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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3-4: 페이토 (πείθω, 신뢰하다) 와 페포이테시스 (πεποίθησις, 신뢰) 본문

단어풀이/히브리어/헬라어 단어 풀이

빌립보서 3:3-4: 페이토 (πείθω, 신뢰하다) 와 페포이테시스 (πεποίθησις, 신뢰)

frog prince 2016. 4. 29. 15:18

어느 블로그에서 원어의 어원을 근거로 본문을 해석하는 글을 읽었는데, 새롭게 본문을 보고자 하는 의욕이 지나쳐서인지, 본문의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해석을 하는것을 읽어보았다. 그 글은 바로 빌립보서 3:3에 나오는 ‘신뢰하다’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쏘)와 4절에 나오는 ‘신뢰’, ‘확신’, ‘자신감’을 뜻하는 명사 ‘πεποίθησις’ (페포이테시스/페포이쎄시스) 에 대한 것이었다. (블로그에 올려진 해석은 20+년 전에도 접했었는데, 글에서 읽은것인지 누구에게 들은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로그의 저자는 “믿음”을 뜻하는 명사 ‘πίστις’ (피스티스) 와 “신뢰”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페이토/페이쏘) 의 어근이 같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을 뜻하는 ‘피스티스’와 “신뢰”를 뜻하는 ‘피스튜오’가 완전히 독립하여 결별되었다며, 그 결별된 과정을 보존하는 본문이 빌립보서 3:3-4이라는 것이다. 바울에 의해 두 단어, ‘피스티스’와 ‘페이토'가 결별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결별”이라는 것은 바로 ‘신뢰’라는 단어가 바울에 의해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인데, 바울이 “신뢰”를 뜻하는 같은 단어를 분사, 명사, 부정사로 바꿔가며 부정적으로 사용했다는데 그 근거를 두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큰 오해이다. 왜냐하며, 1) 그 두 단어는 이미 신약성경이 쓰여지기 4-500년전부터 클래식 헬라어 문서들에서 비슷한 뜻을 지닌 단어들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그 뜻들이 교부들의 글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며; 중요한것은 바로 2) 바울은 ‘신뢰’를 부정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1. 주후 1-4세기에 쓰여진 글들을 보면 ‘페이토’를 사용하는 유대교나 기독교와 연관된 문서들을 볼 수 있는데, 블로그 저자의 주장과 달리 ‘페이토’가 ‘피스티스’와 결별되거나 부정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피스티스’에 가까운 단어로서 구약과 신약에서의 의미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μηδὲ τοῦτο τὴν πεποίθησιν ὑμῶν τὴν εἰς Θεὸν σαθρούτω. 이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확신/신뢰/믿음이 연약하게 되게 하지 말라. (바실, 서신 257.2)
  • ἵνα κατασκηνώσωμεν πεποιθότες ἐπὶ τὸ ὁσιώτατον τῆς μεγαλωσύνης αὐτοῦ ὄνομα. 이렇게 우리는 그의 위대하심의 거룩하신 이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것이다.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제 1 서신 58.1)
  • οἱ δὲ ὑπομένοντες ἐν πεποιθήσει δόξαν καὶ τιμὴν ἐκληρονόμησαν, ἐπήρθησάν τε καὶ ἔγγραφοι ἐγένοντο ἀπὸ τοῦ θεοῦ ἐν τῷ μνημοσύνῳ αὐτῶν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견디어낸자들은 영광과 명예를 상속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높임을 받았고 하나님에 의해 기념비에 영원토록 기록되었다. 아멘.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교인들에게 보내는 제 1 서신45.8) 
  • “ἄκουε Ἰσραήλ· κύριος ὁ θεός σου, κύριος εἷς ἐστι,” καὶ “κύριον τὸν θεόν σου προσκυνήσεις καὶ αὐτῷ μόνῳ λατρεύσεις…μακάριοι πάντες οἱ πεποιθότες ἐπ᾿ αὐτῷ.”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님은 너희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한분이시며,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길지라”…그를 의지하는 모든자들은 복되도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헬라인들에게 보내는 권고문 8)
  • πειράζει σε ὁ κύριος ἐκλέξασθαι τὴν ζωήν, συμβουλεύει σοι ὡς πατὴρ πείθεσθαι τῷ θεῷ. 주님께서는 네가 생명을 택하기를 시험하고/권하고 계신다. 그는 아버지로서 네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권고하신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헬라인들에게 보내는 권고문 10)
  • οἱ δὲ ὁλοτελεῖς ὄντες ἐν τῇ πίστει πάντα αἰτοῦνται πεποιθότες ἐπὶ τὸν κύριον, καὶ λαμβάνουσιν, ὅτι ἀδιστάκτως αἰτοῦνται, μηδὲν διψυχοῦντες. 그러나 믿음안에서 성숙한자들은 주님에 대해 확신하여 모든것을 구하며,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의심없이 구하여 그 구한것들을 받는다. (헤르마스, 목자서 2권. 계명 9.6)

위에서 보이는데로 명사로서는 ‘πεποίθησιν’과 로마의 클레멘트의 “서신”에서 ‘πεποιθήσει’; 동사로서는 부정분사인 πεποιθότες 와 부정사인 πείθεσθαι 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

 

2. 블로그의 저자는 빌립보서 3:3-4에서 바울이 “깔아뭉개”는 것이 육체가 아니라 “’신뢰’라는 단어임을 유념”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신뢰”를 뜻나는 명사 ‘πεποίθησις’ (페포이테시스)를 사용한 모든 성경구절들을 찾아보면,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

  • 고린도후서 1:15 내가 이 확신(πεποιθήσει)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개역개정)
  • 고린도후서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πεποίθησιν)이 있으니 (개역개정)
  • 고린도후서 8: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πεποιθήσει) 더욱 간절하니라 (개역개정)
  • 고린도후서 10: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원문에는 “담대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πεποιθήσει)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πεποιθήσε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개역개정)

위에서 보이는데로 빌립보서 3:3-4에서 사용되는 ‘신뢰’를 의미하는 ‘페포이테시스’라는 단어는 ‘확신’으로도 번역이 되고 있는데, 바울은 이를 전혀 부정적으로나 혹은 믿음과 대립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고후3:4와 엡 3:12 에서는 거의 믿음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고후 3:4에서는 ‘확신’을 뜻하는 단어는 원문에서 문장 첫 단어로 사용됨으로서 강조되고 있다.

 

3. 바울서신에서 ‘신뢰하다’를 뜻하는 동사 πείθω 가 사용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인용된 것은 개역개정이다.)

  • 로마서 8:38 내가 확신하노니 (완료 직설법: πέπεισμαι)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로마서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완료 직설법: πέπεισμαι)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 로마서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완료 직설법: πέπεισμαι)
  • 고린도후서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완료 분사: πεποιθὼς)
  • 고린도후서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완료 직설법: πέποιθεν)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 갈라디아서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완료 직설법: πέποιθα)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완료분사 πεποιθὼς)
  • 빌립보서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완료 분사: πεποιθότας)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 빌립보서 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완료 분사: πεποιθὼς) 아노니
  • 빌립보서 2:24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완료 직설법: πέποιθα)
  • 데살로니가후서 3: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완료 직설법: Πεποίθαμεν)
  • 디모데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완료 직설법: πέπεισμαι)
  •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완료 직설법: πέπεισμαι)
  • 빌레몬서 1: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완료 분사: πεποιθὼς ) 

위에 보이는데로 바울은 동사‘πείθω’ (페이토/쏘) 를 부정적으로 또는 믿음에 대조되는 단어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πείθω’ (페이토/쏘) 역시 명사 ‘πεποίθησις’ (페포이테시스) 가 명사 ‘πίστις’ (피스티스) 와 가까운 의미로 사용된것처럼 동사 ‘πιστεύω’ (피스튜오)에 가까운 또는 같은 의미의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롬 8:34; 14:14; 고후 10:7; 빌 1:6).

 

4. 바울외에 다른 성서 저자들도 ‘πείθω’ 를 여러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동사 ‘피스튜오’에 가까운 단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분사와 부정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 히브리서 2: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완료 분사: πεποιθὼς)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 히브리서 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완료 직설법: πεπείσμεθα)
  •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현재 명령어: πείθεσθε)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히브리서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현재 직설법: πειθόμεθα)
  • 야고보서 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현재 부정사: πείθεσθαι)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 요한일서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미래 직설법: πείσομεν)

특히 히브리서 2:13 은 칠십인역을 인용한것인데, 이사야 8:17 에서는 “소망하다”, “바라다”, “기다리다”를 뜻하는 ‘카바’ (קוה)를; 이사야 12:2 에서는 “의지하다”를 뜻하는 ‘바택’ (בטח)를; 사무엘하 22:3 에서는 “의지하다”, “피난하다”를 뜻하는 ‘호싸’ (חסה); 이 세가지의 다른 단어들을 칠십인역에서는 분사인 ‘πεποιθὼς’ (페포이토스) 라는 같은 단어로 번역이 된것으로서, 히브리서 2:13에서 분사 ‘페포이토스’는 믿음과 매우 가까운 의미의 단어로서 기다림을 뜻하고 있으며, 이는 믿음에 대한 한 구체적인 표현으로 봐야 할 것이다.

 

5. 빌립보서 3:3 에서는 ‘페이토’가 완료 능동태 분사인 ‘πεποιθότες’ (페포이토테스) 로 사용되고 있고; 4절에서는 완료 능동태 부정사인 ‘πεποιθέναι’ (페포이테나이)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증거로 제시한 구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분사와 부정사로 사용된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단어들이 부정적이 아니라 오히려 ‘피스티스’에 가깝게 사용된 사례가 더 많음을 볼 수 있다. 설령, 바울이 ‘신뢰’를 뜻하는 동사 ‘페이토’나 명사 ‘페포이테시스’ (πεποίθησις’) 를 “깔어뭉개” 버린것이라고 가정한다면, 1) 그것은 바로 그 단어들을 사용한 자신의 서신들을 부정하는 것이며; 2) 그 단어들을 사용한 신약의 다른 저자들은 물론 구약 성서 저자들 모두의 뒷 통수를 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페이토’나 ‘페포이테시스’를 전혀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 않음을 명확히 볼 수 있다.

 

6. 바울은, 위에서 이미 충분히 증명한것 같이, 빌립보서 3:3-4에서 절대로 ‘신뢰’라는 단어를 “깔아뭉개”고 있지 않다. 바울은 ‘신뢰’ 혹은 ‘확신’을 뜻하는 단어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며, ‘육신’을 뜻하는 단어 역시 문제를 삼고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육체를 신뢰하는 마음과 행위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교해서 말하는 것이지, 비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