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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수 목사님은 엉터리로 원어 풀이하는 목사들의 대표적인 예 본문
아래 링크는 김성수 목사님의 엉터리 원어 풀이에 대한 증거 자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Rup1N7VvEU
동영상 10분 40초에서 44초를 보면, 그가 창세기 1 장 1절을 히브리어로 적는 것을 보여 준다. 문제는 그가 중요한 단어에서 스펠링(철자법)을 틀리게 했으며, 또 한 단어에서는 접속사를 빼놓았다. 그뿐 아니라 어느 단어를 읽을때는 정관사를 빼놓고 읽었다. 이것에 대해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지 않나? 라고 반문을 할 수 있다. 물론이다. 그러나 설교에 능숙능란한 김 목사가 할 실수는 아니며 너무 많은 문제를 실수로 볼 수 없다. 특히 창세기 1장 1절은 너무 잘알고 있는 구절이기에 히브리어 첫학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외우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면 도데체 어디서 틀렸는지 지적을 하도록 한다.
1. 창세기 1장 1절은 원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첫째, 그는 쉽게 빨리 쓸 수 있는 간단한 이 구절을 가지고 생각을 떠올리며 적는 것이 표가 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적었다. 이것은 그가 강단에서 보여 주는 것 과는 달리 실제로는 히브리어를 잘 모른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동영상을 통해 받는 느낌이 꼭 한 학기로 끝나는 히브리어 과목을 들은 목회자로 보인다. 그가 실제로 신학교에서 히브리어를 얼마만큼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둘째, 동영상과 비교해 보면 신학생 모두가 다 아는, ‘하나님’ 또는 ‘신(들)’이라는 뜻을 가진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אלהים 임에도 그는 이단어에 ם (밈)을 하나 더 붙인 אלהםים 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 단어를 여러번 보고 또 소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틀리게 쓴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성경에 간혹 나오는 단어라면 몰라도 하나님을 뜻하는, 수도 없이 나오는 단어를 잘못 써놓은것을 모르는것은 원어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말이 안된다.
셋째, 그는 끝에서 두번째에 있는 ואת 에서 접속사인 ו (바브/waw/vav) 를 빼어 놓고 엣트(את)만 적었다. 여기에 대해서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반문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달달 외우고 있는 성경구절을 자신있게 쓰거나 읽을 수 있는 원어로 틀리게 적는것이 가능한가? 라고 되묻고 싶다. 답은, 틀리게 적을 확률이 매우 적다 이다. 그리고 그는 이 단어를 소리내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빼놓고 적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넷째, 창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읽는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베레시트 바라 엘로힘 엣트 하-샤마임 봐-엣트 하-에렛츠
그런데 동영상 10분 40초에서 44초를 보면, 그는 이것을 ‘베레시트 바라 엘로힘 엣트 하샤마임 엣트 에레츠’ 로 읽었다. 여기서 그가 끝에서 두번째 단어에서 접속사 봐를 빼놓고 읽었으며 또한 끝에 있는 단어의 정관사 ‘하’를 빼고 ‘에렛츠’로 읽었다. ‘엣트’는 정관사가 붙은 직접 목적어를 가르키는 역활을 한다. 그런데 그는 ‘엣트 에렛츠’가 ‘땅’이라고 한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가 히브리어의 기초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대한 증거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2. 동영상 28분 21초에서 39초를 보면 그가 요한복음 1장 1절을 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문에는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로 되어 있으며, ‘엔 알케이 에인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에인 프로스 톤 테(th)온, 카이 테오스 에인 호 로고스’ 로 읽는다. 그런데 김 목사는 이구절을 “엔 알케 에이미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에이미 프로스 테오스, 카이 호 테오스” 라고 외우면서 “주문 아니예요” 라고 한다. 원문과 비교를 하면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에 함께 적어 비교하기로 한다.
원문:
엔 알케이 에인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에인 프로스 톤 테온, 카이 테오스 에인 호 로고스
김 목사:
엔 알케 에이미 호 로고스, 카이 호 로고스 에이미 프로스 _테오스, 카이 호 테오스 ___________
첫째, 김 목사가 외운것에는 마지만 단어인 로고스가 없다. 왜 빼먹었을까?
둘째, 원문에는 ‘에인’ 이라고 적힌것을 김목사는 ‘에이미’로 읽는다. ‘에인’은 3인칭 단수 직설법 능동태 미완료형으로서 ‘그것은’ 혹은 ‘이것은’ (it was) 를 뜻하며 ‘에이미’ (εἰμί) 는 1인칭 단수 직설법 능동태 현재형 동사로서 ‘나는’ (I am) 을 뜻한다. 따라서 ‘에인’은 바로 ‘말씀’ 곧 ‘로고스’ (3인칭) 의 미완료형으로서의 존재를 가르킴으로서 ‘말씀이 계시니라’ 로 번역이 되는데, 1인칭인 ‘에이미’를 넣으면 3인칭 ‘말씀’과 연관이 지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문법적으로 말이 안된다. 이것은 바로 김 목사가 원문을 놓고 공부한것이 아니라 스트롱원어 코드만 보고 ‘에인’의 파생어를 외운것이다 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셋째, 김 목사는 ‘테오스’ 앞에 붙은 남성 단수 목적격 정관사 를 빼 먹은 것이다. 이것은 그가 단어 위에 마우스를 올려 놓으면 그 단어의 파생어를 보여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쓴것이 아니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쨋건 그는 마지막 ‘테오스’ 앞에 남성 단수 주격 정관사 ‘호’를 붙인다. 문제는 정관사 ‘호’가 그가 빼먹은 ‘로고스’ 앞에 오는 것이다. 먼저, 그가 빼먹은 정관사 ‘톤’은 신학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은 바로 ‘톤 테온’은 구약의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붙인 정관사 ’호’ 부분은 문법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해하기 쉽게 원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A: Ἐν (엔) | ἀρχῇ (알케이) | ἦν (에인) | ὁ λόγος (호 로고스),
B: καὶ (카이) | ὁ λόγος (호 로고스) | ἦν (에인) | πρὸς(프로스) | τὸν θεόν (톤 테온),
C: καὶ (카이) | θεὸς (테오스) | ἦν (에인) | ὁ λόγος (호 로고스)
A 는 ‘로고스’가 태초에 계셨다는 것으로 로고스의 영원한 존재를 설명한다.
B 는 ‘로고스’가 하나님 과 함께 계셨다고 하는 데 정관사가 붙은 ‘테온’ 곧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 (엘로힘) 이시다.
C 를 보면 정관사가 없는 ‘테오스’ (하나님) 가 앞에 있고 정관사가 붙은 ‘로고스’가 되에 있다. 여기서 주어는 ‘로고스’이다. 이것은 헬라어 문법에서 주어가 뒤어 있고 목적어가 앞에 오는 경우에 주어에는 정관사가 붙게 되며 목적어에는 정관사가 붙지 않는다. 그런데 김 목사처럼 ‘테오스’에 주격 정관사인 '호' 를 붙히면 주격 명사가 둘이 되어 문법적 문제가 생길뿐만 아니라 주어가 ‘테오스’인지 ‘로고스’ 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만약에 주어가 ‘테오스’라면 구약의 하나님이 ‘말씀’이시라는 번역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번역이 ‘로고스’와 ‘호 테오스’를 동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한은 C 의 문법적인 구조를 통해 구약의 ‘하나님’과 로고스 ‘하나님’을 구분하고 있다. 그는 정관사가 붙은 ‘테오스’ 를 구약의 하나님으로 가리키고 있으며 ‘로고스’를 정관사가 없는 ‘하나님’으로 사용함으로서 ‘로고스’는 구약의 ‘하나님’이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A 와 B 를 통해 이 ‘로고스’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과 태초부터 곧 영원토록 함께 하셨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것은, 헬라어 문법에 명사에 정관사가 없다고 해서 정관사가 없는 명사는 부정관사 가 붙은 것으로 취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관사가 없다고 해도 정관사가 붙은 듯 이해를 한다. 그 이유는 헬라어에는 부정관사라는 것이 없으며, 정관사의 역활은 영어의 단순한 기능과 달리 복잡하다.
3. 위에서 설명한것 처럼 김 목사는 성서 원어를 제대로 이해할 지식이 없었던것 같으며 원문을 옳바르게 연구할 능력 또한 없었던것 같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나는 김성수 목사의 이런 엉터리 원어풀이가 많은 성도들 그리고 상당수의 목사들과 신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말씀과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도 감사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김 목사를 추종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그를 이단시 취급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보는 많은 목사들 또한 김 목사 만큼은 아니더라도 거의 그 수준에 맞 먹는 엉터리 원어 풀이로 자신을 고상하고 실력있고 권위있는 목사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엉터리 원어실력과 수준미달의 연구를 돌아보고 반성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강대상에서 성도들을 농락하고 있는 것을 김성수 목사의 엉터리 원어풀이와 자의적 해석이 조명을 받으면서 그들의 엉터리 원어 풀이와 자의적 해석에 대한 진실 또한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목사는 다른 엉터리 원어풀이 하는 목사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라고 생각된다. 수많은 목사들이 강대상에서 엉터리 원문풀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고 김성수 목사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설교가 유명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설교 비평은 다른 많은 목사들의 설교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또한 엉터리 원어풀이 설교를 깊은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한국교회의 수준 또한 드러내 주었고, 그것은 곧 성서본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설교가들에게 그들이 가야할 설교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고 김 목사의 문제를 피하기 위한 연구를 열심히 하게 될것이니 그 또한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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