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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3절 - 정동수 목사와 infallible 에 대한 개정개역의 번역 문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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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3절 - 정동수 목사와 infallible 에 대한 개정개역의 번역 문제?

frog prince 2015. 6. 21. 05:31

마태복음 28장 18-20 절의 원어 문법을 보다가, 호기심에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성경이라고 가르치는 피터 럭크만파의 정동수 목사가 혹시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교했나 찾아보다가 그의 마태복음 강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의 내용은 그저 그러했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가 사도행전 1장 3절에 있어 개역성경의 번역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눈에 뛰었다. 그것은 영어인 'infallible' 에 대한 번역이다.
 
정 목사는 개역 성경에 '확실한' 이라는 번역이 'infallible' 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정 목사는 ‘infallible’ 를 '절대 확신' 이라고 그의 킹제임스 흠정역에 번역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정목사는 사전적 의미를 따라 그렇게 번역한것 같다. 그러나 개역성경에 '절대' 가 빠졌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 삼고, 따라서 개역성경이 부패한 번역이라고 암시하는 것은 정 목사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1) 영어인 'infallible' 라는 단어는 형용사로서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것은 고대라틴의 '아니다' 또는 '반대되는' 이라는 부정적인 뜻의 ‘in’ 과 라틴의 '틀리다' 또는 '속이다' 라는 뜻의 ‘fallere’ 의 복합어로서 정확하게 '틀릴 수 없는' 혹은 '속일 수 없는' 을 뜻한다. 따라서 긍정적인 '확실한’ 이나 정 목사의 '절대 확신' 이라는 번역보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번역이 더 정확한것이 아닐까? 그러나 번역이라는 것이 항상 문자의 의미를 그대로 모방해 따르는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그 뜻이 꼭 변형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킹제임스역도 번역으로서 이러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킹제임스역의 문제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번역에만 문제가 있다고 하는것은 이중잦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2) 한영사전을 보면 ‘infallible’를 “절대…”라고 번역할 때에는 그 단어가 명사적 형용사 (substantival adjective) 로 사용될 때이다. 그러나 킹제임스역에는 ‘infallible’ 가 명사적 형용사가 아닌 단순한 형용사로서 명사인 ‘증거들’ (proofs) 을 변형/설명 (modify/describe)하고 있다. 오히려 단순한 형용사로서는 ‘절대’가 빠진 ‘확실한’ 이라고 번역을 한다. 따라서 개역성경의 번역이 사전의 의미를 정확히 따른 바른 번역이다 -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를 번역했다고 가정한다면. 
 
3) 개역성경은 킹제임스의 영어 성경을 번역하거나 혹은 그것을 토대로 번역한 성경이 아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절대 확실’(infallible)을 드러내지 못함”이라고 한데에서 드러난다. 정목사는 자신이 킹제임스 흠정역을 킹제임스역을 번역해서 만들었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킹제임스역의 ‘infallible’를 잘못 번역했다고 생각을 하고 따라서 개역성경을 킹제임스영어판과 자신의 흠정역과 비교하면서 문제삼는것은 그의 생각의 짧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4) 원어에는 킹제임스역이 'infallible proofs' 라고 번역한것 처럼 두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명사인 τεκμηρίοις (테크미리오이스) 로서 복수형의 한 단어이며, 그 뜻은 ‘증거들’ (proofs) 혹은 ‘확실한 증거들’ (certain proofs) 또는 ‘표적들’ (signs) 혹은 ‘확실한 표적들’ (sure signs) 이다. 이것을 킹제임스역은 'infallible proofs' 로 번역한것이다. 그러나 ‘τεκμηρίοις’ 또한 ‘infallible’ 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개역성경의 '확실한…증거'는 정확한 번역이다. 오히려 '절대'를 더한 정목사의 번역이야 말로 원어를 제대로 이해못한 번역인것다. (참고로, 한글개역 성경의 바탕인 영문개역성경에는 '확실한...증거'를 원문에 충실하게 'proofs' 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기에, 킹제임스역에 비취어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정동수 목사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없는 무의미한 주장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강조하자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한 단어에 의해 서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어가 아닌 문맥에 의해 단어의 의미나 문장의 의미가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것에 의해 단어에도 없는 의미를 구태여 부여하거나 성경의 가르침을 저자가 의미하는것 이상으로 확실케 하려고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성경의 권위와 성경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한다. 자신의 믿음을 성립시키기 위해 성경을 교리적으로 멋대로 번역하는것은 여호와 증인들이 자신들의 교리에 짜 맞춰 성경을 번역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이다. 킹제임스역은 아름답고 훌륭한 번역판이지만, 교리에 짜 맞춘 번역을 필요에 따라 했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