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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18-20 - 대사명 본문

단어풀이/히브리어/헬라어 단어 풀이

마태복음 28:18-20 - 대사명

frog prince 2015. 11. 3. 13:49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대사명’, ‘대위임령’, 또는지상명령이라고 불리우는 마태복음 28 18절에서 20절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면, “가서 주제로 하는 설교를 자주 듣게 된다. 그러한 주제의 설교의 핵심 내용은가라이며, 예수님이 주신 명령이기에 복음 전파를 위해 순종하며 가야 된다는 것이며 가히 선동적이다. 나는 이러한 설교를 여러번 들었는데, 실망스러운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들의 설교가 동영상으로 웹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그러한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어쨋건 이러한 설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19절의 명령어는가서 아니고너희는 제자를 삼아라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원어 성경이나 괜찮은 주석을 들여다 보았다면 쉽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장로교단과 침례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의 설교를 가장 많이 들어 봤고, 다음으로 감리교 그리고 순복음 교단의 설교를 들어봤는데, 주로 PCUSA KPC 속한 장로교회에서가서 명령어로 혼동하는 설교를 가장 많이 들어봤고, 다음으로는 순복음교회 그리고 감리교회이며, 장로교와 감리교가 우습게 보는 미남침례교단에 속한 교회에서는 아직까지 들어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남침례교회에 그렇게 설교를 하는 사람이 절대로 없다는 것은 아니며, ‘지상명령 제대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침례교단이 전도와 선교에 중점을 두는 만큼 구절의 명령어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쨋건, 그러한 설교를 하는 목사들 제대로 공부한 분들이 그런 설교를 하는가 라는 생각을 보았다. 어쩌면, “가서라는 단어를 주제로 삼은 설교는 성도들에게 깊은 인상과 도전을 심어주며, 자극을 있는 멋지고 힘있는 설교를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추측을 본다. 어쩌면, 단어가 주는 강렬함에 사로 잡혀 너무나 익숙해져있는 구절을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설교를 작성해서 전하는, 본문과 본문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설교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오르는 영감에 근거한 설교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서 명령어 라고 열띠우며 설교를 하는 목사님들이 있는 방면에, 어느 목사님은 구절에 대해 헬라어 원문에는 명령어 동사가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제자를 삼아삼으라이며, “가서 포함한 나머지 동사들은 모두가 분사로서 제자를 삼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맞는 해석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서 명령어가 아니라고 한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맞지 않다.

 

헬라어로제자를 삼아” (μαθητεύσατε) 단어가 아니라 단어이며, 2인칭 복수형으로서 구체적으로너희는 제자를 삼아이다. 나머지 동사에 대해서는 그가 주장하는데로 모두가 분사인것은 맞다. (분사가 복잡하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분사가 아니라가서” (πορευθέντες) aorist (aorist 는무조건 과거를 뜻하지 않는다) 분사인 방면에 나머지는 현재 분사이다. 그렇기에 종류의 분사들을 같은 것으로 없다. 현재 분사인세례/침례를 베풀고”, “가르쳐”, 그리고 현재 부정사지키게 하라가서해야될 것들로서 제자를 삼는 방법을 가르키는 것이며, “가서 목적어로 이해할 있다. 구체적으로, “가서 침례 (βαπτίζοντες) 주고, 예수님이 명하신 모든것을 그들로 지키도록 (τηρεῖν) 가르치는 (διδάσκοντες)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있다.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가서 단순히 제자를 삼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제자를 삼아 aorist  명령어로서 aorist 분사인가서 따르는데, 이것은가서제자를 삼아 직접 연관된 것으로서 행해야 되는 것이며 명령어적 힘이 실려 있다고 있다. (πορευθέντες aorist 명령어가 따르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모든 구절들을 살펴보면가서 명령어적 힘이 실려있는 것을 있다.) 만약에가서 제자를 삼기위한 방법이었다면, aorist 분사가 아닌 현재분사를 사용했을 것이다. 따라서가서제자를 삼아라는 aorist 명령어에 힘을 얻은 명령어적 분사로 있다. 그렇기에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 (“너희는 제자를 삼아” + “가서”) 분리해서 없고 하나의 명령으로 봐야 되며 (‘가서 필수적인 것이기에), 단어가 사용된 모든 사례를 보건데제자를 삼아라는 단어에 긴급성 (immediacy) 강조성 (emphasis) 더해 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오해 마시라. 이것은가서 결론적으로 명령어라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아 의존해서 명령어적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며 혹은제자를 삼아 변형 (modify) 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가서자체는 명령어가 없으며, 또한 제자를 삼기 위한 단순한 방법으로 없다.

 

이처럼 성경에서 가장 익숙해 있거나 쉽게 보이는 구절일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데, 이유는 바로 가장 쉽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생각과 달리 어려운 부분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적합한 일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처럼 가장 어려운 부분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그와 달리 가장 단순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멜로디를 얼마나 가장 표현해 있냐 것이다. 단순한 멜로디를 가장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멜로디의 모든것 작곡가 / (미명의 작곡가 있음) 멜로디 자체와 멜로디의 역사적 컨텍스트 모든것을 제대로 연구하고, 지식들을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특별히 모두가 익숙해져 있는 멜로디일 경우에 더욱 그러하며, 이처럼 단순한 멜로디에서 연주가의 실력이 빛을 발하거나 그의 한계를 드러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가장 익숙해져 있거나 단순하거나 쉽다고 생각되는 구절일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익숙해져 있거나 쉽기에 구절들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게되고, 따라서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치거나 잘못 이해할 때가 있기 때문이며,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절에서 설교자의 진정한 실력이 빛을 내거나 그의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쨋건, 빛을 발하건 못하건, 본문에 대한 연구만큼은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하는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