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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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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frog prince 2021. 11. 8. 09:06

“나이예 에르쿡, 쿠리에 예수” - 목회를 수 십 년 하고 신학박사학위를 소유한 어느 목회자가 설교 중 “유식한 말을 했습니다” 라면서 언급한 헬라어 문구로서, 개역개정에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번역된 요한계시록 22:20의 말씀이다.
 
‘나이예 에르쿡, 쿠리에 예수’라고 발음한 헬라어 문구는 목회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UBS4/5 나 NA27/28이 아닌, 1516년에 출판된 에라스무스의 편집본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왜 에라스무스를 인용한 것인가? 왜냐하면, 모든 권위 있는 주석들은 NA27/28 사용하기 때문이며, 또한 목회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헬라어 성경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에라스무스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문구 앞에 있는 부분과 혼동을 해서 그랬던 것인가? 잘 모르겠다. 다만, 원어를 제대로 연구를 하고 사용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에라스무스 편집본에는 ναί, ἔρχου κύριε ΙΗΣΟΥ(나이, 에르쿠 키리에 예수)라고 되어 있는데, 문자적으로 직역을 하자면, “네, 오십시오 주 예수님”이며, 그 앞에 있는 문구 “내가 속히 오리라”와 연결을 해서 번역을 하자면, “네”는 “속히 오리라”에 대한 반응으로서, “주 예수님 속히 오십시오”라고도 번역을 할 수 있다. 참고로, 에라스무스의 편집본은 12세기 헬라어 본문들을 바탕으로 편집된 헬라어 본문이다. USB4/5와 NA27/28에는 Α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아멘, 에르쿠 키리에 예수)로 위에와 같이 번역이 된다. 그 목회자는 곧바로 고린도전서 16:22절에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고 새 개역개정에 번역된 아람어 ‘마라나타’를 외치고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한국어로 외쳤다. 
 
‘마라나타’는 아람어로서 언어 형태론적으로 세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명사인 ‘마라’(주님), 인칭 대명사 접미사인 ‘나’(우리), 그리고 동사인 ‘아타’(오십시오)이다. 22절은, 헬라어는 ‘μαράνα θά’ (마라나 타), 현대 히브리어 성경에는 ‘מָרָנָא תָא!’ (마라나 타!), 페쉬타에는 ‘ܡܳܪܰܢ ܐܶܬ݂ܳܐ’ (마란 아타)로 되어있다. 헬라어와 현대 히브리어는 아람어를 음역 했는데, ‘마라나타’를 호격 명사인 ’마라나’(우리 주님)와 명령어인 ‘타’(오십시오)로 분리했으며, 직역을 하자면 “오십시오, 우리 주님!” 혹은 “우리 주님 오십시오!”이다. 아람 페쉬타에서는 소유 명사인 ‘마란’(우리 주님)과 완료 시제 혹은 과거 시제 3인칭 남성 동사인 ‘아타’(그는 (he) 오셨습니다)로 되어있는데, 직역을 하자면 “우리 주님은 오시었다”이다. 이것이 “우리 주님 오십시오”와 “우리 주님은 오시었다”둘 중 어느 것이 바른 번역이냐의 논쟁은 복잡한데, 아람어를 분석한 최근 논문에서는 “우리 주님은 오시었다”가 더 정확하다고 보고 있지만, 그 연구의 좁은 범위를 봐서는 후자가 정확한 번역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사본학적으로는 “우리 주님 오십시오”가 더 우월하다고 본다.
 
어쨌건, 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라나타’에는 ‘예수’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주님’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마라나 타’라는 두 단어에서 ‘예수’라고 발음하는 단어가 없고 다만, “우리 주”를 뜻하는 ‘마라나’와 “오십시오”를 뜻하는 ‘타’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외쳤을까? ‘마라나타’를 요한계시록의 ‘나이 에르쿠, 키리에 예수’와 혼동을 한 것인가? 특히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한 것이고,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기록한 것이며, 요한은 헬라어를 그리고 바울은 아람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의 차이부터 살피는 것이 설교 준비의 기초 작업이 아니던가?
 
내가 이 블로그에서 지겹도록 말하고, 난독증 환자들은 항상 오해하고, 원어를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목회자들은 기분 나빠 태클 거는 것은 바로, 헬라어/히브리어 등 여러 언어의 성경은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강대상에서 폼 잡으라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목회를 수 십 년 하고 거기에 신학박사학위가 있는데도 그 짧은 문구를 제대로 발음을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강대상에서 자신도 확실하게 모르고 성도들은 전혀 감도 못 잡는 헬라어를 내뱉는 것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사용한 헬라어 인가? 아니, 원어로 말하면 더 감동이 크기 때문인가? 자신은 감동받을 수 있고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원어를 모르는 성도들은 감동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목회자를 멋있고 유식한 목회자로 바라볼 확률만이 있다.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한국어 내놓고, 멋있어 보이려고 영어 단어를 내어 뱉는 목회자들은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툭툭 내던지면서 유식한척하는 무식한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특히 원어민들이 보면 우습고 황당하게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단언컨대, 강대상에서의 원어 사용의 목적의 99프로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오늘 읽은 갈라디아서 6:14 내용이 떠 오른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개역개정)
 

그런데, 목사들은 바울이나 예수님보다 더 잘났나 보다,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는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