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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본문

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frog prince 2015. 6. 20. 23:26

아래 링크 참조.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

http://keepbible.com/bbs/board_m.html?board_table=03_02&write_id=369\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03_05&write_id=3700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과연 포도즙인가 포도주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그것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는 주장을 하는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셨다는 링크에 있는 정동수 목사의 웹사이트에 있는 글들을 읽어 보았다. 글들은 김재욱이라는 분과 관리자 ( 목사?) 올린 글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서 답답한것이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구절만을 증거로 삼는, 성경을증빙자료 삼으면서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해석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주장을 성서적이라며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몇자 적어 보았다.

  • 여기서 내가 인용하는 성경 구절들은 모두 개역개정 이다.
  • 링크에 있는 저자들을글쓴이 표한다.

1. 글쓴이는 에베소서 5:18 절에 취하지 말라 “‘취하다 쓰인메쑤스코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그저취하다라는 뜻이 아니라취하기 시작하다라는 뜻이다라고 한다. 도데체 무엇에 근거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글쓴이의취하기 시작이라는  번역은 스트롱원어코드에 μεθύσκεσθε 어원인 μεθύσκω 능동태인 “I become drunk” 라고 설명한것의 “become” 오해했기에 비롯된것이 아닌지 싶다. 이것은 영어 문법에 대한 한계와 성서 원어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어원만 찾아보는, 문법에 대한 한계가 함께 빚어낸  해석인것 같다.

 

취하지 말라 원어로 μὴ μεθύσκεσθε 로서 부정 부사인 μὴ  (하지마라) 현재 명령어로서 지속적인 행동인 취하라 뜻의 μεθύσκεσθε 합하면취하지 말라혹은 “[/포도주로] 인해 취하지 말라 명령이며, 따라서 μεθύσκεσθε 계속 취해 있는 상태를  하는 것이지, 글쓴이의 주장대로취하기 시작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고린도전서 11:17-22 보면, 성도들이 함께 모여 주의 만찬을 먹을때 자신들이 가지고 음식과 음료를 먹는 상황을 보게 된다. 가난한자는 가져온것이 없어 굶고 주리거나 혹은 가져온 것이 충분치 못해 배고픈 상태에 있는 방면에, 있는 자들은 혼자 많은 양의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다가 결국은 21 절에취함이라” (개역개정) 상태에 도달하고 만다. 여기서취함이라라는 단어는 원어로 μεθύει 로서 현재 진행형 직설법이며 취해있는 상태를 가르키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당연히 포도즙이 아닌 포도주를 가져온것이다. (물을 얼마나 섞어 희석시켜 마셨냐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고 다만 취할 만큼 많이 마셨다는 것이며, 취하게 하는 알콜 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취하게 만든 음료를 금하지 않는다. 다만, 주님의 만찬은 욕심을 따라 자신만의 배를 채우거나 취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것처럼 서로에게 베푸는 것이며, 그러한 성스러운 만찬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에베소서 5:18으로 돌아가서, “술취하지 말라 것은 위에 설명한데로 포도주 혹은 알콜 성분이 있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취해있는 상태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2. 글쓴이는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wine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순수한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 누룩이 들지 않은 순수 포도 주스여야 한다. 포도주는 이미 누룩이 들어가서 포도즙이 발효된 것이므로 순수한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낼 없다라고 한다.  글쓴이는 누룩이 들어 발효된것을 사용하면 않된다는데, 그는 누룩을 변질, 부폐 혹은 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같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비유하신것은 순수한 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흘려야 피를 상징하는 것이고, 출애굽 직전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구원하게 하신것 처럼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 하실것인지에 대한 상징이지 순수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포도즙에도 포도알에 발효를 시키는 누룩이 함포 되어 있으며 박테리아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포도즙이던 포도주이던 순수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출애굽 직전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으라는 것은 시간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떡에 누룩을 넣고 부풀기를 기다를 있는 여유로움이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으라는 것이지 누룩이 부폐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레위기 7 13절을 보면 감사제와 화목제에 누룩이 들어간 떡을 함께 드리라고 하고 있고; 레위기 23 17절에는 안식일 둘쨋날에누룩을 넣어서 구운 요제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되어 있다. 누룩이 부폐와 죄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구태여 누룩이 들어간 떡을 바치라고 하셨을까? 마태복음 13 33절과 누가복음 13 20-21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죄악스러운 부폐된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로 그의 나라가 누룩이 퍼지는 것처럼 크게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누룩은 무조건 죄나 부폐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며 문맥에 의해 뜻이 좌우된다.

 

결정적으로, 누가복음 7 34절을 보면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은 원어로 οἰνοπότης 로서포도주를 과하게 마시는 혹은포도주 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33절에서의 οἶνον 포도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를 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누가 포도즙을 마시는 것을 탓하며포도즙을 과하게 마시는 라고 부르겠는가? 오히려 포도주이기 그런 비난을 받으셨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포도즙이 아닌 포도주를 드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글쓴이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포도주가 아닌 포도즙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한복음 210:  원문을 직역 하자면, “모두가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어 놓고 다들 취했을 때는 좋지 않은 것을 내놓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내어 놓았읍니다!”

 

여기서 우리가 쉽게 관찰할 있는 것은: 1) 모든 혼인 잔치에 처음에는 좋은 wine 내어놓고, 2) wine 마신 사람들이 취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3) 좋은 wine 포도즙이 아닌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알콜성분을 함유한 포도주라는 것이다. 혼인 잔치에서도 예외 없이 처음에 좋은 포도주가 나왔고 그것을 마신 사람들이 취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취한 원어로 μεθυσθῶσιν 으로서 μεθύω 부정과거 수동태 가정법 형태이다. 단어의 어원은 5:18절의 μεθύσκεσθε 어원과 같다. 따라서 좋은 와인에 의해 취한 이니, 이것이 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연회장은 예수님이 물로 만드신 것이 좋은 와인 포도즙이 아닌 취하게 만드는 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글쓴이는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드시지 않았다면서 술취한 사람이 예수님이 만드신 것이 처음것보다 좋은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있냐고 반문을 하며, 그런 구분을 있다는 것은 그들이 술에 취하지 않고온전했기때문임을 증명한다는 반론을 펼치고 있다.  정말 그러한가? 글쓴이의 주장은 본문을 제대로 살펴 읽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잘못된 반론이다. 첫째는, 위에서 설명한것 처럼, 10절에모든 사람들” (Πᾶς ἄνθρωπος) 좋은 술을 내어 놓고, 좋은 술을 마신 결과는 취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감각이 무뎌져 좋은 술과 나쁜 술을 구분하지 못할 상태에 처해 있을때 비교적 못한 술을 내어 놓는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혼인 잔치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결정적으로, 여기서 좋은 술과 나쁜술을 구분한 사람은 객이 아니라, 바로 연회장이다. 연회장 (ὁ ἀρχιτρίκλινος) 객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대접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웨이터 총수 (head waiter) 혹은 연회가 돌아가도록 지휘하는 관리자나 책임자 라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만드신 것이 좋은 술이며 따라서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술임을 판단할 맑은 정신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술을 나르는 종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만드신것이 즙이라면, 여기서 좋은 와인과 나쁜 와인을 거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와인은 포도종류와 재배된 , 그리고 발효과정에 따라 좋은 와인과 나쁜 와인으로 나뉘어 진다. 그러나 이것이 포도즙이라면 맛의 차이가 조금은 있겠지만 굳이 좋은 와인과 나쁜 와인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글쓴이는 11 절에 예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는것을 가지고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오해이다.  여기서의 기적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것이었고, 이것을 그들의 제자들이 보고 믿었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는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포도주에 취한 기쁨의 잔치를 뜻하는 것이다. 신명기 14 26절에도 “…포도주나 독주등 마음에 원하는 모든것을 구하고 거기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 하며라고 하고 있다.  그렇기에 취함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 잔치의 기쁨과 예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시는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글쓴이는 이것을 한국적 사고로 접근하는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생각이다.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는 여러날 계속 이어졌고, 잔치의 기쁨에 참예하여 취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받아들인 나라의 문화였으며, 따라서 결혼한 신랑과 신부를 함께 기뻐해주며 취해 비틀거리는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옳은것이다.

 

글쓴이는그런데 하박국 2 15절은 자기 이웃에게 술을 주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스도께서 만일 술을 마시거나 만들었다면 스스로 이런 말씀을 폐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분은 결코 자신의 본성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한다. 나는 여기서 답답함을 금치 못하겠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문맥이다. 문맥을 무시하고 성경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자면, 성경을 가지고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것을 뒷바침 있다. 문제는 바로 글쓴이가 문맥을 무시하고 15절의 부분을 잘라 인용하며 본문의 뜻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박국 2 15절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있을진저”. 여기서 문제 삼는것은 술을 마시라고 주는것이 절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정복자인 바벨론이 피해자 정복당한 자들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한것이며, 술을 자유에 의해 마시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히필 분사인 מַשְׁקֵה 로서 마시게 만든것 혹은 강압적으로 마시게 것을 뜻한다. 이러한 강압적인 행동의 이유/목적/의도 (לְמַעַן) 바로 술을 강압에 의해 마시는 자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굴욕감을 주려는 것이며 또한 술취하게 성폭행하기 위해서 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강요가 아니라 강제로 마시게 것을 의미한다. 이런 폭력적인것은,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유로이 마실 있도록 잔치에 기쁨을 주시고자 하신 예수님의 의도와는 비교할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4. 잠언23:32-35. 실질적으로는 20 부터 보아야 하는데, 여기서는 글쓴이의 주장처럼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술을 즐겨 하는 자들”, 인생을 술취함과 음식을 탐하는자들, “술에 잠긴 술을 구하러 다니는 술에 찌어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다. 35절을 보면,  이러한 자는 아무런 감각이 없고 자나 깨나 술을 찾는 사람에 대한 경고인것을 있다.

 

5. 잠언 31:4-5. 여기서의 예외는 죽어가는 사람만이 아니라 לְמָרֵי נָפֶשׁ 마음이 심하게 상한자" 혹은마음에 근심하는 또한 포함된다. 근심하는 인생의 괴로움을 가진 자를 뜻한다. 그러나 이것의 중점은 예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함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이니 멀쩡한 왕인 너는 이런 상항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풍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왕에게 너는 술을 전혀 마시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어떤 집착이나 중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5절에술을 마시다가정신이 없고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법을 잊어버리고송사를 굽게하는 재판을 그르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3 절에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에서 있다. 따라서 이것은 모두가 마시던 포도주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취해 사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6. 디모데전서 5:23 절에 대해서 글쓴이는과연 어떤 의사가 위장병 환자에게 술을 권할까?” 라고 반문한다. 나는 글쓴이에게당신이 의사입니까?” 라고 묻고 싶다. 의사들이 삼가라고 하는 것은 소주, 양주등 독주이다. 오히려 적당한 양의 맥주나 포도주는 위장병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와 있다.

 

7. 글쓴이의 글을 보면 포도주/술에 대한 부정적인 만을 언급했고 나는 그의 해석과 적용이 잘못 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뿐 만이 아니라 나는 성경에서 누룩이 단순히 나쁜것으로 비유되는 만이 아니라 좋은것 거룩한 것으로 비유되는 다른 면을 충분히 증명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질문은, 성경은 포도주/술에 대해 부정적인 만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긍정적으로도 말하고 있는 ? 라는 질문을 던져야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그렇다!” 이다. 그러면 포도주/술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나타내 주는 성경 구절들을 살펴 보기로 한다.

 

신명기 14 23절에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발효된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기는 커녕 오히려 독주등 원하는 것을 개인에게 속한 모든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포도주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즐거움의 상징이 것이다.

 

시편 104 14절과 15절에그가 [하나님께서]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יין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니 이것이 포도즙이 아닌 포주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으며,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라고 하고 있으니 좋은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황당하게 포도즙만 하나님이 만드신것이고 포도주는 인간이 발효시켜 만든 것이라는 주장은 인간이 주로 음식을 변화 시켜 만들어 먹는 것을 볼때 설득력을 잃는다. 포도즙이 어디서 자연적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포도를 짜서 만드는 것이고, 빵도 밀을 빠아서 주로 누룩을 섞어 부풀린 화덕에 구워 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김치나 된장을 발효시켜 만들어 먹으면서도 기독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그에게 감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구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양식을 주셨다는 것은 밭에서 따서 그대로 먹던지 아니면 다른것으로 만들어 먹을 있는 원재료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이며, 포도주를 포함한 모든것들을 통해 얻는 생동력과 만족감과 기쁨을 주신 그를 찬양하는 것이다.

 

이사야 25 6절에 보면만군의 여호와께서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오래된 와인 (שְׁמָרִים) 발효되어 알코홀을 함유하고 있는 포도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바로만군의 여호와께서...만민을 위하여오래 저장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연회를 베푸시리니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에게 포도주를 마실 있게 하시는 하나님은 과연 죄가 있으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야 된다. 그러나 그것보다 정확한 질문은 포도주가 과연 나쁜것이며 그것을 마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고 계시냐 이다. 구절만 봐도 포도주를 금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과하게 마시는 것의 심각성을 다른 구절들에서 경고하시는 것임을 있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베푸시는 거룩한 은혜의 하나 임을 있으며, 연회는 기쁨의 자리이니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포도주는 과음 했을때에 문제이지 적당하게 마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 축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경은 포도주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말해 주고 있다.

 

8. 마지막으로, 와인에 대한 단어들과 연관된 구절들을 보면, 압도적으로 와인이 포도즙이 아닌 포도주인것을 있다. 특히 나실인에 대한 구절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민수기 6 2-4절에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초나 독주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비슷한것들을 함께 묶어 구체적으로 금하고 계신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원문을 보면 접속사 ו (vav) 사용해서 같은 종류들의 것들을 구분하고 계신것을 있다: 포도주와 독주 [ 부터] (מִיַּיִן וְשֵׁכָר֙), 포도주로 만든 식초와 독주로 만든 식초 (חֹמֶץ יַיִן וְחֹמֶץ שֵׁכָר), 포도즙 (מִשְׁרַת), 그리고 포도 싱싱한것과 말린것      (וַעֲנָבִים לַחִים וִיבֵשִׁים) 이다. 포도주와 독주를 함께 묶어 종류의 식초와 구분하고 계신다는 것은 바로 포도주가 취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 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바로 포도주 (יַיִן) 포도즙(מִשְׁרַת) 구분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9.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성경을증빙자료 자신들에게 편리한데로 인용하고 있는 것을 그들의 글에서 볼수 있다. 그들은 성서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꾸준한 성서해석학적 방법에 의한 해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서에 대한 지식과 이해와 신념에 맞춘 과대 해석과 적용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것을 있다. 성경은 편견을 버리고 보려고 노력할 때에 비로서 정직하게 보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며, 그럴때에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이해와 다르더라도 정직하게 받아 들일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술을 금하는가? http://jesus4today.tistory.com/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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