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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신앙 에세이

설교에서의 실수

frog prince 2015. 8. 3. 10:54

내가 올린 원어풀이에 대한 문제들을 지적한 글들을 보며 목회자도 사람인데 실수를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이다. 목회자 뿐만이 아니라 신학자들도 실수를 한다. 단어 풀이에 대한 실수를 하기도 하고 해석 선택에 있어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다만 실수가 어떠한 실수이냐? 라는 것이다. 가끔 하는 실수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실수인가? 확실치 않은 해석을 확실한 또는 절대적인 진리로 가르치는가 아닌가? 선동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해를 위해서인가? 이다.

 

주위에는 목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방지일 목사님과 말씀 연구와 설교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해석의 선택에 있어서 고민을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많은 해석의 선택이 있다는 것도 너무나 알고 있다. 많은 선택중에서도 보수 혹은 복음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많은 해석들이 있기에 하나의 해석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목회자들에게 가끔식 또는 자주 어려움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목회자들의 가끔식의 빗나간 선택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빗나간 선택이나 잘못된 단어 풀이가 설교마다 반복된다면 그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택한 해석이 정석이 아닐 경우에 다른 해석들에 대해 먼저 설명을 짧게라도 하고, 자신이 이런 해석과 단어의 의미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말하고, 자신의 선택이 절대적이 아니라고 한다거나 정확하지 않을 있는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매우 정직하며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해석과 잘못된 단어풀이를 절대적 진리인듯 선포하는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가끔식 발생하는 잘못된 해석의 선택과 잘못된 단어풀이가 나름대로의 솔직한 어떤 근거에 의한것이라면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새로운것을 전해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래서 말씀의 깊이가 있는 설교자라고 인정을 받으려거나 혹은 자신이 이미 짜놓은 설교 구조에 짜맞추기 위해서라거나 아멘을 끌어내기 위한 선동을 위한것 이라면 그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가끔식의 빗나간 선택과 단어풀이가 최선을 다한 연구결과 라면 그것은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인성이나 동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며 충분히 그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연구결과가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의 검증 안된 설교내용과 해석을 가져와 인용하는 것이라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일이 너무 바뻐 두번 인터넷의 블로그 내용을 검증하지 않고 사용하는것은 그냥 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목사는 먼저 설교자이며 제대로 준비하고 전한 설교는 성도들을 돌보는 중요한 행위 하나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설교를 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한다거나 감명을 준다거나 선동을 해서 성도들에게 아멘을 받아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성도들에게 우리 목사님 설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런 칭송을 듣는다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잘한다고 칭송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자신의 입에 맞는 설교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그렇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은 예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칭송이 합당한 칭송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양심적으로, 신실하게, 열심을 다해, 그리고 얼마나 솔직하고 충실되게 설교를 준비했는가 이다. 이것은 바로 성서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정직하게 모든것을 다해 이해하려고 했는가 대한 질문이다. 많은 경우에 목회자들은 어떤 기발난 생각이 오르면 그것에 기반해서 머릿속으로 멋진 설교 한편을 작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설교가 머릿속에서 또는 원고로 완성이 후에야 거기에 맞는 성서본문을 찾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성경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는 행위이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에 맞춰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해 놓고는 그것에 맞는 구절을 찾어 성서본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성서본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뒤로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행위이다. 물론 너무 바쁘다 보니 어쩔 없어 두번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그러는 것은 하나님도 애교로 주실지 모르겠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주인이 명하시는 것을 전하며 가르치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설교의 모든것을 정해진 본문에서 시작해서 본문으로 끝내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본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중요한것은 바로 정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정직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발난 생각들을 성서본문에 비춰서 아니다 라고 생각될 때에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본문에 맞춰 넣는 것은 정직한 행위이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신학이 본문과 맞지 않을 자신의 신학과 지식을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것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위험한 발언인가? 내말은 억지로 짜맞추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지 신학적으로 틀린것을 전하라는 것이 아니며, 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본문을 제대로 분석을 못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며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학이 부분에 있어서 틀렸거나 빈약한 것일 있다. 그리고 난해되는 부분일 자신의 해석이 해석역사에서 교회가 꾸준하게 이해해온 것과 다르다면 어쩌면 자신의 해석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괭장히 높기에 교회가 꾸준히 이해한 것만 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본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을 없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본문보다 앞서 있는 것과 본문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스며드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성서본문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지식을 동원하는 것은 당연한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의 목적이 본문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지 성서를 목사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설교를 전하기 위해 성서본문의 내용 부분이나 핵심을 본문이 말하는것 이상으로 부풀려 전하는 역시 하나님의 기쁨이 아닌 인간의 기쁨을 위한 우상숭배의 행위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우상숭배라는 것이 너무 심한 표현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람의 성격이 설교의 성격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격에 따른 충동적인 성서해석도 성서본문에 굴복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학교에서 배울것은 배웠지만 그것들을 설교준비에 어떻게 접목시켜야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 하다. 그러면 다시 배우는 자세로 아는 사람들에게 묻거나 책을 읽으며 다시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배움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다만 지속되는 실수 끝에는 부끄러움이 따르게 된다.

 

나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는 선동을 위한 설교를 싫어한다. 지속적인 잘못된 단어풀이와 확실치 않은 해석을 정석으로 가장하거나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해석 그리고 선동을 위한 설교를 싫어한다. 설교자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유혹들을 멀리하고 성서본문 앞에서 정직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신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연구문들을 쓰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것이다. 바쁜 목회현장에서도 당시 쏟은 노력의 사분의 이라도 성서본문에 대한 연구에 투자를 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연구결과를 검토한다면 정말 훌륭한 설교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미주한인교회는 미국의 많은 백인교회처럼 목회자들이 성경말씀을 연구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하고 그것에 따른 필요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머리가 아퍼 생각을 집중못해 어불성설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