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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교회를 풍지 박살내는 인간들

frog prince 2015. 11. 3. 14:13

내가 교회에서의 분쟁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국민학교 5 학년 때였다. 한국에서 이다. 일요일에는 한국에서 놓으라 하는 대형 장로교회에 출석을 했고 주중에는 인근에 있는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바로 집에서 보이는 작은 성결교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동생들이 출석을 했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작은 교회라서 담임목회자 부인이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당시에 내가 어려서 이유를 모르겠지만, 교회의 몇몇의 직분자들이 목사님을 쫓아 내기위해 난동을 부려 교인들과 목사님과 그 가정이 큰 고통을 격었다고 한다.

 

내가 직접 눈으로 교회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을 목격한것은 열네살 때였는데,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방문해서 이민 전 주중에 출석했던 교회를 방문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니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고 계셨는데, 한편에서는 장로와 그를 따르는 청년들이 확성기를 가지고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부르면서 예배를 방해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내가 빠진 주일에 장로가 깡패를 불러 목사님을 강대상에서 끌어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내가 정말 좋아했던 분이었는데, 그때 어린 심정으로는 주먹으로 인간들을 주고 싶었다. 또한, 토요 학생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를 같는데, 교회가 너무 더워서 보니 선풍기의 선이 모두가 끊어져 작동을 하지 않았고, 마이크와 스피커 역시 선들이 끊어져 작동하지 않았다. 해서, 친구들이 말리는 가운데 줄들을 다시 연결해서 선풍기가 작동하게 했는데, 예배 도중 청년 몇명이 와서는 전원에 연결된 줄을 끊어놓고 사라져서 땀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기억이 있다. 어쨋건, 분쟁의 이유는 바로 난동의 주인공인 장로가 장로가 되기 위해 장로교 신학교에서 필요한 과목을 수강한 어느 주석을 샀는데, 목사님의 어느 해석 하나가 주석의 해석과 다르기에 자유주의라면서 목사님을 쫓아 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안이 신학에 대해 아는 집안이라서 아는데, 자유주의의 해석이 아니라 보수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받아 들일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쨋건, 무식한 인간이 신학 과목을 수강한  자신이 신학의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탄의 짖을 것을 직접 목격한 사례이다.

 

어디 그뿐인가지난 3-40년 미주 한인교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즐비했다. 이것은 개척교회나 이미 자립한 교회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떤 교회에는 예수를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 와서는 자신이 신앙이 좋은 처럼 가장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교인들을 선동해서 교회를 시끄럽게한 있다. 어떤 교회는 직분자들이 젊은 여자에 눈이 멀어 불륜을 저지르고 아내와 이혼 불륜녀와 재혼을 하고서도 뻔뻔하게 스스로 신앙적 지도자로 여기고, 어떤 직분자는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고, 성도들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이 많아 목사님이 죄에 대한 설교를 자주 했는데, 그런 설교를 그만하라는 직분자들의 요구가 있었고, 그것에 순응하지 않는 목회자를 쫓아내기 위해 교회에서 목사님의 멱살을 잡는 둥 난동을 부리다가 교회를 갈라 나가서 자신들의 교회를 개척한 있다. 어떤 교회는 볼일 없는 인간들이 교회에서 직분을 얻은 자신들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그리고 장로는 고용주이며 목사는 고용인이기에 목사는 자신들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목사를 자신들의 뜻대로 조종하려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목사와 대립을 하며 싸우다가 쫓아내기도 하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교인들을 끌고 나가 개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을 가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키려는 목사와 대립하여 교회에서 난리를 치며 목사를 몰아내기도 하고, 실패했을 경우 교인들을 선동해서 끌고 나가 새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교회에서 난동이 벌어지고 분리되는 이유 목사들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난동을 부리고 세상적으로 일을 대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사탄의 방법이니, 자신들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사탄의 일을 하는 것이다.

 

교회를 쪼개서 세로 교회를 세울 있는 용기를 부여하는 이유는 바로 양심적인 목사들 때문이다. 분명히 교회에서 깽판치다 나온 인간들인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세운 교회에 쉽게 가는 목사들이 바로 그런 목사들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교회를 개척하면 그 교회에 담임으로 올 목사들이 얼마던지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더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목사들의 이유는 바로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듯고 변해야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주변에 교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교회에 담임으로 목사들은 보통 이년을 견디고 쫓겨 나고 길어야 삼년을 지땡했다. 그런 목사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영주권이 없다는 것이었으며 상당 신학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에는 자신의 상황과 욕심에 양심을 굴복하는 목사와 사회에서 별볼일 없는 인간들이 교회에서 권력을 휘두르면서 뭔가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한인 이민 교회를 분쟁과 분열로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분쟁과 분열의 주동들이 성도들만은 아니다. 주동들 가운데 목사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선교사로 있다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와서 신학교를 다니면서 한인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자신은 $300 정도의 월급으로 선교지에서 사역을 했다며, 적은 돈으로도 교회를 담임 있다고 교회 제직들과 성도들을 선동해서 교회를 어렵게 만든 담임 목사님을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한 영주권 까지 받은 경우도 있다. 어떤 신학생 목사는 사역자로 어느 교회에 봉사하러 성도들의 담임 목사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킨 담임을 쫓아 내고 자리를 차지하려다 실패하자, 뜻을 같이 하는 성도들을 모아 교회를 나가 새로 개척을 경우도 있는데그 역시 결론적으로 영주권을 얻기 위해 그러한 짖을 벌인것이며, 어떤이는 공부를 계속하기 위한 생활 수단으로 그런 짖을 벌이기도 했다. 어떤 목사는 이민 1.5세인데, 어느 교회에 부목으로 갔다가 담임을 쫓아내고 자신이 담임을 하려다가 실패한 ,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성도들을 끌고 나가 개척을 하다가 역시 실패한 , 다른 곳으로 옮겨 개척을 하다가 잘 않되서 이제는 중국에 선교사로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교회에는 부목들이 서로 다투다가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성도들을 끌고 나가 새로 개척을 하면서 교회를 영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돈욕에 사로 잡혀 교육비를 뜻어내기 위해 목회학 박사학위를 여러곳에서 하고, 교회나 교단과 연관된 일을 위해 간다고 라스 베가스에서 가족과 노는 모습이 포착되어  문제를 추궁하는 파와 끝까지 목사를 두둔하는 파와의 싸움으로 교회가 갈라지는 일들도 있었고, 많은 은퇴금을 받았음에도 부족한지 특정 선교헌금까지 챙겨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많은 교인들이 떠나 후임을 힘들게 사례도 있다. 이처럼 이민 교회의 (건물적) 숫자적 성장에는 분쟁과 분열의 큰 아픔이 한몫을 했는데, 마귀의 앞잡이가 되고서도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한점 없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그리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님의 십자군이며 순교자라는 착각에 빠진 이상한 성도들과 목사들 때문에 교회가 풍지 박살이 난다.

 

현재, 2015년에도 역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같다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교회에서 난동을 치고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목사가 이단이 아닌 이상, 돈과 여성 문제가 없는 이상, 교회에서 편을 가르고 난리를 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특히 교단의 권력에 순응해야되는 교단에 가입된 교회라면, 교단의 뜻을 따라야 한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다면, 다른 교회에 가면 된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진실을 알리면 된다 그것이 100% 확실한 진실이고 신학자나 그것을 입증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있는 것이라면. 성도들은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다거나 혹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마음에 맞는 교회에 가면 된다. 목사들 역시 교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교인들과 싸우지 말고 자신들이 가르치던데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미련없이 떠나면 된다. 물론, 싸울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부터 확신을 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