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4Today!
모태신앙과 구원 본문
수십년 전 이었다. 어느 신앙 좋은 대학원생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 중 한 학생은 자신은 어릴때 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교회를 다녔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야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이다. 좀 이상해서 물어보니 어느 누군가가 자신에게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봤고 그 질문에 자신이 없어 대답을 못했었다고 한다. 그후에 그 질문을 던진 분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후에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 전에는 예수를 믿은것이 아니었냐고. 그랬더니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구원의 확신을 갖기 전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할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감동하시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냐고 또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의지했고 사랑했냐고. 그의 대답은 그렇다 이었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원래 구원을 받었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지식이 없었던것 뿐이라고. 따라서 구원을 받은것과 확신과 혼동하지 말라고.
이미 한국과 미국교계에서 이단으로 판정받은 구원파들은 항상 그렇지만, 미국 남침례교단에서도 한동안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한 영적생일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미국목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폼잡으며 그렇게 가르치던 한인목사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 영적생일을 모르면 구원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그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후에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적생일”을 쉽게 기억한다. 특히 나이들어 예수님을 영접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중 고등학교때에 예수님을 체험하고, 믿고, 세례/침례를 받은 사람들도 적어도 세례/침례일은 기억을 할것이다. 그러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소위 “모태신앙”인들은 다르다.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진정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으며 구원을 받지 못한것일까?
잠시 가지를 치기로 한다. 모태신앙인에 대해 자신도 모태신앙인 어느 목사는 “모태 신앙인은 없어도 못해 신앙인은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모태신앙”이라는 것은 그들이 어머니의 태속에서 부터 구원을 받은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태아교육의 근거가 밝혀주듯 어머니의 신앙생활 곧 기도와 말씀읽기와 묵상과 성경공부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함에 따라 오는 평화, 이러한 것들이 태속에 있는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며 모태에서 부터 이러한 하나님 신앙에 대한 영향을 받고 태에서 성장 했을 뿐만 아니라 태 밖에 나와서도 신앙적인 환경속에서 하나님 경외함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것이다. 따라서, 그 모태신앙인의 신앙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예수를 믿었다는 것 보다는 어머니의 태에서 부터 곧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을 때부터 받은 영향과 성장한 환경속에서 자연스럽게 믿어져 왔다는 것이기에 그 신앙을 모태신앙 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모태신앙이라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자신들의 힘으로 세워진 것이 아나라 다른 이들의 신앙에 의해 세워진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앙은 진공상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자신 스스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모태신앙이던 아니던 모든사람들의 신앙은 그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고 가르친 사람들의 신앙에 근거해서 생기는 것이다. 물론 믿는 마음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신앙 곧 그들의 가르침과 기도를 토대로 믿는 마음을 주신다. 그것은 사람대 사람과의 신앙이기도 하지만, 성경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성서 저자들이 나타내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근거한 신앙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의 행위는 나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서 있던 신앙의 조상들과 선배들이 다져놓은 신앙의 터를 밟고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앙의 가정에 태어나 꾸준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자신을 모태신앙인으로 부르는 것은 그러한 신앙의 토대를 인정하는것이다. 그렇기에 모태신앙이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부정할 필요나 부정할 이유가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서 후에 예수를 믿은 분들은 많은 경우에 갑작스런 체험을 하기도 한다. 죄 사하심에 대한 감격과 기쁨,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실감나는 변화되어 가는 삶 등 여러가지 새로운 체험들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예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날짜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태신앙인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신앙의 세계에서 자랐고 그 세계를 떠난적이 없기에 그 세계가 너무나 익숙하며 다른 어느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늘 크게 임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은혜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기억에 남는 감동이 그렇게 많지 않다. 세상을 잘모르기에 비교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방황 해보지 않은 모태신앙인에 한해서이다.) 이것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이라는 환경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 다 보는 것이 같다. 그러나 처음 보느냐 익숙해져 있느냐에 따라 느낌의 차이가 극과 극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태 신앙인들과 후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과의 차이이다. 그렇기에 모태신앙인들에게 급격한 변화의 체험이 적거나 없다는 것은 후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체험 보다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에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은혜는 같으나 그 느낌의 차이가 다른 것이다. 또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선과 악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하나님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굳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다 라는 체험이 없지만 세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이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를 믿고 의지를 하며, 그를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우러나는 찬양을 하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뜻하며,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그 어떤것 보다 우선시 하는것을 뜻한다.) 이러한 것은 어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 혹은 결심이나 결단에 의한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산다는 것에는 선택과 결단이라는것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예배 행위는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예배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가 모태 신앙인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따라서 구원을 받았다는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믿지 않는 환경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짧은 신앙적 체험이 전부 다 라고 확신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신앙을 판단하려고 한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앙을 받아들인 후 자신의 신앙체험을 기준으로 모든 이스라엘의 신앙을 판단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말하자는 것은 모태신앙인의 우수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비 모태신앙인들이 자신들만의 신앙적 체험을 근거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모태신앙을 판단하려는 그들의 오해와 교만을 지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앙과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모태신앙인의 문제는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성경공부가 빈약한 한국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잘가르치고 전도적 설교를 가끔식이라도 하는 교회에서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할 수 있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스스로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구원에 대한 지식이 없는 모태신앙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옳바른 지식이 없다고 해도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짧은 신앙체험을 가지고 구원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구원받지 못한것으로 몰아가는 황당한 짓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학/신앙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마트폰 성경 사용은 안된다? (0) | 2015.09.13 |
---|---|
한국판 원문분석 데이터베이스 (0) | 2015.08.14 |
예배에 모든것을 걸어라? (3) | 2015.08.08 |
할례받지 않은 빵 - 신학자 고 엘리스 교수의 실화 (0) | 2015.08.05 |
은혜로운 예배란 무엇인가? (0) | 2015.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