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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에 대한 오해 본문

단어풀이/히브리어/헬라어 단어 풀이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에 대한 오해

frog prince 2015. 7. 22. 02:41

(모든 인용한 한글성경구절은 개역개정 이고 헬라어는 SBLGNT 와 German Bible Society 의 Septuagint 이다.)
 
내가 지난 일년 동안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로드의 사랑에 대한 질문과 답에 대한 설교를 같은 교회에서 두-세분의 다른 설교가를 통해 네번 정도 들었다. 두번의 설교는아가페필리아 구분하는 내용을 담은 설교였다이외에 또 다른 설교를 들었는데 인터넷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아가페사랑에 대한 설교들과 블로그들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가페는...

  •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 차별하지 않는 사랑이다;
  • 헌신적인 사랑이다;
  • 의지적인 사랑이다;
  • 분별력있는 사랑이다;
  • 이성적인 사랑이다;
  • 노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 기분에 따라 바뀌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 성경은 아가페 사랑외에 그 어떤 다른 사랑도 (스톨게 마니아 루디스 에로스 플라토닉 등) 말하지 않는다

위에 내용들 외에 아가페 가장 고귀하고 희생적이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필리아 친구간의 우정을 뜻하는 사랑으로서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못미치는 사랑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다. 또한 심하게는아가페 최고의 사랑이라거나 기독교가 만든 단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그러면, 정말 그러한지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기독교적 단어“

명사인 아가페’ (γπη) 라는 단어가 성경밖에있는 글들 고대 헬라 문헌에서 드물게 사용되며 주로 신약성경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해서 단어가 기독교적이거나 또는 기독교가 그단어를 만들었다고 없다. 왜냐하면, 단어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기 전부터 사용되었던 단어이기 때문이다.  첫째로아가페아가파오’ (γαπάω) 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며, 아가파오 고대헬라어 문헌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둘째,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다수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복음전파를 위해 효과적으로 또는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셋째, ‘아가페필리아’ (φιλία)  아래에서 설명한데로 신약에서 동의어로 교환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에아가페라는 단어가 특유의 기독교적 단어라고 없다. 그렇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a) 단어를 기독교가 만들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또한 b) 고대헬라어 문헌에 자주 사용된필리아또한기독교 단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혹은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라는 단어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나하나님의 사랑 뜻하지 않는다. ‘아가페 동사인아가파오에서 유래했으며, ‘아가파오 신약에서만 해도 매우 넓은 폭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affection (애정), good-will (호의), love (사랑), benevolence (선의), love-feast (애찬), charity (자선적 사랑), dear (경애, 친애, 사랑스런). 이뿐 아니라 고대 헬라 문헌과 70 (LXX) 에서도 이처럼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볼 있다: greet with affection (애정을 가지고 맞이하다/환영하다), persuade(설득하다) -LXX, caress (포옹, 애무), to be fond of (애착을 갖다), prize (), desire (욕망, 욕구), to be well pleased (대단히 만족해 하고 싶은), contented (만족한), 사용되며 그리고 가끔식 아리스토틀레스와 루시아누스에 의해서 sexual love (성애) 사용되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가장 치명적인 증거는 사무엘하 2 13절에 동사아가파오 명사아가페 다윗의 아들 암몬이 다른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아가페사랑만 이야기 한다?

성경은 과연 아가페 사랑만 이야기 하는가? 아래서 설명을 하겠지만 성경은아가페사랑만 아니라필레오사랑도 이야기 한다. 그뿐 아니라 복합어로 사용된스톨게 사랑도 긍정적으로 권하고 있다.

  • (롬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φιλόστοργοι)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아가페 감정적 사랑이 아니다?

솔로몬의 애가와 사사기 16 4절을 보면 동사인 아가파오 연인과의 사랑 또는 이성적 사랑으로 사용된다.

  • (삿 16: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ἠγάπησεν)

이뿐 아니라 아래서 설명하는데로 육체적 욕망에 의한 문란한 사랑은 물론 미움으로 변하는 사랑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으시고 가슴 아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그의 분노를 볼때, ‘아가페사랑 역시 감정을 포함한 사랑이다. 따라서아가페 감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의 사랑

아가파오필레오 정말 서로 다르게만 사용되는지, 그리고 오직 아가파오’/’아가페 거룩한 사랑으로 혹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성경은 이야기 하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시간이 없고 바쁘기에 주로 동사인아가파오필레오 사용을 살펴 보기로  한다.
 
LXX/Septuagint (70 )
위에서 이미 언급한데로 사무엘하 13 1-5절에는 (특히 15) ‘아가페아가파오 폭력적인 상황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을 아니라 역대하 11 21절에는 문란한 사랑으로, 전도서 510절에는 돈에 대한 끝없는 사랑/욕심 또는 집착으로, 그리고 전도서 9 6절에서는 영원하지 않고 끝나는 사랑으로 사용되는 것을 있다.

  • (삼하 13:12-15)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ἠγάπησεν) 사랑보다 (ἀγάπην)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 (역하 11:21)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ἠγάπησεν)
  •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ἀγαπῶν)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ἠγάπησεν)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전 9:6) 그들의 사랑 (ἀγάπη) 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반면에 잠언 8 17절과 잠언 29 3절에서 필레오는 거룩하고 고귀한 사랑을 뜻하며, 이것은아가파오 "거룩한" 차원의 사랑과 공통적인 뜻을 가진 단어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잠 8:17) 나를 사랑하는 (φιλοῦντας) 자들이 나의 사랑을 (ἀγαπῶ)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 (잠 29:3) 지혜를 사모하는 (φιλοῦντος)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그뿐아니라아가파오역시필레오사랑 형제 혹은 친구와의 우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서로가 가진 미세한 의미까지 곂쳐지는 것을 있다.

  • (삼상 20: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ἀγαπῶντος)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ἠγάπησεν) 


공간복음
공간복음서에서의 ‘아가파오’ (ἀγαπάω) 는 ‘필레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필레오’는 네번 나오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이다 (마6:5, 10:37, 23:6; 눅 20:46). 이중 마태복음 10장 37절이 가장 유력하게 ‘아가파오’적 사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φιλῶν)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φιλῶν)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보다 어느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그에게합당치 아니하다 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필레오 사용한것은 바로 단어가 희생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단어의 사용량에 있어서 매우 차이가 나며 '필레오'를 사용하는 사례가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마태는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을 있다.
 
바울서신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두번 정도를 빼고 전부  아가파오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바울을 대신해서 글쓴이가필레오 사용한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던질 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필레오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에 단어의 뜻이 아가파오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φιλεῖ)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또는 우리 주께서 임하셨도다].
  • (딛 3: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φιλοῦντας)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3장 19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신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아가파오’가 아닌 ‘필레오’의 일인칭 단수 가정법 현재 능동태인 ‘필로’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φιλῶ)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비슷한 내용의 히브리서 12 6절을 보면 사랑아가파오 삼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 능동태인아가파 사용하고 있다.

  •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ἀγαπᾷ)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구절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있는 것은 바로아가파오필레오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라는 것이다. 물론 서로 다른 저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상필레오아가파오 의미적으로 전혀 다른것이 아님을 있다.
 
요한복음
요한복음에서는아가파오 필레오보다 두배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래 구절들을 살펴보면 있듯이 요한은 단어를 동의어로서 교환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단어 사용에 있어서 어떤 미세한 차이도 구분할 없다.

  •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ἠγάπησαν) 것이니라
  • (요 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ἀγαπᾷ)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φιλεῖ)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 (요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φιλεῖς)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 (요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ἠγάπα)
  • (요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ἐφίλει) 하며
  •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φιλῶν)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요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πεφιλήκατε)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φιλεῖ).
  • (요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ἠγάπησάς) 사랑이 (ἀγάπη)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것은 요한복음 11 3절과 36절이다. 구절을 보면, 요한복음의 저자는 다른 삼자인 유대인들이필레오 사용하는 것을 그대로 기록했다. 그뿐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단어를 교환해서 사용하며, 요한 자신 또한아가파오 사용한다 (21:20 - γάπα). 특히 21장에서 베드로는 세번 필레오 답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피어리뷰 (Peer-Review) 학술지에 기재한 내용으로, 유대인들은 당시에 보편적인 사랑을 필레오 사용한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한다. 동시에 초대교회는 단어를 수용하면서도 이방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상대한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보여 주듯이필레오적인 사랑보다는아가파오적인 사랑을 선호하여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것은아가파오 사랑이 보편적인 사랑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언어적 발전 또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유대인이며 예수님을 만나기 전 침례요한의 가르침을 따르던 베드로가필레오 보편적인 사랑으로 이해하고 예수님의 질문에 '필레오로' 답한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것에는 어떤 다른 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단어의 사례를 살펴볼때, 21 15-17절에서아가파오’ (γαπάω) 필레오’ (φιλω)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로서 교환되어 사용되었고 , 이것은 요한의 글을 쓰는 방식 혹은 스타일이다 라고 결론을 내릴 있다. 요한이 단어를 교환해서 사용한것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들이 있는데  하나는 바로 단어 외에도 다른 동의어를 사용하고 있는것인데, “양들 뜻하는알니아’ (ρνα)   프로바타’ (πρόβατά), “안다 뜻하는오이다’ (οδα) 기노스코’ (γινώσκω), “돌보다또는먹이다라는 뜻의보스코’ (βόσκω) 포이마노’ (ποιμαίνω) 쌍을 짖는 단어들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은 바로 동사인아가파오 명사인아가페 오해하고 동사인 필레오 명사인필리아’ (φιλία) 오해하며 단어의 특징을 주장하는 목회자들이 다른 쌍의 단어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시는 질문에 베드로가 확실하게, 주님이라고 답한것과 예수님의 세번째 질문에근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히브리-아람방언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그들에게는 헬라어처럼 사랑에 대한 여러 표현이 없었는데, 베드로 자신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답했으나 계속해서 히브리-아람 방언 같은 단어로사랑하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단어의 의미에는 문맥상 아무런 차이가 없고, 다만 이스라엘에 거하는 유대인들이 사랑 표현으로 사용한필레오 이방인 교회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사용한아가파오 사랑이 21장에서 예수님에 의해 화합된것이 아닌가 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필레오아가파오 발전 과정을 살펴볼때 단어는 적게나마 동의어로서 교환되어 사용된것을 있다.
 
참고로,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헬라어의 여러가지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단어들에는 서로 다른 또는 미세한 차이가 있고, 서로 공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있다. 실제로명사인필리아 친구간의 우정을 담은 사랑이 맞으며, 동사인필레오역시 친구간의 우정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단어들이 발전되어진 역사를 살펴볼때 그둘은 공통된 의미를 많이 지니고 있으며 보편적인 사랑으로 사용된 것을 있다. 또한 단어의 공통적인 뜻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미세한 차이를 강조하느냐는 문맥이 결정하는 것이다.

 
결론

필레오아가페 보편적인 사랑으로도 사용되어 왔으며, 특히필레오 매우 친밀한 사랑을 뜻하기도 하며 자신의 목숨을 버릴 있는 사랑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아가페’/’아가파오 하나님의 사랑이나 무조건적인 사랑 아니다. 다만, 그것이 문맥상 어떻게 사용되느냐 따라 "거룩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이라고 있는 것이지아가페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고 변함없는 사랑이지아가페아가파오 꼭 그러한 사랑을 뜻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랑을 어떻게 그려나가느냐 실천 하느냐 그리고 설명하느냐 따라 사랑이 하나님이 베푸시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고귀한 사랑이되던지 아니면 추잡하고 폭력적이고 탐욕적이며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 21장에서 나는 진심으로아가파오필레오 다른 의미의 사랑이었으면 한다. 그러면 양심상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지 못하지만 , 그러나 부끄럽고 부족하며 변할 있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나님께 하며, 그러한 부족한 사랑을 스스로 낮추어 받아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 하며 위로를 받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데로 문맥상이나 사용된 사례를 살펴 볼때 사랑에는 구분이 없다. 따라서 오늘도 주님께 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