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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파이스 무'(나의 종)은 "나의 아들"? 본문
마태복음 12:18에 대한 설교를 들었다.
마태복음 12:18은 다음과 같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ἰδοὺ ὁ παῖς μου ὃν ῄρέτισα, ὁ ἀγαπητός μου εἰς ὃν εὐδόκησεν ἡ ψυχή μου· θήσω τὸ πνεῦμά μου ἐπ’ αὐτόν, καὶ κρίσιν τοῖς ἔθνεσιν ἀπαγγελεῖ.
그 설교자는 “나의 택한 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둘로스’를 사용하지 않고 ‘파이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둘로스’는 종을 의미하지만 ‘파이스’는 아들을 의미하기에, “나의 택한 종”은 “나의 택한 아들”이라는 뜻이라면서,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며, 자신의 학적인 연구를 통해 아주 깊은 진리를 찾아낸 듯 성도들 앞에서 흥분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후에 따르는 중요한 문구와 다른 부분은 풀이를 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정말 황당한 헬라어 풀이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풀이는 헬라어 첫 학기를 마친 학생들이 하는 많은 실수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는 일반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마침은 물론, 한국의 신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은 후 미국의 두 다른 신학교에서 두 개의 학위를 얻었은 후 목회를 10년 이상 했기 때문이며, 성도들에게 자신은 학적인 목사라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이 내 눈에는 노골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헬라어 사용에 있어서 이와 같은 헬라어 일 학기 마친 학생 같은 실수를 매주 저지르고 있다. 학벌과 무관하게 목회 10년 동안 말씀을 깊이 있게 연구를 했다면, 헬라어 주해나 신학적 연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원어 사용에 있어서 어설픈 단어 풀이와 단순하게 누가 무엇이라고 했는지를 인용하는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학적인 연구와 객관적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이러한 해석이 무엇이 문제인지 기본적인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 ‘호 파이스’는 남성형으로서 어린 남자아이 혹은 소년을 뜻하기도 하고 남자 종을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아들”을 의미하지 않다. 물론, 어느 부모의 “소년 아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어린아이가 소년이고 어느 부모의 자녀라는 차원에서 “아들”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파이스’를 “아들”로 번역하는 것은 무리다.
- “나의…종”(ὁ παῖς)은 문구이다. 따라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 문구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지 특정 단어 하나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예로, “인자” (Son of Man)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son 이나 man이라는 단어를 따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Son of Man”이라는 문구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연구해야 되는 것이다. 한국어라고 해도, 문구를 연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 “나의…종”이라는 문구에서 “종”이라는 단어로 ‘호 둘로스’ (ὁ δοῦλος) 라는 단어가 사용 되었을때에는,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호 둘로스 무’ (나의 종)는 보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자 또는 하나님의 것 곧 그의 소유로서의 “종”을 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정 인물을 가리켜 ‘호 파이스 무’ (나의 종)라고 했을 때에는, ‘“종”을 의미하는 ‘호 파이스’(ὁ παῖς)는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택한 자 또는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그의 일을 이루어 나아가는 존귀한 “종”을 뜻한다.
- “나의…종”과 같은 맥락의 중요한 문구는 “나의…종”에 상응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 곧 ‘호 아가페토스 무’ (ὁ ἀγαπητός μου)이다. 학적인 설교라면, ‘호 파이스 무’와 ‘호 아가피토스 무’를 연구하고, 그 두 문구에 대해 강해를 했어야 한다. 물론, “내가 택한“을 포함해서 그 뒤에 따르는 것 까지도…
성도들에게 학적인 목사로 인정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실력을 과대 평가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둘다 인지… 다만, 성서 본문 이해를 위해 연구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원어를 설교시간에 원어에 “원”자도 모르는 성도들 앞에서 들먹이는 것 자체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목회자들과 신학자들도 자신의 설교를 들을 수 도 있는데, 원어 실력과 해석의 그 가벼움이 들통나는게 부끄럽지도 않나 보다. 나 같으며 얼굴 팔려서 강대상에서 원어 사용 못하겠다. 아무리 자신이 있는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하긴, 한국에서 가르치는 신학자들의 논문들과 기고문들을 보면 원어와 성서 해석의 수준이 황당한 수준의 것들이 꽤 있던데, 그런 수준의 교수들에게 배워가지고 미국 유학을 해서 더 당당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원어 사용을 강단에서 기회가 되는 대로 사용하는 지 모르겠다.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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