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단어풀이/영어단어 풀이 (13)
Jesus4Today!
황당한 부활절 설교를 들었다. 마태복음28장 1-7절에관한 설교였는데, 그 설교는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 ‘이스터’(Easter)라는 단어를 근거로 한 설교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활절을 영어로 이스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부활절을 이스터 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저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장 좋습니다. 이스터라는 단어에는 동쪽을 뜻하는 이스트(east)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을 뜻하는 이.알.(er)이 붙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활절은 동쪽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관련되는 날이라는 말이죠. 왜 동쪽을 바라봅니까? 동쪽에 무엇이 뜨기 때문에? 해가 뜨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습니다…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동쪽을 바라..
주일 아침 일부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생방송으로 타교회의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자는 미국 이민 1.5세인데 (십대에 미국에 이민), 그는 영어 문법에 지소사(diminutive)라는 것이 있는데, '크리스찬' 곧 'Christian'은 "그리스도"를 뜻하는 ‘Christ’와 “작은”을 뜻하는 ‘ian’의 합성어로서, 크리스찬들은 “작은 그리스도”(little christ)이다 라며, 그에 따르는 자의적 해석과 적용으로 “은혜”로운 설교를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크리스찬’은 헬라어 ‘크리스티아노스’가 어원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지소사라고 하는 설명 한-둘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주장이 왜 문제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영어 단어 ‘크리스찬’(Christian)은 ‘그리스도’의 지소사가..
늘 입만 열면 황당하거나 굳이 사용할 필요 없는 영어단어와 원어 단어풀이를 하는,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어느 젊은 목회자의 설교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듣게 되었다. 그 설교가 베드로의 서신 강해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사랑하는 자여”를 언급하고서는, 그 단어는 영어로 ‘비러브드’(beloved)로서, 과거형태이며, 따라서 “사랑하는 자여”가 아니라 “사랑받은 자여”라면서, 성도들에게 “여러분들은 사랑받은 자입니다”라고 선포했다. 이것에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러한 단어풀이를 늘 하면서, 자신은 성경 번역가 보다 실력있는 목사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 것인지, 혹은 강해설교를 기존 번역을 깔아뭉개 고 새로운 단어 풀이를 제시하는 것으로 혼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지..
며칠 전 유튜브로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자는 누가복음 8:24에서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신 사건을 언급하면서, “잔잔하게”라는 말은 영어로 슬릭 (slick)이며 그것은 호수가 거울처럼 깨끗한 상태, 완전히 고요한 상태라고 설명을 했다. 과연 그러한가? 개역개정에서 “잔잔하[다]”로 번역이 된 헬라어 ‘갈리니’/‘갈레네’(γαλήνη)는 영어로 “calm”으로 번역이 되는데, 거의 모든 영어번역본들이 ‘갈리니’를 헬라어 어휘사전에서 처럼 “calm”로 번역을 하고 있으며, 어휘사전에서나 영어번역본에서 “slick”으로 번역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황당하고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영어 번역본인 The Passion Translation에서는 ‘갈리니’를 “as smooth as glass”..
어느 신학자의 블로그를 우연히 읽게되었다. 여러 글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낀것은 그의 신선하게 성경을 보는 눈이 자주 너무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그 한 예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요한복음 13:30 에 기록된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에 대해 원어로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 (παρέδωκεν τὸ πνεῦμα) 인데, 대다수의 역본들이 이것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포기한것 즈음으로 표현했다면서 그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영어번역을 언급하고 있는데, ASV, KJV, NRSV, NIV, NLT 는 ‘파라토켄 토 프뉴마’를 “gave up his spirit” 이라고 번역을 했다면서, 그것은 “영혼을 포기 했다”로 이해를 하고서는 ‘파라토켄’은 “포기” 가 아니라 “넘겨주다”에 가깝다고..
한 2년전인가, 처음으로 “열정”에 대한 황당한 단어풀이를 설교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본문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약에서 “열심”을 뜻하는 단어로 시작한것으로 봐서 문맥상 로마서 10:2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 설교자는 “열심”은 영어로 ‘지얼’ (zeal) 인데, 우리도 “열정”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그 열정은 영어로 ‘엔투지애즘’ (enthusiasm) 이며, 그 단어의 어원은 “하나님 안에”를 뜻하는 헬라어 ‘엔’ (ἐν) 과 “하나님” 혹은 “신”을 뜻하는 ‘테오스’ (θεός) 에서 유래한것이라면서, 이러한 열정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시는것 혹은 우리가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어느 미주 한인교회에서 목회하는 어느 젊은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설교 내용은 괭장히 복음적이었는데 영어풀이를 하면서 무식한 면을 드러냈다. 그는 성경에서 ‘구속’은 영어로 ‘redemption’ 이라며, 그 영어 단어를 어원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영어 단어의 의미를 어원적으로 풀어 구속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겠다는 생각에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redemption 의 어원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re’ 는 무엇인가를 없앤다는 것 곧 remove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dempt’ 는 debt 를 뜻하는 것으로서 빚에서 파생한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빚을 없애는 것이 구속이라고 한다. 이러한 엉터리 단어풀이에 성도들은 아멘으로 받아들였다. 미안하지만 정말 골때리는 단..
잠언 29장 18절을 개역개정으로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영어 역본들과 비교하면서 특히 킹제임스역에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 라는 번역을 선택해서 '비전' (vision) 이 없으면 망하기에 꿈을 가져야 산다 라는 설교들을 하고 있다. 다른 역본들에는 “예언적인 환상/꿈” (prophetic vision), “계시” (revelation), “예언” (prophecy) 으로 되어 있고 다른 한글역본에는 “계시”로 되어있는데 왜 하필이면 킹제임스역의 “비전” (vision)을 선택해..
히스토리는 히즈 (His) 스토리 (Story) 곧 ‘그의 [하나님] 이야기’ 라는 설교를 거의 20년전에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에 잠시 담임을 했고 신학교수로 있던 어느 목사님의 설교 테잎을 통해 한국 목사님의 그러한 해석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분은 그것이 아주 새롭고 의미 깊은 것처럼 설명했다. 지금 한국과 미국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그러한 설명을 하는 설교와 글들이 즐비하고 이러한 풀이를 하는 설교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풀이는 혹시 존 스토트의 에베소서 강해에서 부터 시작이 된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더 오래전 부터 유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풀이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영어 단어는 어원을 추적하면서 이 단어의 어원은 추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
설교를 듣다보면 많은 목회자들이 푸는 영어 단어 중 하나가 ‘컴패션’ (compassion) 이다. 이들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라고 하신 단어는 영어로 ‘컴패션’ 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함께하다”를 뜻하는 라틴어의 ‘컴’(com) 과 ‘고통’을 뜻하는 ‘패션’ (passion) 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라며, 예수님은 우리를 단지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과 함께 하신다” 또는 “함께 아파 하신다” 라고 설명하는데, 이러한 풀이를 하는 설교와 간증과 글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도데체 어디서 이런 풀이를 줏어듣고 사용하는지 궁금하며 또 왜 이렇게 영어 단어의 의미를 추적하려고 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불쌍히 여기사”로 번역된 단어의 의미를 연구..
어떤 교회에는 찬양을 인도하는 음악/예배 목사님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이 즐겨 풀이를 하는 단어가 ‘예배’/’경배’를 뜻하는 영어 ‘워쉽’/‘워십’ (worship) 이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들도 설교를 하며 ‘예배’/’경배’라는 단어를 영어로 풀이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영어 ‘워십’은 ‘워스십’ (worth-ship) 에서 유래했다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 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해석이 매우 불편하다. 우선, 왜 모두가 다 이해하는 좋은 한국어를 놓고 일부러 영어 단어를 들먹이면서 그 단어의 의미를 풀려고 하는 것인가? 한국어 보다 영어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더 많이 숨겨져 있거나 내포되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영어 단어들이 ..
마태복음 28장 18-20 절의 원어 문법을 보다가, 호기심에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성경이라고 가르치는 피터 럭크만파의 정동수 목사가 혹시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교했나 찾아보다가 그의 마태복음 강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의 내용은 그저 그러했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가 사도행전 1장 3절에 있어 개역성경의 번역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눈에 뛰었다. 그것은 영어인 'infallible' 에 대한 번역이다. 정 목사는 개역 성경에 '확실한' 이라는 번역이 'infallible' 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정 목사는 ‘infallible’ 를 '절대 확신' 이라고 그의 킹제임스 흠정역에 번역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정목사는 사전적 의미를 따라 그렇게 번역한것 같..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바로 ‘파워’ (power) 이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파워'라는단어에 익숙해 있을것이다. 또한 전 아무개 목사의 '파워'로 시작하는주제의 강해서가 한동안 인기가 있었다. '파워' (power) 는 바로 힘 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이다. 왜 이 단어가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영어에 익숙해 있는, 미국에서 목회하는한인 목회자들이 한국어로설교를 하면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것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그 단어를 자주 쓰시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신기한 현상이다. 어쩌면 힘, 능력, 권능 이라는 한국어 보다 ‘파워’가 더욱 강렬하게느껴져서인가? ‘파워’ 하면 때려 부수는 힘을 떠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