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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요한복음 1장 1절 - 성경번역을 신학적으로 해야하는가 아니면 문법적으로 해야하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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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요한복음 1장 1절 - 성경번역을 신학적으로 해야하는가 아니면 문법적으로 해야하는가?

frog prince 2015. 7. 21. 05:06

폐북 포럼에서 장로교단에서 목회하던(?) 어느분(이후 00)과 딸리는 한국어로 논의를 했다. 그분은 제네바 성경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되었고, 그 성경의 marginal notes 에 감동받은 분이다. 그 이유는 제네바 성경이 칼빈의 영향을 받은 성경이었기에 마진에 있는 노트를 통해 칼빈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알게 된다는 기쁨때문이었다.

 

제네바 성경은 1557년도에 신약이 완성되었고, 1560년도에 신구약 전체가 완성되었다. 제네바 성경 이전에 많은 영어 번역본들이 있었다. 최초의 영어 번역본은 600년도 즈음에 성경의 한부분을 번역한것이었고 그 후에도 부분적으로 번역된 여러 성경들이 있었으나, 신구약 전체를 번역한것은 1382 년 즈음에 라틴불가타를 번역한 위클리프 성경이 최초였다. 그 이후에는 독일어 성경을 참고하고 신약에서는 특히 이래스므스의 헬라어 텍스트를 바탕으로 번역한, 킹제임스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틴데일 성경; 더 커벌대일 성경; 매튜의 성경; 더 그레이트 성경; 그리고 최초로 히브리어 사본과 헬라어 사본을 번역했고 따라서 이전의 어떤 영어 성경보다 가장 정확하게 번역이 된 제네바 성경이 그 뒤를 이었다. 그 후에는 더 그레이트 성경 을 바탕으로 번역한 더 비숍스 성경, 그리고 더 뤠임-두에이 성경 이 있었고, 그 뒤를 따른 킹제임스역은 제네바 성경보다 열등한 비숍스 성경을 바탕으로 번역되었다. 위클리프에서 킹제임스까지— 그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번역된 제네바 성경은 marginal notes 의 내용이 칼빈의 공격적인 신학을 반영했기에 영국교회는 그 성경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켰고, 따라서 널리 사용되었고 인기가 높았던 제네바 성경을 대체하기 위해 킹제임스 성경이 탄생했던 것이다.

 

페북에서의 논점은 바로 요1:1에 대한 제네바 성경의 마진에 있는 노트였다. 영어로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에서 동사 was 에 대한 노트에는 "had his being"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그것이 정확지 않고 혼동을 가져다 주는 표현이라고 했고, 00 이라는 분은 철학적 사유를 논하며 태초는 곧 창조를 의미하기에 그 이전에 로고스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had 를 썻다는 것이다 라며 제네바 성경을 변호했다. 나는 was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imperfect active indicative 곧 미완료 동사이며, 그것은 과거진행형 (past-time progressive) 이기에 철학적으로나 어떤면에서도 적절하지 못하며 특히 현대 철학적 사유로 보는 것은 잘못된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헬라어에서의 미완료형 동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영어의 동사와 비교를 했다 –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는 로고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washad 로 이해해야 되며 따라서 "in the beginning" 은 태초가 아닌 "창조"로 봐야된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washad로 이해하는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나는 논점의 헬라어와 칼빈의 주석이 그의 주장을 뒷바침 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그는 내가 자신의 전체적인 주장을 보지 않고 자꾸 부분적으로 공격한다고 했다.  나는 이미 내려진 결론을 가지고 성서 텍스트를 이해하려는것은 exegesis 가 아닌 isegesis 라고 했고, 결국에 그는 신학적 또는 철학적 사유도 성서텍스트가 허용하는 한에서만 할 수 있고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체 논의를 끝냈다.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신학적 선입견 곧 이미 정해진 신학적 이해와 결론에 의해 원문을 번역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분은 니케아 신조에 의한 이해를 가지고 요 1:1을 번역이 아닌 해석을 하고 있었고 그 해석적인 제네바 성경의 이해를 변호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많은 장로교단의 목사들이 그런 것처럼, 그 또한 자신의 그러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과연 신학적 결론을 가지고 성서 원문을 번역 곧 해석하는것이 옳은것인가? 요 1:1 원문을 보면, ‘태초’는 창조 그 자체가 아니며 또한 창조라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것이 창조되기 이전인 것을 가르키며, 또한 was 로 번역된 미완료 동사를, 위에서 이미 언급한것 처럼, 과거 완료인 had 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면 왜 그는 신학적인 해석을 변호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신학적 오류를 방지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제네바 성경은 사벨리언주의와 아리안주의, 그리고 칼빈에 의해 화형당한 세르베투스 등의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 성경을 신학적으로 번역함으로서 신학적 오류의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했던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신학적 번역은 교회공회에서 결정된 신학적 사안에 근거한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질문은 바로, 그 신학적 결론이 어디서 나오는가? 이며, 그것에 대한 답은 바로 성서 텍스트 이다. 성서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모든것이 출발되며 그 후에야 신학을 논할 수 있는것이다. 그러면, 성서원문을 신학이 아닌 문법적으로 정직하게 번역하는것이 우선 순위이며, 신학적 결론과 문법적 이해와 상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그러할 경우에는 문법적 이해에 따른 번역에 손을 들어 주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법적 이해는 문맥에 대한 중요성을 배제 하지 않는것이며, 단어의 사용 (usage) 을 중요시 하는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며 신학적으로 번역된 성경을 변호하는 많은 분들이있다.

 

제네바와 킹제임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신학적으로 번역한 그 대표적인 예다. 요 3:16 을 보면 μονογενής 를 “only begotten” 으로 번역하고 있다. 특히 킹제임스 성경만 유일하게 보존된 하나니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이 단어를 “one and only”, “only” 또는 “unique” 으로로 번역한 성경들을 오히려 거짓되며 사탄에게 미혹된 자들이 번역했다고 한다. 그들은 킹제임스를 번역한 사람들이 교회공회의 신조를 반영하기 위해 그렇게 번역한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몰상식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는 아래와 같다.

 

헬라어: καὶ εἰς ἕνα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ὸ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τὸν Μονογενῆ, τὸν ἐκ τοῦ Πατρὸς γεννηθέντα πρὸ πάντων τῶν αἰώνων,

영어번역: And in the one Lord Jesus Christ, the One and Only (or “Unique” (Μονογενῆ)) Son of God, begotten (γεννηθέντα) from the Father before all ages.

 

라틴어: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cum, de Patre natum ante omnia saecula

영어번역: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only (unicum) Son of God, begotten (natum) of the Father before all ages. 

 

위에 헬라어를 보면, 제네바 와 킹제임스 등의 역본들이 요3:16 을 begotten 으로 번역한 대문자로 시작된Μονογενῆγεννηθέντα 라는 두 단어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또한 라틴어를 보면 only 로 번역된 단어가 unicum 이다. Unicumonly, single, sole, unique 으로 번역되고 있다. Natumto be born, begin life, be produced, proceed, be begotten 으로 번역이 된다. 따라서, 니케아 신조에서 사용된 헬라 단어와 라틴 단어들을 함께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μονογενῆ (one and only, unique) = unicum (only, single, sole, unique) = one and only, only, unique
  • γεννηθέντα (begotten) = natum (to be born, begin life, be produced, proceed, be begotten) = begotten

보이는 데로, 니케아 신조의 헬라어 μονογενῆbegotten 이 아닌 one and only 혹은unique 이라는 뜻의 unicum 이라는 라틴어로 기록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γεννηθένταbegotten 으로 번역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3:16 절에서 μονογενήςonly begotten 으로 번역한 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며, 다만 니케아 신조의 핵심 내용을 반영한 곧μονογενῆγεννηθέντα 를 합한 신학적 번역이다.

 

이제는 LXX 와 헬라어 신약 성서에서의 μονογενής 에 대한 사용을 살펴 보기로 한다.

 

LXX (70인 역) 외경포함

 

LXX 에 있어서의 μονογενής 사용은 다음과 같다.

  • Jdg 11:34: "and she was his only child; beside her he had neither son nor daughter." (KJV)
  • PsSol 18:4: “Your discipline for us as for a firstborn son, an only child…” (KJV)
  • Tob 3:15: “I am the only daughter of my father, neither hath he any child to be his heir, neither any near kinsman, nor any son of his alive, to whom I may keep myself for a wife.” (KJV)
  • Tob 6:11: "For to thee doth the right of her appertain, seeing thou only art of her kindred." (KJV)
  • Tob 8:17: "Thou art to be praised because thou hast had mercy of two that were the only begotten children of their fathers.” (KJV)
  • Wsd 7:22: “for in her is an understanding spirit holy, one only…” (KJV)

위에서 볼 수 있는 데로, KJV with Apocrypha 에서도 토빗 8:17 을 제외한 나머지는 μονογενής 를 꾸준히 only 로 번역하고 있다. 토빗 8:17 에서는 한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가 아닌 두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가르키며, 한 아이와 한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only begotten 이 아닌 only 로 번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

 

신약성경에의 μονογενής 의 사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Lk 7:12: “…the only son of his mother, and she was a widow...” (KJV); “…who was the only begotten son of his mother, which was a widow…” (GB)
  • Lk 8:42: “For he had one only daughter, about twelve years of age, and she lay a dying.” (KJV)
  • Lk 9:38: “…Master, I beseech thee, look upon my son: for he is mine only child.” (KJV); “Master, I beseech thee, look upon my son: for he is mine only child.” (GB)
  • Heb 11:17: “By faith Abraham, when he was tried, offered up Isaac: and he that had received the promises offered up his only begotten son.” (KJV); “By faith Abraham offered up Isaac, when he was tried, and he that had received promises, offered his only begotten son.” (GB) 

위에서 보이는 데로, 킹제임스 유일론의 주장과는 달리 킹제임스 역에서 only begotten 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사용된것이 아니라 인간인 이삭에게도 사용된것을 볼 수 있고, 제네바 성경에서도 똑같이 번역한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 μονογενής 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 only 또는 one only 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μονογενής  를 꾸준하게 똑같이 번역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따라서 LXX 와 GNT (헬라어 신약성경) 에서 주로 번역되는것은 only begotten 이 아닌 only 이며, 헬라어 고대 문서들을 보면 only 가 더 정확한 표현인것을 알 수 있다.  설령 μονογενήςμόνος + γένος 의 복합어 로 볼 수 있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단어들의 발전 과정을 볼때 그렇게 볼 수 없지만), 결국에는 그 단어가 사용된 사례를 볼때 only begotten 이 아닌 one and only 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태어나다” 또는 “누구에게서 나오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begotten 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바로 위에서 살펴본 니케아 신조에서 볼 수 있듯이 μονογενής 가 아닌 γεννάω 이다.  (γεννάω 에 대해서는 귀찮아서 생략한다.) 따라서 μονογενής   only 로 번역한 틴데일 성경을 제외한 모든 영어역본들, 곧 only begotten 으로 번역한 킹제임스, 제네바, 위클리프, 펄비 성경들이 비정확한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 신학적으로 번역 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자신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번역의 위험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신학에 맞춰서 번역을 해야 한다면 다른 신학을 따르는 자들도 성경을 자신들의 신학에 맞게 번역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게 되고, 그럴때 그것에 대해 항의 할 수 있는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여호와 증인들의 성경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신세계 성경에서 자신들의 신학에 맞게 요한복음을 멋대로 번역한다. 원어 문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믿고있는 신학의 틀에 짜 맞추어 번역을 함으로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한다. 여기에 대해 신학적인 번역을 고집하고 오히려 문법과 사용에 맞게 번역한 성경을 이단시 하고 사탄의 도구라고 하는 분들은 도데체 무엇으로 대응할 것인가? 라고 묻고 싶다.

 

신학은 성서 텍스트에서 나오는것이다. 따라서, 순수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성경을 이해하고, 성서에 담긴 신학을 선입견 없이 알려고 한다면, 성서번역에 있어서 절대로 신학적인 편견과 그 어느것을 반영해서 않된다. 다만, 문법과 원어 사용,  문맥에 의한 번역,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의 언어에 맞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새로 나온 NRSV, NIV, ESV, Step, 등이 그러한 사고를 반영한다. 신학적 철학적 사상들은 오히려 비정확한 번역을 하게 하는 원인중 하나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