 때문인가? 아니면 똑똑하게 보이고 싶어서인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인가? 그렇게도 목사 대접 받고 싶어서인가? 그런한 것들이 아니라면 성직자라고 표를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도 잘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평복을 입고 다녔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