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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하신 적이 없다고? 본문
아래 링크는 호서 대학의 신학 교수라는 사람의 원어를 근거로 한 성서해석이 담긴 글인데, 너무나 황당한 원어 풀이를 계속해서 하기에 그의 링크를 걸고 그 문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사람을 어떻게 낚는단 말인가ㅡMIMOONCHURCH.COM
윗글의 원어 풀이를 정리하자면 이와 같다. 이 교수는 헬라어 ‘알리에이스 안트로폰'에서 사람을 뜻하는 ‘안트로폰’이 속격이기에 “사람의” 라고 번역해야 되기에 “어부”를 뜻하는 “알리이스”는 대격이므로 “사람들의 어부들”이라고 번역해야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이 왜 문제인지 살펴 보기로 한다.
1. 이교수는 헬라어 ἁλιεῖς 를 ‘알리이스’ 라고 적었는데, 첫 글자인 알레프 위에 있는 악센트 (accent) 부호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연한 숨표 (’) 가 아닌 거친 숨표 (‘)이다 (ἁ). 따라서 이문자를 발음할 때에는 “아” 라고 하지 않고 “하”라고 하는데, 이에 따라 ἁλιεῖς 는 ‘알리이스’가 아닌 ‘할리이스’ 혹은 ‘할리에이스’로 발음을 한다. 이것은 헬라어 첫학기, 첫 주에 배우는 것이다.
2. 마태복음 4:19 에 “사람을 낚는 어부”를 뜻하는 헬라어 문구 ‘할리이스 안쓰로폰’ (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 을 “사람들의 어부”라고 번역하는 신학자와 성서 번역가들은 이교수 외에 한사람도 없다. (*** 이재철 목사 원어 사용 문제를 다루는 글에 어느 누군가가 그를 옹호 하는 댓글을 적었는데, 그와 토론을 하면서 신현우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한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 abstract에서는 알 수 없었는데, 한글로는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재철 목사 역시 그런 설교를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에는 신 교수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파악 못하고 사용한 것이다. 참고로, 할리이스'는 현대 그리스 발음이며 ‘할리에이스 안쓰로폰’은 영어권 학계의 발음이다.)
3. 모든 속격 (genitive case) 이 다 소유적 (possessive) 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속격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무조건 다른것을 소유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속격을 “...의”로 번역해야만 하며, 속격과 연관된 명사가 그것에 속한 것으로 번역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속격 종류에 대해 무지한 주장이다.
4. 이 교수는 “낚는” 이라는 말이 원어에 없다고 하는데, 어부가 하는 일이 “낚는” 것이다. 이는 영어 “fishers of men” 에서도 나타나는데, 여기서 “낚는”을 뜻하는 “fish” 라는 동사가 없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의 어부” (혹은 낚시꾼) 로 번역을 해야한다는 황당한 주장을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데, 영어권에서는 절대로 그런식으로 이해를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헬라어 역시 마찬가지인데, “낚는” 이라는 동사가 없다고 해서 ‘할리이스 안쓰로폰’을 “사람들의 어부들” 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5. 마태복음 4:19절에서의 “사람들”을 뜻하는 ‘안쓰로폰’은 소유적 속격이 아니라 목적격 속격이다. 속격이 목적격이 되는 경우는, 속격이 변형시키는 머리 명사가 타동사를 암시하는 동사적 명사일때인데, “어부”를 뜻하는 ‘할리이스’ 가 바로 “낚는”을 뜻하는 동사 ‘할리우오’ ἁλιεύω 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직접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를 암시하는 동사적 명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리이스’는 소유격 속격이 아니라 목적격 속격이다. 그렇기에 성경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맞는 것이다.
6. 모든 해석은 물론 번역에서도 중요한 것은 문맥인데, 문맥인 마태복음 4:18-20 을 보면 (개역개정)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연관해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가 있는데 1)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2) “그들은 어부라”, 그리고 3) “그물을 버려 두고” 이다. 이 세가지 모두는 다 물고기를 “낚는” 표상으로서, 이것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더 이상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람들로 변화 시키겠다는 뜻으로 사용한 비유적 묘사이다. 따라서 영어의 “fishers of fish” (이러한 표현을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를 “물고기의 어부”라고 번역을 하지 않는 것 처럼 ‘할리이스 안쓰로폰’ 역시 “사람의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이다. 따라서 헬라어을 보지 않더라도 문맥을 보면 이교수의 주장이 문맥과 모순된 그른 주장임을 알 수 있다.
7. 이 교수는 또한 “사람을 낚는 어부”로의 번역에 대해 번역자들이 성경의 예언을 떠올렸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가정을 하면서 그 예언들은 “징계와 심판에 대한 혹독한 은유들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러한 결론의 문제는 바로 은유는 은유일뿐 정체성이 아니기에 그 둘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은유의 의미는 신구약에서 사용된 ‘누룩’과 마찬가지로 그 단어를 사용하는 자에 의해 부정적으로도 또는 긍정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 번역자들이 성경의 예언들을 근거로 “사람을 ‘낚는’” 이라고 번역했을 확률은 전혀 없다. 그 이유는 5번에서 설명을 했듯이 문법적으로 그렇게 번역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8. 결론적으로, 원어 성경에 “낚는”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고, 한글 성경은 헬라어를 제대로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원어 번역과 성서 해석은 이런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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