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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 (염려 없는 아메림노스)? 본문

단어풀이/히브리어/헬라어 단어 풀이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 (염려 없는 아메림노스)?

frog prince 2021. 7. 15. 22:51

몇 개월 전 어느 누구에게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자신이 잘못 사용한 헬라어 단어를 부목사가 지적했다고 설교 시간에 언급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하기에 그런가 하고 있다가 그 목사의 설교를 한편 듣게 되었는데,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두 단어를 언급한 설교였다. 짧게 설명하자면,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이름으로, '티테디오스'는 "염려 없는"을 뜻하는 단어이고 '아메림노스'는 사람의 이름이라면서, "염려 없는" '아메림노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티테디오스 존', "염려 없는 존", '티테디오스 ㅇㅇㅇ', "염려 없는 ㅇㅇㅇ" 이 되자는 설교를 했다.
 
이러한 설교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이러한 설교는 성경에 대한 학적 연구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검증이 되지 않은 블로그를 검색해 얻은 내용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그러한 블로그에 있는 적용까지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하긴, 적용의 한계가 있으니 내용이 다를 수 없었을 것이다.
 
2.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에 대한 블로그들이 한국 포털에 유난히도 많은데, 그 어느 누구도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에 대한 이야기의 학적 출처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어느 교회의 사이트에서는 고대 문서를 연구하던 신학자에 의해 밝혀졌다고 하는데, 그 역시 신학자의 이름은커녕 그 출처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3. '티테디오스'를 "염려하지 않는"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하는데, '티테디오스'가 아니고 '아메림노스'가 "염려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염려하지 않는"과 "염려 없는"의 차이는 아래에서.) 원어를 아는 척 교인들 앞에서 인정받기 위해 멋지게 풀이를 했는데, 원어를 모르기에 '티테디오스'와 '아메림노스'의 의미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이다. 슬픈 현실은 한-두 블로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블로그들이 '티테디오스'를 "염려 없는/염려하지 않는" 단어로 그리고 '아메림노스'는 사람의 이름으로 혼동했는데, 그 블로그의 저자들이 목사이거나 그 내용의 출처는 목사들의 설교 내용이라는 것이다.
 
4.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의 출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존 맥아더 목사가 80년대에 한 설교에서인데, "Overcoming Financial Worry, Part 2" (재정적 염려를 극복하는 법, 2부)로서 마태복음 강해 설교 중 한 부분이다: https://www.gty.org/library/sermons-library/2249/overcoming-financial-worry-part-2 문제는, 존 맥아더 (John MacArthur, Jr.) 목사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고,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당시 이 예화 사용으로 인해 지적을 받은 것 같다. 맥아더 목사는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를 이렇게 적고 있다: Titedeus Amerimnos (티테데우스 아메림노스).
 
5. '티테디오스'는 라틴어로서 '티투스'(Titus)와 "신" 혹은 "하나님"을 뜻하는 '데우스' (Deus)를 합친 단어로서 사람의 이름이며, '아메림노스' (ἀμέριμνος)는 헬라어이다. 맥아더 목사는 '아메림노스'를 "염려하지 말라"라고 설명을 했는데, 문제는 '아메림노스'는 형용사인데, 형용사적인 "염려 없는"이라고 번역을 하지 않고 동사(verb)로 "염려하지 말라" 또는 한국 목사들의 "염려하지 않는"으로 번역한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아메림노스'는 형용사로서 "염려 없는"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6. 마지막으로, 이러한 예화에 초점을 맞추는 설교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이 아닌 예화를 주해한다는 있으며, 성경이 아닌 예화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는 데 있다. 결국에는 말씀에 대한 충실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설교로서 하나님 말씀 그 자체가 사람을 감화, 감동시키는데 사용되는 도구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시는 일)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루려는데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려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설교를 잘하고 싶은데, 연구를 제대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에 따르는 결산 물이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쉬운 방법을 추구하는 설교의 결과는, 보이기에는 화려하고 훌륭한 것 같으나, 그 결말은 부끄러움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