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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4Today!
담임목사들을 보면 부사역자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성도들에게 반말을 하며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몰상식을 책망하며 상식적인 신앙을 가르치는 목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정말 희한한 일이다. 자신들은 나이가 드신 성도님들로부터 “목사님”이라는 존칭과 존대말과 존중의 대접을 받는다. 형, 삼촌, 아버지뻘 되는 성도님들도 예의를 갖춰 그들에게 대해준다. 그런데, 그러한 깍듯한 예의를 받는 담임목사 자신들은 정작 부사역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말을 하고 함부로 책망을 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다른 교회의 목사에게도 한동안 자신 밑에서 부목사 또는 전도사를 했다는 이유 하나로 “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함부로 대하며 그들의 발언을 짖밟는 인간들도 있다. 상대방이 한 가정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lyspirit11&logNo=220578911554 윗 링크에는 나의 포도주에 대한 글의 링크를 걸고 “개인적인 해석”이라면서 술마셔도 된다는 해석이 틀렸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의 글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하고서는 거짓이니 악이니 하며 정신 승리를 거두고 있다. 또한 ‘메쑤스코’가 왜 “to begin to be drunk”라고 번역될 수 없음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킵바이블에 있는 주장을 그대로 늘어놓고 있다. 이러한것은 바른 반론이 아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한, 킵바이블에 올라온 모든 성서구절들과 해석들이 왜 틀린지 하나 하나 집어 주해하면서 반박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사용한 성..
내가 교회에서의 분쟁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국민학교 5 학년 때였다. 한국에서 이다. 일요일에는 한국에서 내 놓으라 하는 대형 장로교회에 출석을 했고 주중에는 인근에 있는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바로 집에서 보이는 작은 성결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동생들이 출석을 했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작은 교회라서 담임목회자 부인이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당시에 내가 어려서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교회의 몇몇의 직분자들이 목사님을 쫓아 내기위해 난동을 부려 교인들과 목사님과 그 가정이 큰 고통을 격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두 눈으로 교회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을 목격한것은 열네살 때였는데,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방문해서 이민 전 주중에 출석했던 교회를 방문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니 예배시간..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 이다. 이 단어에 대한 원어풀이를 설교시간에 종종 듣게되는데, 이 단어에 대한 기독교적인 선입견에 의해 정확하지 않은 풀이를 하는 것을 듣게된다. 그 정확하지 않은 해석은 바로 ‘에클레시아’는 헬라어 전치사 ‘에크’ (~로부터) 와 ‘칼레오’ (부르다)의 합성어로서 “불러낸 자”를 뜻한다며 이 단어를 기독교만의 특별한 단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원어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이 부여하는 교회의 의미와 클래식과 코이네 헬라어 사전적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상에서 불러내셨다는 것은 사실이나, ‘에클레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내심을 받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에클레시아’라는..
한인 수퍼 마켓에 장을 보러가면 입구에서 전도지나 설교 CD 를 나누어주는 분들이 있다.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분들도 있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자신들이 출석하는 교회 정보가 담긴 전도지나 설교 CD 또는 선물을 강제로 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교회의 목회자들도 나와서 자신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정보가 담긴 전도지를 돌린다. 전도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꼭 해야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예수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교회로 끌어 모으려는 것이고 (한국과 미국교계에서 이단으로 판정한 신천지와 다를게 뭔가?!), 교회는 개교회가 여러 몸을 이루는 것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전도를 순..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어느 목사님이 특정인물을 겨냥해서 비웃는 얼굴로 학계에 종사한 사람은 (신학자) 목회현장과 동떨어진 말을 한다며 그렇기에 목회를 잘하신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이것은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이다. 나는 신학자들을 그런식으로 무시하고 비웃거나 신학과 신학자들이 필요없다고 하는 목사들 모두를 의심한다. 그 이유는, 신학자들을 욕하거나 그들을 비하하는 말을하는 목사들 중에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신학자들을 현장감 없는 탁상공론만 하는 자들로 교인들에게 인식시켜야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숨기거나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이 목회..
이곳 미국에 있는 남침례교단과 장로교단의 한인목사들 몇몇을 지켜보노라면 참으로 가관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카톨릭 신부들이 착용하고 감리교 목사들이 한동안 착용하던 하얀 플라스틱 칼라가 달린 성직자 의복을 입고 다니는 그것이다. 오히려 감리교단에서는 그 옷을 입지 않는 목사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말이다. 성직자 의복을 왜 그렇게들 입고 싶어들 하는지 궁금하다. 그것을 입으면 신령해 보이기 때문인가? 폼이 나기 때문인가? 아니면 똑똑하게 보이고 싶어서인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인가? 그렇게도 목사 대접 받고 싶어서인가? 그런한 것들이 아니라면 성직자라고 표를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도 잘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평복을 입고 다녔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